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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눔의 윤리 (레 19: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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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의 핵심은 다름아닌 “나눔의 윤리” 입니다. 세상의 윤리는 개인이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여 행복한 생활을 영위 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두지만 하나님의 윤리는 얼마나 많이 나누어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둡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도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구경했다고 합니다. 그 곳에 가보니 천국과 지옥에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는 풍성한 음식이 놓여 있고 그 사람들은 모두 팔을 구부릴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잘 먹어서 밝고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못 먹어서 피골이 상접 해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도 이상하여 그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놀라운 사실이 그 곳에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아 ! 바로 이것이 천국과 지옥의 차이이구나!” 라고 하면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천국에 있던 사람들은 앞에 놓여진 음식을 집어 앞에 앉은 다른 사람을 주었지만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앞에 놓인 음식을 자기만 먹으려고 굽혀지지 않는 팔 을 들어 음식을 집으려고 애썼습니다. 당연히 천국의 사람들은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지만 지옥의 사람들은 음식을 눈 앞에 두고서도 먹지 못 한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원리와 지옥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풍성히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서로 많은 것을 홀로 갖기 위해 투쟁하듯 살아갑니다. 여기에는 오직 부족함만이 있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더 많이 갖기 원하니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나눔의 윤리로 살아갈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두라”(레 19:9-10)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나눔의 윤리가 갖는 의의를 발견할 수 있게됩니다.

1. 나눔의 윤리는 모든 사람에게 덕을 끼칩니다 나눈다는 것은 나누는 주체와 나누어 받는 대상이 있게 됩니다. 즉 나눔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 라는 공동적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모든 만물이 공동적으로 삶을 영위토록 했습니다.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함께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아담이 홀로 사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 지으리라”(창 2:18)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공동적 존재인 것을 간파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 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함께” 행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불행하고서는 나 홀로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함께 행복해지는 인간 사회를 위해 우리 주님은 “서로 사랑하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는 나눔의 행위가 있는 사회입니다. 내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은 “나와 너” 곧 우리 모두를 만족케 합니다. 주는 사람은 주는 사람대로, 받는 사람은 받는 사람대로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 분은 자신을 우리에게 하나도 남김없이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분의 이러한 행위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 예수님의 삶을 몸소 배워야 할 것입니다.

2. 나눔의 행위는 우리의 능력이 닿는한 행해져야 합니다 나눔의 행위는 잉여분을 가지고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권리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으로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유의 깊게 살펴보면, 밭의 수확을 다 취하지 말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남겨 두라고 했습니다. 즉 자신의 소유물이 되는 것 중 일부를 나누라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잉여분으로 남에게 나누어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나눔은 자신의 희생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분명히 목격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눔의 행위는 자신의 “피와 살”을 주는 행위였습니다. 그 분의 나눔은 완전한 자기 희생입니다. 자기희생을 근거로 한 나눔만이 그 가치를 발휘합니다. 자기 희생을 통한 나눔은 은밀히 행해집니다. 나눔의 목적이 자기 과시인 사람도 있습니다. 매스콤에 나와야만 나눔의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결코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구제할 때에 외식 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하라”(마 6:2-3) 자기 희생이 없는 나눔의 행위는 자기 기만입니다. 진정한 나눔은 진정한 희생 위에서 이루어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3. 무엇보다도 영적인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현대인은 영적인 고갈을 느끼고 삽니다. 누군가는 이들에게 영적인 풍성함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 일을 바로 우리 기독교인이 하여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풍성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혼자만 지니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나누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기게 되는 영적인 풍성함을 영적 고갈을 느끼는 이들에게 전해 야 합니다. 사랑하는 정도 여러분! 우리들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복음을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것은 말로만 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나”를 부인하고 살아갈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내 속에서 살고 “나”는 희생되어져야 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우리 자신을 살리는 길이요 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길입니다. 고인 물은 썩습니다. 물은 자주 갈아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혼자만 지니고 있어서는 썩고 맙니다. 그것을 자꾸 나누어 줄 때 그 복음의 능력이 나에게 체험될 것입니다. 나눔의 윤리!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표 내가 없어진만큼 참된 나는 너에게 나타난다. 주님의 길 그 길은 나눔의 길이요 나를 잃어 버리는 길 온전히 자신을 버렸을 때 그 분은 어느 새 나에게 나타나셨다. 우리들 세계가 모든 “나”를 부인하려 한다면 그 곳은 “우리들의 천국”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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