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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과 그 생각 (골 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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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 2:12).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1-2). 오늘은 이 두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3:1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라고 하는 말씀을 주의해 봅시다. 여기 살리심을 받았다고 하는 말씀은 영적 부활을 의미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에 옛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과 같이 죽고 영적으로 부활해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즉 중생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 행할 바를 특별히 여기에 두 가지를 권면했습니다. 첫째는 위엣 것을 찾으라고 권면했고, 둘째는 위엣 것을 생각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이 시간은 둘째 권면인 「생각하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골 3:2을 다시 집중하여 보면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치 말라”고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과 그의 생각의 중요성을 먼저 살펴봅시다. 시편 39:3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생각할 때에 화가 발하니” 이것은 묵상하고 깊이 생각할 때에 화가 발하니 가슴 속에서 불이 난다는 말입니다. 가슴에 불이 붙으면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이것은 좋은 생각도 그러하고 나놘 생각도 그러합니다.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과연 인류를 위해서 봉사하고 인류의 사도가 된 이들은 다 좋은 생각을 깊이 하여 그 가슴 속에서 불이 붙어 행동으로 옳긴 분들입니다. 모든 위대한 종교가가 그러합니다. 모세는 시내 광야에서 40년간 깊이 하나님과 자기 민족에 대한 문제를 생각한 분입니다. 엘리야도 호렙산에서 깊이 하나님과 자기 민족의 구원에 대한 문제를 생각한 분입니다.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오랫동안 묵상한 분입니다. 사도 바울도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묵상하며 기도한 사람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그들의 마음은 뜨거워졌고 마음과 가슴 속에서 불이 나서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룩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종교가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위대한 철학가도 역시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디오게네스 등의 사람들도 이 인생 문제, 우주 문제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한 사람들입니다. 철학자만이 아닙니다. 역시 과학자도 그렇습니다. 이들도 깊이 생각하고 자연을 관찰하고는 그것을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새로운 사실과 원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아르키메데스 같은 사람은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면서도, 어찌해서 사람의 몸이 물속에서는 가벼워질까 하고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서 저 유명한 “아트키메데스의 원리”를 발견하고선 너무 기뻐서 “내가 찾았다. 내가 발견했다”고 소리치면서 벌거벗은 채로 왕궁에까지 뛰어갔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뉴톤이 사과 하나가 떨어질 때 그것을 보고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서 지구의 인력과 만유의 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것도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다 좋은 생각을 깊이 하는 중 좋은 것을 발견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것과 마찬가지로 악한 생각도 깊이 하게 되면 크게 악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큰 흉악한 범죄를 한 사람들은 일조일석에 한 것이 아닙니다. 깊이 생각해 가지고 그 결과가 결국은 그들로 하여금 매우 흉악한 사람을 만들었고 매우 흉악한 일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항상 자기의 생각을 살펴서 조심해야 됩니다. 사람은 흔히 생각하는 대로 되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생각은 알과 같다”고까지 표현했습니다. 비둘기 알과 같이 좋은 알을 품으면 아름다운 비둘기를 까는 것입니다. 독사 알과 같이 악한 생각을 오래 품으면 마지막에 독사 새끼를 깝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서 우리의 생각을 항상 조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 가운데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간단히 두 가지로 종합을 했습니다. 즉 위엣 것과 땅엣 것입니다. 위에 속하는 생각이 있고 땅에 속하는 생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선 땅에 속하는 것 즉 생각 안할 것부터 몇 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분한 생각, 원한, 남을 미워하는 생각, 이런 생각을 우리가 오래 가지면 안 됩니다. 물론 무슨 중상을 받을 때, 혹은 재정적으로 손해를 받을 때에 섭섭한 생각이 들어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분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오래 품으면 원한이 되고 미운 생각을 그냥 오래 가슴에 품고 있음으로 해서 스스로 마음의 병을 갖습니다. 이런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의 최후의 만찬식의 그림을 그려 나가는데 마침 사소한 일로 다른 예술가와 크게 다투었습니다. 싸운 후 그를 미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가롯 유다의 얼굴을 그릴 차례에 어떤 얼굴을 그릴까 마음 가운데 생각하다가 자기와 싸운 사람의 얼굴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자기와 싸운 그 예술가의 얼굴을 가롯 유다의 얼굴로 그려놓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의 얼굴을 그럴 차례입니다. 깊이 묵상하며 이렇게 그릴까 저렇게 그릴까 아무리 붓으로 그려도 예수의 얼굴을 그릴 재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번 실패하고 실패하다가 마지막에 자기 자신을 스스로 반성해보았습니다. “내가 왜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수가 없을까” 그는 고민하다가 마침내 답을 찾아내었습니다. “옳지. 내가 어떤 예술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예수님의 얼굴을 구상할 수 있겠나” 그래서 그 자리에서 그는 깊이 반성하고 처음에 그렸던 가롯 유다의 얼굴을 마음속에서 지우고 다시 모델을 찾아 그렸다고 합니다. 그러고서야 예수님의 얼굴을 바로 그릴 수 있었습니다. 이 그림이 유명한 최후의 만찬식 그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미운 사람을 가지고서는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의 얼굴을 새길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미워하는 마음으로는 예수님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동기로 나에게 분한 생각을 가져왔든지 간에 그 분한 마음을 오래 품으면 안 됩니다. 성경에 보면 분을 품어도 해가 지도록 품지 말라고 권면을 합니다. 