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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개혁자 느헤미야 (느 1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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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는 미천한 출생으로 민족과 문화와 종교를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작하여 훌륭하게 끝마친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란 뜻은 “주께 위로받음”이라는 뜻입니다. 느헤미야가 유대 총독으로 재임한 기간은 12년간으로써바사 왕 아닥사스다 즉위 20년부터 32년까지였습니다(느 5:14).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돌아와 신앙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토목 공사를 할 수 있는 기술도 있었고, 산발랏과 도비야가 반대운동을 할 때도 능히 이결낼 만한 능력을 구비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애국정신이 강하였고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유대 민족사상을 시온주의로 이끌어 나간 위대한 영도자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믿음의 사람이요, 예루살렘 성곽을 중수한 사람이요, 유대인의 침체된 신앙을 다시 대부흥시킨 자요, 청렴하고 의로운 사람 이였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행복하게 하고자 큰 포부를 가졌습니다.

1. 느헤미야의 신앙 개혁 신앙 개혁은 율법을 낭독하므로써 시작되었습니다. (1) 율법이 백성들의 죄를 각성시켰습니다. 율법을 낭독한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광야를 통과할 때에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이 이 이스라엘의 통과를 불허했을 뿐만 아니라 발람을 시켜 이스라엘을 저주케 하였으므로 모세는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신 23:3)고 엄명해 놓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과 함께 거하는 모압 사람과 암몬 사람을 가려내어 축출해 버렸던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죄인 줄 모릅니다. (2) 암몬사람과 모압사람의 죄는 어떤 죄입니까 암몬사람과 모압사람의 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온당한 요구를 악으로써 물리친 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평지에 이르렀을 때 모압왕 발락이 선지자 발람을 뇌물로 유혹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한 죄입니다(민 22:1-6). 이때 하나님은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발람은 이스라엘을 축복했습니다. 모세는 모압을 영원히 이스라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3) 신앙 개혁은 섞인 무리를 분리시킴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율법이 대중 앞에서 낭독되자 놀라운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율법은 그것을 들은 백성들로 하여금 죄와 의무, 선과 악을 구별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백성 속에 섞인 이방인을 추방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민족 속에 섞여 살던 이들은 항상 탐욕적이었기 때문에(민 11:4)이스라엘에게는 거친 돌이 되어 왔던 것입니다.

2. 느헤미야의 신앙 개혁은 성전을 정결케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없는 동안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사돈 도비야를 성전 안 골방을 사용하게 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이방인과 사돈을 맺은 것입니다. 도비야가 누구입니까 저주 받은 롯의 둘째 딸의 자손인 암몬사람의 피가 섞인 유대인입니다. 도비야는 사마리의 외교관이요, 예루살렘 성을 쌓을 때 산발랏과 함께 극령 방해했던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그런데 그가 제사장의 일가와 결혼하고 출세하여 덕분에 성전 안 골방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자요,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한 자였는데 이러한 일을 엘리아십은 허용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심히 근심했습니다. 유대의 부패와 범죄는 성전 안에까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성전 재건을 집요하게 방해했던 암몬사람 도비야가 성전 안에 성물 두는 골방을 개조하여 그의 전용 거실로 삼고 있었으니 이것은 전적으로 제사장 엘리아십의 부패와 타락에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곳간에 비어있다는 그 자체가 성전에 바치는 제물과 십일조가 줄어들어 성전 재정이 고갈되었다는 뜻이 며, 제사장과 레위 인들도 백성들과 함께 성전을 등한히 하였기 때문에 자기들의 성직을 포기했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이 느헤미야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성막을 수리하는 일과 성전의 제도를 바로 잡는데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전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도비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한 제사장 엘리아십까지도 축출해 버렸습니다. 언제나 종교는 외부의 적 때문에 아니라 내부의 적에 의하여 부패하고 그 생명력을 잃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교회 내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며, 성도의 마음을 악하게 하는 도비야 같은 사람이 한 사람도 안계시기를 원하는 바입니다. 다같이 느헤미야와 같이 충성하고 의로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이요, 은혜 받는 곳이요, 축복받는 장소입니다.

