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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 안에서 대망을 (고후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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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영광을 위해 대망을 가지라”, “젊은이여 주 안에서 대망을 품으라.” 이 말은 월리암 클락 박사가 1876년 일본 북해도에 있는 삽뽀로 농업학교 내에서 기독학생들에게 던져준 고별인사입니다. 이 격려의 한 마디 인사는 오늘도 일본 학생들의 심금을 울리며 살아있는 명구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대망을 가지고 힘쓰라는 권면이 있습니다.

1. 주님을 기쁘게 하는데 힘쓰라(고후 5:9) 사도 바울은 한 가지 큰 포부와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후 5:9의 표현처럼 “살든지 죽든지 주를 위하여” 생명을 건 포부였습니다. 바울의 전 생애는 이 한 가지 중심에 불타는 포부가 추진력이 되고 원동력이 되어 전개되었습니다. 그의 생애에 있어서 일거수 일투족은 이 한가지 생의 원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의해 지배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권면하기를 “네가 힘써 하나님께 기뻐하는 자로 보이라” (딤후 2:15)라고 권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부끄러워 할 것이 없는” 일꾼이 될 수 있으며,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능력이 유효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인 신앙이 없이는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도덕생활이 불가능하고 지식만의 축적이 무가치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 중심에서 오는 인본주의, 물질주의, 세속주의의 강한 물결에 거슬려서 젊은이들은 모름지기 그들의 생의 계획, 방향 및 내용을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는 차원에서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에녹은 “지상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어” (히 11:6) 항상 살지 않았습니까 다니엘은 바벨론 왕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자신의 관직과 자기의 생명까지도 아깝지 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청년 요셉도 “하나님께 어찌 득죄하리요” (창 39:9)라고 하는 철저한 결심 아래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도, 어려운 시험에도 이기지 않았습니까 이들은 다 항상 어디서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대망으로 살던 젊은 신앙가들이었습니다.

2. 복음증거에 힘쓰라(롬 15:20) 한때 바울은 복음을 믿는 자를 핍박하기에 큰 야망을 가지고 힘쓰던 자였습니다. 그의 열심은 스데반을 죽이는데 선두에 섰고 멀리 다메섹 지방의 기독교인의 근절에 나서기 위해 산헤드린 공의회의 위임을 받아 토벌 대장으로 나서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한 후에 그의 전날의 열심을 복음의 증거로 불태웠습니다. 사실상 사도행전을 사도 바울의 전세계 선교 대망의 성취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의 열심은 예루살렘에서 로마에까지 더 이상 복음 전할 곳이 없다고 할만큼(롬 15:20-23)이었고, 끝내는 로마의 수도로마도성을 복음으로 정복한 후 더 나아가 스페인까지 진격하려는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롬 15:23). 면적으로 본다면 예루살렘에서 스페인까지는 2,300평방 마일인데 이는 전 극동지역에 해당됩니다. 그는 이 광범한 지역을 복음으로 편만(롬 15:19)시죄으니 참으로 놀라울만한 전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바울은 만족하지 않아서 죄수의 몸으로라도 로마에 가서 복음으로 그 성을 정복하려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보다 더 좋은 교통시설과 통신기구를 통하여 훨씬 빠른 속도로 세계복음의 대망을 성취시킬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대망을 품고 나설 20세기의 바울은 누가 되겠습니까

3. 일하기를 힘쓰라(살전 4:11-12) 바울은 수직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만 권할 뿐 아니라 자신과 남을 위해 일하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십계명의 네째 계명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인데 이 계명은 엿새 동안 힘써 일하라는 명령이 전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상은 엿새 동안 일을 하지 않고 노는 사람은 주일날 아무리 거룩히 안식한다 해도 네째 계명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청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좀 더 열심히 일하여 사회인으로서도 부끄럼 없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조상은 “놀고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땀흘리고 일하며 먹고 사는 자를 천하게 여기는 습성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게으른 후진국이 되었으니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이 있다”는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외국의 원조만 받는 나라가 되지 말고 오히려 외국에 주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학생이면 학교에서 제일 열심히 공부하여야 할 것이고, 직장의 사회인이면 거기에서 인정받는 일꾼이 되어야 할 것이며, 가정주부이면 지나친 사치를 버리고 비생산적인 퇴색한 풍습을 버리고 열심히 가사를 돌보며 자녀 교육에 힘쓰는 주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성도들이 바울이 가졌던 이상의 세 가지 대망을 가지고 힘쓸 때에 가정과 사회가 복음화 될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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