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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비스가산과 발람 (민 23: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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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스가 산상에서 예언을 한 선지자 발람에 관해서 말씀하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의 긴 준비생활을 마치고 이제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약속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면 여리고 성이요, 맞은편이 넓은 모압 평지입니다. 이 모압 평지에 사는 모압 사람들과 그리고 시내 반도를 헤메고 다니는 미디 안 사람들이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기 이전에 마지막 일 격을 가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고자 한 꿈을 갖고 그들이 계략을 세웠습니다. 지금까지 들은 바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도움과 인도로 말미암아 전쟁에서 항상 승리하는 민족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전쟁 을 걸어서 멸망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전쟁이 아닌 다른 방법을 모색하였습니다. 이 계략을 세운 모사가 다름 아닌 모압의 왕 발락이었습니다. 발락은 기발한 계략을 세웠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성공 한 이유는 그들이 무기가 있어서, 그들이 전투에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돕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그러하니 하나님이 그들에게서 얼굴을 돌려 버리면, 하나님이 그들을 저주해 버리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는 현실을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을 저주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사용 되는 선지자를 동원해서, 선지자를 잘 매수해서 그들에게 축복할 자리에 저주를 선언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손 한 번 대지 아니하고 멸망시켜 보려는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드디어 당대에 이름이 있는 예언자 발람을 뽑았습니다. 발람을 발탁한 다음에 모압 왕 발락이 선택한 장로들과 미디안의 장로들을 뽑아서 많은 예물을 가지고 발람에게 찾아가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교섭에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발람 선지자가 예물을 보고 마음에 양이 차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여 이번에는 더 많은 예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예물을 가지고 교섭하려 가는 사람들을 더 높은 귀족들로 택해서 보냈습니다. 이 많은 예물에 눈이 어두어진 발람이 드디어 발락에게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안장에 짐을 싣고 말을 타고 발락에게 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도중에 사 자를 보내사 그 길을 막으신 것입니다. 천사를 보내사 칼을 들어 발람 선지가 가는 죄악의 길을 막으신 것입니다. 번쩍이는 칼을 본 말은 울면서 앞발을 올리고 가는 길을 주저했습니다. 그 때 발람은 세 번이나 말을 쳤습니다. 말은 두려움에 떨면서 자기 앞에 보이는 번쩍이는 칼을 헤치고 갈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슬피 울었습니다. 그 울음소리에서 발람은 한 음성 을 들었던 것입니다. 말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발람 선지자여 왜 가서는 안 될 길을 가려고 하느냐” 그 말을 듣자 드디어 발람 선지자의 눈도 보게 되었습니다. 눈앞에 나타난 칼을 휘두르는 천사를 보고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하는 말이 “내가 가기는 가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말만하지 저주는 하지 않았습니다” 천사는 이미 결심을 하고 떠나는 발람을 더 이상 막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믿는 성도들이 마음에 주의 뜻이 아니라고 작정을 했으면서도, 그래도 어떤 유혹에 끌려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길을 갈 때가 있습니다. 한 두 번은 하나님께서 막으십니다. 설교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사건을 통해서 막으십니다. 그래도 끝까지 갈 때는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는 것입니다. 드디어 모압 왕 발락의 집에 이르렀습니다. 발락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큰 예찬을 마치고 난 다음에 발락은 발람을 비스가 산꼭대기로 데리고 갔습니다. 왜냐하면 비스가 산에서 내려다보면 수많은 이스라엘 군들이 진 을 치고 있는데 그 진의 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끝을 보고 난 다 음에 백전백승의 이스라엘 군도 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오합지졸에 불과 하다는 것을 깨닫고 축복 대신에 저주할 마음이 나도록 비스가 산꼭대기에 발람을 데리고 간 것입니다. 발람은 일곱 제단을 마련하고 거기에 일곱 수양과 수송아지를 잡아서 제물을 드리게 했습니다. 완전한 숫자입니다. 일곱의 숫자는 영적인 완전수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영감을 줍니다. 저주할 수 없다. 축복을 하라고 말입니다. 이 축복은 네 번이나 계속되었고 특히 네 번째 축복 가운데는 장차 예수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실 것이라는 메시야 강림의 예언까지 포함된 것입니다. 