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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덤으로 사는 히스기야의 생 (사 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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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2700여년 전에 유대 왕국의 제 12대 왕에 히스기야 왕이 등위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유대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유능한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 나라는 북쪽에 앗수르라는 신흥국가가 일어나서 북조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점령하고 그 여세로 유대 왕국을 공격하여 예루살렘은 포위되어 있어서 유대 왕국의 운명은 마치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이렇게 패망의 운명에 빠져 있던 예루살렘이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앗수르는 물러가고 히스기야 왕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구출된 히스기야 왕에게 다시 개인적인 어려움이 생겼는데, 그라 중병에 걸려서 죽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선지자 이사야가 와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왕은 왕의 집에 유언을 하라고 하십니다. 왕이 이 병으로 죽을 죽을 것이고 다시 살아날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히스기야 왕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하고 심히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네가 네 수한에 15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 내겠고 내가 이 성을 보호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증거로 아하스의 일영표에 나아갔던 그림자가 뒤로 10도를 물러가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 때는 시계를 대신하여 일영표를 세워서 그림자로 시간을 계산하였는데, 그 그림자가 뒤로 물러난다는 말입니다. 히스기야는 기도로 죽을 병에서 건짐받았습니다. 그는 완전한 기도의 응답을 받았고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시고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1. 히스기야의 모범된 기도 (1) 죽음의 선고를 받았으니 삶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용기가 히스기야에게 있었습니다. 사람이 보통 때는 잘 기도하다가도 죽을 병에 걸리면 기도할 용기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 일반 사람에게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가장 어려운 문제를 당하여서 기도한 것입니다. 그는 고난 중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2) 그는 벽을 향하여서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단절하고 하나님에게만 전심하는 태도인데, 일사각오로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에 방해되는 여건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방해되는 모든 것을 다 제쳐놓고 기도함에 있어서도 일심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3) 경건한 생활이 뒷받침되는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 내용을 보면, “주여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함을 기억하옵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산다는 것은 주님께서 갚아 주심을 믿는 행함입니다. 누구든지 주님 앞에 행한 만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믿지 못한 만큼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고생을 한 것만큼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 열매와 상급을 받는 법입니다. (4) 그는 심히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참된 성도는 인생의 비애를 정시하기 때문에 눈물을 흘립니다. 히스기야는 자기의 죽음을 정시하였기 때문에 울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문제를 정시할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위로를 주시기 시작하십니다. 참된 눈물은 진리를 바로 보게 하며 마음을 부드럽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기도는 웅변이 아니라 극난의 절망의 지경에서라도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용기를 잃지 않고 간절히 찾는 그 음성을 들으십니다.

2. 히스기야는 덤으로 사는 생을 허락받았습니다. 히스기야는 덤으로 사는 생을 허락받아 그 여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살았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덤으로 사는 생을 축복받은 바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면 덤으로 사는 생애는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1) 덤으로 사는 생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이어야 합니다. 교리문답 제1문에 “사람이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면 불행하게 됩니다. 잠 16:7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잠 9:10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한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이 땅에 아직 남겨 놓은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서 값있게 살라는 축복입니다. (2) 덤으로 사는 생은 일하라고 살려 두신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있는 동안 일하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덤으로 살게 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와 나라와 교계와 세계를 위해 더욱 더 봉사자로 쓰시기 위해 살게 하신 줄 알고 봉사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제부터의 생은 나를 위한 생이 아닌 남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 사는 덕과 유익이 되는 여생이 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소생한 요나의 생애와 그 설교가 니느웨 성 백성을 회개시킨 것처럼 오늘 우리를 이 땅에 살린 것은 전국 복음화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시키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살후 3:10에 “일하기 싫거든 먹지 말라”고 했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는 여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장래를 위해 준비하라고 덤으로 사는 생을 주셨습니다. 마 25장의 열 처녀 비유에는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아 혼인잔치에 들어갔으나, 기름을 준비 못한 다섯 처녀는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언제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지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의 소환장이 내리면 우리는 1분도 지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생은 덤으로 사는 생애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주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며, 덤으로 사는 생인 줄 우리 모두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 참된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이 잘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아야 합니다. 덤으로 사는 인간은 교회와 인류를 위하여 유익한 일을 많이 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덤으로 사는 영원한 세계를 위한 준비를 항상 갖추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덤으로 사는 연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언제 주님이 불러도 지체 말고 들리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15년을 더 살았는데, 내게 15년을 연장시켜 준다면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우리 모두 덤으로 사는 생임을 기억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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