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리스도의 초월성 (골 01:15-17)

첨부 1


찰스렌 씨가 말하기를 “만일 방 안에 세익스피어가 들어오게 된다면 우리는 그를 영접키 위하여 기립할 것이요, 만일 예수께서 들어오실 것이면 우리는 그의 발아래 엎드려 그 옷자락에 입 맞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예수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1.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외아들이십니다. 따라서 만물의 창조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마련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외에, 그를 말미암지 않고, 그를 위하지 않고는 한 가지라도 창조된 것이 없습니다. 철두철미하게 만물은 그리스도의 소유물이고 창조물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신앙인 동시에 우리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이 이를 증거하고 있으며 요 1:1-3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믿음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증거차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사도 요한도 그리스도가 피조물의 주인이요, 지배자요, 경명자인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믿었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예수그리스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로써 인간과 자연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담 한 사람의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과 자연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고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하여 인간과 자연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성서에서 그리스도가 만물을 구원한다는 교훈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계 21:1-2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새 예루살렘 성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인간을 구원키 위해 오셨고 지금도 구원키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사 기도하며 역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만물보다 먼저 계셔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교회의 머리가 되tu서 그의 지체가 되는 모든 교회가 땅 위에서 상처를 입지 않고 완전무결하기를 원하시면서 늘 교회를 살피십니다. 특히 계 2-3장에 보면 주님께서 시대의 상징이 되는 초대 소아시아교회를 살피신 계시의 말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l)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는 “너희가 악인을 용납치 않고 니골라당을 미워한 것은 잘했으나 처음 사랑을 버렸으니 회개하라”고 하셨으며 (2)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서는 “너희가 사단의 미혹을 받지 말고 환란을 받으나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였으며, (3)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서는 “너희 중에 발람의 교훈을 지키고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가 있으니 회개하라”고 하셨으며 (4)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서는 악한 여인 이세벨을 용납한 것을 책망하셨으며 (5) 사데 교회에 대해서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었다” 하였으며 (6) 빌라델피아 교회에는 “내 말을 지키고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하였으며 (7)라오디게아 교회에서는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니 네가 차든지 덜든지 하기를 원하노라”하였는데 특히 라오디게아 교회 상태는 첨대 교회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교회들을 그리스도께서는 끊임없이 살피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현실, 우리 교회는 계시의 일곱 교회 중 어느 교회에 해당되는가 다시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이니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우리의 모든 행동이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로 일만 가지 일에 부끄럽지 않고 예수께서 우리를 살피실 때에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케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창조적 신앙생활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창조적이어야 합니다. 우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창조적이며 건설적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시적인 무지에서 탈피하고 현대적인 과학 기술을 개발하여야 하며, 더 많은 생산을 얻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자연을 보다 더 아름답고 유익하게 개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생활을 번뇌케 하고 생명을 빈곤케 하는 모든 요인을 제거하고 마음과 생활을 건설적으로 운영해 나가는 창조적 생활에서 기쁨을 얻어야 합니다. 없으면 있게 하고, 있으면 더욱 풍부케 하여 나를 보다 나은 상황으로 건설하고 이웃의 고달픔과 약점을 짊어져 주면서 선한 일에 좀 더 적극적인 생황을 해나가는 것이 창조적인 생활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과 윤리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적극적이요 창조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전통을 무시해서도 안 되겠지만 급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아직도 옛것이나 보수하는데 심혈을 쏟고 있다면 그것은 창조적인 신앙과 생활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변천해가는 세상에서 언제나 그 시간의 선봉에 서서 역사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창조의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를 우리는 잘 압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죄가 무엇입니까 그는 보수적이요, 배타적이요, 아집에 사로잡힌 생활을 하였으며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을 오히려 숨겨놓은 비창조적 생활이 바로 그의 죄였던 것입니다. 신앙이란 결코 안일무사해서는 안됩니다. 일을 만들어내고 문제를 일으키고 건설적이고 의욕적이고 생산적이어 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지금도 창조해 나갑니다. 건설하시려고 교회와 직분자, 그리고 교인에게 창조적인 신앙과 생활을 요구하십니다. 성도 여러분은 창조적인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의 감화를 받고 배우고창조적인 신앙으로 교회와 세상을 사랑으로 조성해 나가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