그는 선지자로써 할 일을 다 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예언만 할 수 있었는데, 그 예언 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열납 되는 예언인가를 보이기 위해서 제사까지 지내게 했습니다. 완전한 숫자의 단을 만들어서 제사를 지내게 한 것입니다. 이제 선지자의 사명이 일단 다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발람은 모압 왕 발락에게 뇌물을 받았으니 그 뇌물을 받은 댓가로 이스라엘 백성을 망하게 하는 비밀을 발락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즉 겉으로는 선지자 행세를 했고, 밤에 몰래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는 이런 비밀을 누설한 것입니다. 그가 누설한 비밀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장정들 로 모압 여인과 음행하게 하고 모압 신들 앞에서 제사를 드리게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시라고 하는 일급비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적군 앞에 강해도 일단 이방인 여인과 더불어 간음하여 그 간음한 댓가로 모압 여인들이 섬기는 이방신 앞에 절만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을 치시리라는 것입니다. 그 말 그대로 이스라엘 청년들이 모압 여인들과 더불어 간음하고 이방인의 섬기는 우상 앞에 절한 이스라엘은 다 멸절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서운 전염병을 보내서 전멸을 당하게 한 것입니다. 이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혼이 무엇입니까 이 얘기는 단순히 비스가 산에서 일어난, 그리고 모압 진에서 밤중에 일어난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는 사단의 책략이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슬픈 사건입니다. 발람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 주변이 아니라 내 자신들이 발람의 철학을 소유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1. 발람은 두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발락의 사신들이 와서 교섭할 때 벌써 이것이 하나님께서 온 것이 아니라 사단에게서 온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하니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망 하게 하는 사단의 사역인 것을 알면 즉시 내좇아야 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성경을 끼고 집에 들어오면 아예 그런 이단들이 너 희 집에 들어오면 나는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하고 내쫓아 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그런 이단과는 인사도 말라고 했습니다.

2. 발람은 제단은 있으되 순종은 없었던 선지자였습니다. 발람은 비스가 산에 올라가서 선지자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 제단을 쌓게 했습니다. 수양과 수염소로 제물을 바치게 했습니다. 제단의 수는 일곱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완전 순자였습니다. 완전한 제사를 드린다는 속셈 이었습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예언했으며 가감 없이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 내려와서는 그는 다근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모압 진에 내려가서는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모압 진에 내려가서는 그들 집단에 맞추어서 타락의 춤을 추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덫을 놓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지없이 타락하게 만들고 그들이 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끝내 그 짓을 하다가 미디안 왕들이 죽을 때 이스라엘의 칼에 함께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비참한 발람 선지자의 최후를 놓고 우리가 배울 바가 무엇입니까 산 위에서는 제단을 쌓고 산 아래서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불순종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예배와 생활을 분리시키는 그러한 성도, 주일에는 제단생활 주간에는 범죄 생활에 익숙해지는 그러한 성도, 세상의 장단에 맞추어서 향락과 범죄의 춤을 추면서 전혀 죄에 대해서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를 꺼려하는 성도가 오늘날의 발람 선지자입니다. 우리는 일요일의 하나님은 믿어도, 월요일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러한 성도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보다도 돈을 사랑한 가룟 유다의 최후를 우리는 잘 압니다. 재산 때문에 주님 따르기를 거절한 젊은 관원의 실패를 잘 압니다. 돈 때문에 이스라엘을 판 발람의 실수와 그 최후를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겉으로는 나를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적어도 “주여! 나는 주님의 백성입니다. 그런데 주의 백성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주여! 나의 예배생활과 일상생활이 일치되게 하시고 나의 전체가 산제사를 드리는 생활을 통해서 예배드리는 제물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 중심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될 때 우리는 발람 선지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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