3. 버림받은 하나님의 전을 원상회복했습니다. 성전에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세운 방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들 중에 제사를 위한 제물과 십일조를 넣어 두는 방이 있었는데 백성들이 십일조를 바치지 않으니 그 방들이 비게 되었습니다. 방이 비게 되었으므로 이방인 도비야가 유숙하게 된 것이었고 십일조를 두는 방이 비게 되니 성전의 노래하는 사람들과 제사장, 레위 인이 살 수가 없어서 다른 직업을 찾아 성전을 떠나고 말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1) 성전이 버린바 된 첫째 이유는 성전 관리 책임자인 엘리아십이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다시 수산궁에 잠시 돌아간 사이에 엘리아십이 대제사장이됐는데 엘리아십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 인들에게 그들이 살아갈 보수를 주지 않았으며 안식일에 감사하는 일에 방치해 두었으며 유대 백성들의 이방인과의 혼인하는 것은 금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의 손자를 대적 도비야의 딸과 혼인시킨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느 13:23-28). 거기에 도비야에게 하나님의 성전에 특실을 마련하여 대적에게 극심한 대우와 대제사장의 직권을 남용하여 성전 모독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있었다면 감히 이런 일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2) 레위 인들이 직무를 버리고 세속적인 삶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레위 사람들이 성전 직무를 버리고 그들의 밭이 있는 땅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그들이 보수를 받지 못한데 있습니다. 성전이 폐허가 된 것은 대제사장과 레위 인들이 모두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민장들과 백성들을 책망을 했습니다. 십일조를 내어 하나님의 곳간에 비지 않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넘치는 축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것이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을 건너 12지파에서 여호수아를 통하여 기업을 분배하실 때 레위지파에게는 아무런 분깃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네 분깃이라”고 하였고 “성전을 섬기는 자는 성전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12지파의 십일조로 레위지파가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 생활을 등한히 하므로 레위인은 하나님의 성전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 밭으로 다가고 만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입이 없어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신앙이 없어서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광경을 본 느헤미야는 지도자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이 전이 어찌하여 버린바 되었느냐고 한 후에 레위사람들을 불러 다시 그 처소에 세웠더니 온 유대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십일조를 가져다가 성전에 들이고 제사장으로 십일조를 감독케 했습니다. 이제 느헤미야에 의해서 성전 직무는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흩어졌던 레위 인들은 성전으로 돌아오고 백성들은 다시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성전 재건은 현실적인 성전 재건을 통하여 장래에 이루어질 영원한 성전 메시야 도래에 의한 새로운 성전 재건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4.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1)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죄 1) 하나님의 성결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성별시키신 날입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음은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는 것일 뿐 아니라 신성 모독하는 죄였습니다. 2)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의 죄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연결하는 고리입니다. 이 고리가 끊어지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관계를 공고히 하셨습니다. 3) 삶의 의미를 잃은 죄입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천지를 지으시고 이레 되는 날은 안식 하셨습니다. 여기서 안식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거룩과 축복에 참예하는 것을 뜻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요, 안식을 지키지 않을 때 우리는 삶의 의의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2)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을 잘 지키도록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안식일에도 노동하며 장사하므로 안식일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엄히 금하고 안식일에 성문 안으로 물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성문을 지켰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 밑에서 자다가 일찍 들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느헤미야는 성문을 굳게 지키며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도록 했습니다. 오늘의 성도는 주일을 거룩히 지켜야 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주일은 예배의 날이요, 축복의 날이요, 감사의 날이요, 선행의 날입니다.

5. 가정을 깨끗이 했습니다. 포로 귀환 후 유대 백성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가 잡혼 문제였습니다. 이미 이방인과 결혼하여 자식까지 둔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에스라가 결혼제도를 개혁한 후 25년이 지났지만 계속하여 잡혼이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고 실제로 당시 유대 백성들은 대제사장으로부터 아래 백성들까지다 이방인과 혼인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이방인과 잡혼의 결과로 자녀를 낳았는데 모든 자녀들은 아스돗 방언, 암몬 방언, 모압 방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 방언은 안 하였습니다. 즉 잡혼은 유대 백성들의 자녀들이 유대 말을 잃어버리게 되었으니 이것은 유대 사회를 볼 때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잡혼을 금하게 하신 까닭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구약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 종족의 종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우상숭배를 받아들이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신앙을 버린다는 의미가 있었으며 그 결과로 이방의 침략을 초래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에서 잡혼을 금지한 것입니다(출 34:15). 느헤미야는 민장들에게 “너희 딸을 저희에게 주지 말고 저희 딸을 너희자부로 데려오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하라 옛 것에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 하지 아니하였느냐 오늘날 너희가 이방인을 취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 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고 책망하며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께서 명심하실 것은 불신의 자들을 집안에 데려오는 것은 행복이 도망가는 것이며 딸을 고이고이 키웠다가 불신자와 결혼시키는 것은 새끼 양을 맹수에게 잘 보호해 달라고 맡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한쪽 믿음의 가정이 있다면 느헤미야처럼 우리 가정이 축복받기 위하여 애써야 할 것입니다. 느헤미야야 말로 여호와의 종교를 부패에서 개혁하고 쇠퇴와 타락에서 부흥시킨 믿음의 선구자였습니다. 우리 신자들도 느헤미야와 같은 담대한 신앙의 용기가 있어야 하겠으며 주님의 몸 된 성전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헌신하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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