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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골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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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지파로는 베냐민 지파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유대 명문 가정 출신의 바리새교인이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학자요,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으로 지위와 명성이 높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것들을 분토로 여기고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처하면서 교회 일꾼이 된 것을 자랑으로 여겨 그 신비성과 거룩성을 깊이 느끼며 마음과 정성을 다 바쳐서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교회의 일꾼입니다. 복음의 일꾼이며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종입니다. 바울이 교회의 일꾼이 된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교회의 일꾼이 된 의미를 사도 바울과 비교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교회를 위해 고난 받는 일꾼 23절에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고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몸인 교회를 위해 받으신 고난의 남은 부분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다”는 말을 하였는데 이 말은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귀절입니다. 바울이 고난을 몸으로 채워야 한다면 그리스도의 속죄의 고난은 완전치 못한 것이냐는 문제가 남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의 학설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이란 인류의 죄를 위해 완전하게 받으신 고난이고 바울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야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그 고난의 의미를 만국에 전하여야만 되는 고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몇 번이나 갇혔고 매도 수 없이 맞았으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겪었고 유대인으로부터 서른아홉 대 씩 치는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으며 세 번이나 몽둥이로 맞았었고 한 번은 돌에 맞았으며 새 번 파선을 당하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 위에서 헤맨 일도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당의 위험 동족과 이방인의 위험과 거짓 신도의 위험 등 온갖 위험을 다 겪었고 수 없이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기도 하면서 날마다 여러 교회에 대한 염려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 누가 약해지거나 죄를 지으면 내 마음도 아팠다고 바울이 고백했습니다(고후 11:23-29). 이렇듯 바울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지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고난 받는 일꾼이었습니다. 특별히 그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고난 받는 일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교회 중에서 생기는 모든 일들을 안타까워했던 것입니다. 지기 어려운 짐이 교회 일꾼의 짐이며 감당하기 힘든 직책이 교회 직책입니다. 신앙생활도 교인보다 더 잘 하여야 하고 기도도 교인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하고 전도도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해야 교회일꾼이 됩니다. 그러나 지기 어려운 짐이지만 억지로라도 져야 할 짐이 교회의 일꾼이란 짐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를 억지로 진 사람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질 때 불평과 원망도 했겠으나 그 십자가가 그의 가정에 복으로 돌아오고 그 아내더러 바울이 어머니라 부르게 되었고 그 아들은 초대 교회에 유능한 일꾼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교회 일꾼들은 대접이나 칭찬이 없고 오히려 비방과 조롱이 있어도 교회를 위해 고난을 기쁘게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을 때 참 기쁨이 오고, 교회를 위해 고난 받을 때 큰 은혜가 습니다.

2. 말씀 전하기 위한 일꾼 25절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따라 여러분에게 말씀을 남김없이 전하기 위해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열매를 맺게 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자신과 동역자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에게는 이 비밀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져 있읍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전했습니다. 바울 자신은 도처에 다니며 평안할 때도 말씀을 전했고 피로할 때도 말씀을 전함으로 스스로 지켰습니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은 말할 수 없는 보물입니다. 이 보물이 질 그릇 같은 우리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고후 4:7). 교회의 일꾼들은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학식의 유무, 재산의 유무, 경험의 유무 없이 기쁜 소식을 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일꾼이 복음을 전파하려는 데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 확신 때문에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복음을 증거 하려면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합니다. 기독교인은 전폭적으로 주님께 생활 전체를 맡기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할 때 복음 전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교회 일꾼이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풍요로운 교회를 성장시키는 방법이 됩니다. 말씀을 전하면 먼저 자신이 은혜를 받지 않을 수 없기에 스스로 먼저 풍성해지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도 육체적 연령과 정신적 연령이 조화를 이루어야 정상적인 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 일꾼도 사회생활과 교회생활에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사회에 나아가 말씀을 전하는 생활이 조화를 이루므로 성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일꾼이 아무리 세상 앞에서 지혜롭고 유능해도 말씀을 전하는 생활이 어리석고 무능하면 참된 교회 일꾼이라 할 수 없습니다.

3. 능력의 역사를 따라 힘쓰는 일꾼 29절에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에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즉 바울은 능력의 역사를 따라 힘쓰는 교회 일꾼이었습니다. 교회 일꾼은 자기 힘이나 지식이나 재간으로 일하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일하는 자입니다. 비겁하던 베드로가 용감한 일꾼이 된 것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었기 때문이요 핍박자 사울이 전도자 바울이 된 것도 성령의 능력 때문입니다. 바울의 전도는 그의 노력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먼저 바울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역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교회의 일꾼은 성령의 능력으로 용기를 얻어 힘을 써야 합니다. 힘을 쓰되 전심전력을 다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있는 힘을 남겨두거나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성과 능력을 다 바쳐서 일이 잘 되기를 힘쓰는 참된 일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따르는 일꾼은 게으른 법이 없습니다. 바울의 될 줄 모르는 열성과 수고는 하나님의 능력이 뒷받침 할 때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는 일꾼이 필요합니다. 추수할 곡식은 많은데 추수할 일꾼이 없기 때문입니다. 슬픈 일이 많은 성도는 있지만 참 일꾼은 보기 힘듭니다. 교회를 위해 고난 받는 일꾼, 말씀 전하기에 힘쓰는 일꾼,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에 따라 힘쓰는 일꾼이 진정 필요합니다. 여러분 중에서 이런 신실한 일꾼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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