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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개혁자 히스기야 (왕하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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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본 바와 같이 앞으로의 유다의 역사는 서로 국가 정책에 영향을 주려고 하는 세파의 투쟁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엄격한 충성을 장려하고, 왕국의 안전이 어떤 외국의 동맹국들의 의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있다는 것을 믿는 파입니다. 이 파를 우리는 예언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동쪽의 대제국들과 동맹을 주장한 친 앗수르 파입니다. 셋째로, 유다의 남쪽 이웃인 애굽의 의존에서 더 큰 은전을 얻을 것을 믿는 애굽 파입니다. 아하스 때에는 친 앗수르 파가 권력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히스기야 때에 와서는 예언 파에 유리하게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주로 왕의 활동이 29년의 그의 통치에 영향이 있었고 왕에게 많은 존경을 받은 예언자 이사야의 강력한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아하스가 앗수르의 예배외식을 성전에 들여왔던 것과 같이 히스기야의 개혁도 또한 정치적 의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앗수르 왕을 배려했던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그의 전쟁은 이 반역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위에 올라 29년간 나라를 다스렸는데 처음 왕위에 올라보니 나라의 경제는 약해지고, 윤리와 도덕은 부패해서,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히스기야 왕은 제일 먼저 종교가 부패되어 있는 것을 깨닫고 무엇보다도 먼저 종교개혁을 단시일 내에 과감히 단행을 했던 것입니다. 산당을 헐고, 주상을 깨뜨리고,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흉내내서 만든 느후스단도 부수였습니다. 느후스단이란 놋으로 만든 뱀을 뜻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범죄할 때 독사가 나와서 사람을 물어 죽였는데 하나님께서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 끝에 매달아서 그것을 보는 사람은 산다고 말씀하셨고, 하나님 말씀대로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은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랜 후에 이것이 형식화 되어서 우상 단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식만 남은 것을 부수어 버린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형식만 남은 놋뱀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의지하고 여호와께 연합하여 여호와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선을 행하기를 그 조상 다윗과 같이 했고 여호와가 모세에게 명한 계명을 다 지켜서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셨으며 그가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디를 가든지 모든 일이 형통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형식화된 신앙생활을 벗어버리고 마음속으로부터 간절히 사모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 우리의 영원한 삶의 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 형통의 방법 이제 형통의 방법을 성경 몇 옷에서 찾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대로 실천하여 매사에 형통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여호와께 연합하고 함께 하실 때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라끼리 연합해도 큰 힘을 낼 수 있는데, 전능하신 하나님과 연합한다면 얼마나 그 힘이 크겠습니까 아마 당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 이 후 암몬 왕 므낫세는 우상을 숭배하고 연합함으로 큰 시련을 겪은 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왕 히스기야 같이 하나님과 연합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면 형통한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당시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을 보고 렘 2:27에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들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은 네게로 향치 아니한다”고 책망했습니다. (2) 말씀을 묵상할 때 시 1:1-3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 곧 그가 가르치신 말씀을 듣고, 생각하고, 행하는 자는 반드시 형통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하고, 참 되며, 내 발의 발등산이며, 내 길에 빚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사는 자는 반드시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3) 예루살렘을 사랑할 때(시 122:6) 시 122:7에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그리하면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 이라는 지명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됩니다. 성전은 곧 우리의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니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중에 교회를 사랑하는 방법이 많겠으나 특별히 “평안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분쟁으로 인하여 불안스러운 상태가 되면 불안에서 허덕이는 인생을 구원해 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언제나 평안해야 되는데 이 평안을 조성하는 자는 교회를 사랑하는 자며,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형통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를 사랑하십시요. 지상 교회는 곧 주님의 몸입니다. 주님의 백성이 교회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교회를 사랑 할 자가 없습니다.

2. 히스기야의 선정 히스기야 왕은 북조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속해있는 나라가 종교, 사회, 경제, 도덕적으로 북왕국 뭇지 않게 부패하여 타락해 있음을 보고 왕위에 오르자마자 나라를 바로 잡아 새롭게 하기 위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른 어느 부분보다도 종교를 먼저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교적인 우상 숭배를 타파하고 모세와 관련된 관습적인 우상 숭배까지 타파한 것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종교가 부패될 때 그 나라는 멸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순수한 신앙생활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의 하나님의 말씀을 뜯어 고쳐서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본래대로 돌아가자고 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천주교의 교권주의 때문에 성경은 뒤로 제껴 놓고 교황의 말을 성경 이상으로 받아 들여서 나중에는 하나님의 뜻하신 바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으므로 그 궤도를 다시 수정해서 하나님 말씀대로 돌아가자고한 것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먼저 종교를 개혁하고 여호와를 철저하게 의지하였습니다. 당시 유다는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쳤습니다. 이것은 그의 아버지 아하스 왕의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를 배척하고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랍사게”라는 대장을 앞세우고 예루살렘을 포위하고는 “너희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느냐”라고 하며 애굽을 의뢰하는 것은 상한 갈대로 만든 지팡이를 의뢰하는 것과 다름이 없고, 하나님보다도 앗수르 왕이 더 세력이 있고 강하니 항복을 하면 좋은 것을 먹고 편안히 살게 될 것이라며 감언이설로 죄었지만 히스기야 왕은 그들을 상대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한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의 아버지 아하스 왕은 왕중에서도 제일 악한 왕이요, 악명 높은 왕이었는데, 그 아들이 이런 좋은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 성경에 기록된대로 그 어머니는 아비라로 곧 스가랴의 딸이라 했으니 그 어머니가 자녀교육을 책임졌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알뜰한 손길, 사랑, 신앙이 히스기야로 하여금 훌륭한 왕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스라엘에 전래하던 모든 우상 숭배를 제거해서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100% 들었습니다. 히스기야가 병났을 때 이사야는 “네가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두 회개하나이다”하며 통회 자복하자 수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신다”는 응답을 받아 15년을 더 장수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이 주님의 말씀에 어긋날 때에는 과감하게 수정하고 바로 잡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모두 바로 살고, 바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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