둘째로 꼭 땅에 속한 악한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기하는 생각입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옛날부터 승기자염이라고 나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하는 감정인데 이것은 나의 교만, 이기주의, 열등감, 자기 부족에서 오는 합당치 않은 감정입니다. 오래 품으면 타락하고 영혼이 썩어버립니다. 사울왕의 말로도 시기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라는 사랑의 정신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을 각각 자신보다 낫게 여김으로 겸손의 기독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음란하고 불결한 생각입니다. 음란하고 불결한 생각은 사람의 영혼을 부패시킵니다. 이 음란하고 불결한 생각은 그 근원에서부터 막아야 합니다. 책도 가려 읽어야 합니다. 대중 잡지, 영화 서적은 선택을 잘하여 우리 마음이 늘 깨끗해야 합니다. 이제 땅엣 것을 생각했으니 위엣 것에 관한 것에 대해서 생각하겠습니다. 사실 땅에 관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면 위에 관한 것을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병 속에 있는 공기를 빼낼려면 맑은 물을 넣으면 자연히 공기는 쫓겨 나갑니다. 이것을 불가입성의 원리라고 합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면 자연히 땅엣 것은 소멸되고 땅엣 것은 들어오려고 해도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라는 뜻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위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리스도가 계시고 하늘나라가 있으므로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고 하늘나라를 항상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위엣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온 우주 삼라만상, 모든 해와 달과 별들도 하나님에게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는 산을 볼 때도, 온 들의 황금물결로 뒤덮은 논을 볼 때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감사를 올려야 합니다. 사람을 볼 때도 하나님을 생각해서 이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인 것을 항상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시기가 있을 수 없습니다. 교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사귈 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자매와 사귈 때도 하나님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식탁을 대할 때도 이 모든 음식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감사하며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를 할 때도 먼 미래를 바라보며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기 위해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생활하는 것이 위엣 것을 생각하는 생활입니다. 가까이서부터 멀리까지 사방을 바라 볼 때에 언제든지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디든지 천국은 임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 다음에는 위에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라는 말은 언제든지 그리스도를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온유한 성품을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진리를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깨끗한 생활을 생각차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고 그의 부활의 능력을 생각하고 그의 승천을 생각하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는 그의 빛난 얼굴을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내와 자비와 긍휼과 능력과 그의 성결을 묵상하라는 말입니다. 분한 생각이 들어오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생각해 보라는 뜻입니다. 스데반은 순교할 때 그리스도를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하여 하늘을 볼 때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는 주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살 때도 주를 생각했고 죽을 때도 주를 생각했습니다. 성자 프란시스는 얼마나 주님을 생각했던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얼마나 간절히 생각했던지 두 손바닥에 그 못 자국 흔적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자 프랜시스의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빌 4:8에 “무엇에든지 참으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들이란 무엇입니까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정결한 것,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어떤 기회든지 무엇을 할 때든지 친구 간에도 사교할 때에도 공부할 때에도 독서를 할 때도 언제든지 진, 선, 미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먼저 생각하여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스데반과 같이, 프란시스와 같이 우리는 올바른 삶,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셋째로 하늘 나라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 결국 화려한 하나님 나라에 갈 사람들입니다. 하늘을 생각하라는 말은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천사들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앞서 간 그들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름다움을 볼 때 하나님 나라는 그보다 더 아름다운 동산인 것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좋은 찬송을 들을 때 하나님 나라의 천사들의 노래는 더욱 아름다운 것임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좋은 사람을 만날 때 하나님 나라의 천사들의 얼굴은 더 빛나는 얼굴인 것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무엇을 보나 위엣 것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이 위엣 것이 어떻게 하여야 우리들 마음에 가득 찰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매일의 찬송과 기도와 성경 말씀을 읽음으로 우리의 가슴을 위엣 것으로 충만히 채울 수 있습니다. 교독문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죄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고 했습니다. 주야로 주의 뜻을 찾기 위해 기도로, 찬송으로 말씀의 묵상으로 신앙의 생활에 성실하면 우리들 가슴에 위엣 것으로 가득 찰 수 있는 것입니다. 찬송과 기도와 하나님 말씀으로 충만할 때 그 사람의 마음에는 주님의 평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합니다. 모든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마 18:20의 “주의 이름으로 두 세 사람만 모여도 그와 함께 할 것이라” 막 9:23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고 하신 약속들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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