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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귀한 생명 (마 16: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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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 세계를 차지한다 하더라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도로 찾겠습니까 이는 생명의 존엄성을 단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내 목숨을 잃고서 천하를 얻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생명이상 값진 것은 세상에 다시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생명이 이만큼 귀중하다면 남의 생명도 또한 그와 같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축복은 만민이 함께 누려야 합니다. 산다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권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것입니다. 사실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 종교의 참 내용이어야 하고 참 도덕의 출발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그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공중의 새들을 보라 들에 피어있는 백합화 한 송이를 보라 그 새를 먹여 주시고 그 꽃을 길러주시는 하나님이 너희들 사람을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길러주지 않으시겠느냐”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한 번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거기에 손 마른 사람 하나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책잡을 기회를 찾으려 고 예수에게 물었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괜찮습니까” 주님께서 무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너희들 중에 누가 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올리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마 12:9-12). 이렇게 말씀하시고 예수는 그 손 마른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생명은 종교 이상이라는 것을, 아니 종교가 참 종교이려면 생명을 사랑해서 죽음에서 건져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본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불교도 확실히 생명을 사랑합니다. 작은 벌레까지 죽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의 생명이 윤회되어 미물로 변하기 때문에 죽이지 않는다는 자비입니다. 기독교는 사람의 생명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깁니다.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부모가 나에게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입니다. 1 . 생명의 유래 과학계에서도 생명의 유래를 미지수로 여깁니다. 과학은 만능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위력은 순식간에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킬 수는 있으나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 내지는 못합니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과학의 힘으로 못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께서 온 생물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땅을 정복하고 충만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도 번성하고 생물도 번성하는 것입니다. 모든 생물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성경은 모든 생물이 태초에 하나님께 지음을 받아서 이 세상에 온 것이라고 생명의 기원과 그 유래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 생명의 소환 생명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요 생명을 불러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불러 가시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행사인 고로 사람이 이를 연장하거나 단축하거나 변경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밤이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번창한 사업장도, 화려한 저택도 두고 가야하고, 정 깊은 처자, 친족도 다 이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을 줄 아나니 (고후 5:1)라 하여 성도에게 죽음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입문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날, 어느 때, 어디서, 어떠한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어김없이 하나님 앞에 갈 수 있게끔 성실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죽으면 요단강 건너편에 영원무궁한 세계가 있어 그리로 감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 번 영원한 곳으로 가면 그곳에서 영복, 영벌이 결정되는 것이니 우리들은 세상에 살 동안 온전하고도 철저한 신앙으로 살다가 주님 부르시는 날 주님 앞에 가야합니다.

3. 생명의 가치 예수님의 생명관은 한 사람의 생명이 온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온 힘을 다 기울입니다. 옛날 중국의 진시황은 동남동녀 500명을 선발하여 불사약을 구하러 파송했고, 한 무제는 매일 밤 승로반을 만들어 아침마다 이슬을 받아 마셨지만 결국 장생하지 못하고 46 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탓하며 운명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천하를 제패한 천자의 몸이라도, 그 지위와 영화가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때가 되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니 이 세상 부귀영화는 자기 생명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통감케 하는 것입니다.

4. 생명의 운명 귀한 것일수록 귀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생명보다 귀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짧고 귀한 일생을 가장 보람 있게, 가치 있게 살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은 “너희 몸을 하나님께 드리고”라고 권면합니다. 나의 생명 전체를 전능하신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히 주장하시도록 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사는 것이 내 인생을 가장 선하게 운영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깨달은 것은 육신의 생명도 이렇게 귀하거든 하물며 영혼의 생명은 말로 할 수 없이 더 귀중하다는 사실입니다. 마 10:28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육신의 생명이 천하보다도 더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보다도 영혼의 생명은 더욱 더 귀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실로 우리가 내 생명이 온 천하보다 더 귀한 줄 알면서도 세상의 재화에 눈독을 들이며 구원문제를 등한히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귀한 것일수록 귀하게 사용할 줄 알이야 합니다. 재물에 온 몸과 정신을 빼앗겨서 가장 귀한 생명을 잃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우리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언제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 우리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하나님께 드려서 그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값이 있는 생이 될 것 입니다. 아울러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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