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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마 22: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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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율법 중에 가장 큰 계명이 어느 계명이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율법 중에는 “하라”는 조목도 많은 반면에 “하지 말라”는 조목도 많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곧잘 이런 토론을 벌이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율법사의 질문은 그때 흔히 있을 수 있었던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당시 율법사만이 묻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율법사 외에도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이와 똑같은 질문을 던져 왔으며 지금도 이러한 물음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1. 신앙 중에 가장 위대한 신앙은 어떤 신앙이냐고 사람들은 묻고 있습니다 혹자는 40일 금식기도했다고 자랑이요, 혹자는 1주일에 하루씩 입신, 철야기도와 백일 철야기도를 했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세 시간마다 한번씩 기도를 드리고, 이레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꼬박 꼬박 바치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혹독한 책망을 받은 것을 보면 반드시 위에 나열한 신앙만을 잘 믿는 신앙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가장 좋은 신앙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줄 아는 신앙입니다. 이 두 가지가 곧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 등한시되는 곳에 크고 첫째 되는 신앙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진실로 위대한 신앙을 가지고 싶으면 먼저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준행해야 합니다. 보이는 형제도 사랑치 못하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찌 사랑할 수가 있으며 하나님을 사랑치 못하는 자가 어떻게 잘 믿는 신앙의 소유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을 상실한 신앙인이 되어지는 때가 많습니다. 성경을 정독하고 성경 구절을 줄줄 잘 외우고 주일도 잘 지키나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식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율법주의자로 후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칭찬받을 신앙이 못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잘 믿는 자가 되고 싶거든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과 형제 사랑하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 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님을 우리는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2. 은사 중에 가장 큰 은사는 어느 것이냐고 사람들은 묻고 있습니다 혹자는 은사 중에는 신유의 은사가 제일이라고 자랑하며, 혹자는 예언이 라고 맞섭니다. 혹자는 투시라고, 혹자는 안찰이라고 역설합니다. 혹자는 말씀이 제일이라고 역설합니다. 또 혹자는 방언이 제일이라고 고집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병을 고친답시고 환자를 깔아 뭉게 죽이기도 하고, 혹자는 예언을 한답시고 점쟁이 노릇을 하기도 하고, 혹자는 투시를 한답시고 남의 있는 흉, 없는 흉을 마구 들추어내어 공석 상에서 망신시키는 일을 예사로 하고, 혹자는 안찰을 한답시고 젊은 여인들의 몸을 마구 주무르며 별 별 음흉한 짓을 다합니다. 혹자는 말씀의 은사라고 하며 욕설과 궤변을 마구 내뱉고 돌아다닙니다. 혹자는 방언의 은사임네 하고 된 소리, 안된 소리를 제멋대로 쏟아 놓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한국교회는 그야말로 춘추 전국시대의 정황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 바람에 넋을 잃은 이는 평신도들입니다. 믿을 바에야 은사를 받고 싶고, 은사를 받을 바에야 최고의 은사를 받고 싶고 남이 볼 때 은사를 받았다고 인정받는 은사를 받고 싶기 때문에 자연히 우왕좌왕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은사 중에 어떤 은사가 최고의 은사이겠습니까 은사는 여러 가지이며 이 여러 가지 은사는 다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받은 것만이 제일이라는 독선에 빠져서도 안 되지만은 남의 은사만을 부러워하며 모방하기에 급급해서도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처럼 방언만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는 폐단이 지금도 우리 중에 있습니다.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최고의 은사는 사랑입니다. 모든 은사는 사랑으로 행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떤 은사이든 사랑으로 행사하지 못할 때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설령 내가 다른 아무런 은사를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몸처럼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것은 은사 중에 단연 최고의 것입니다. 흔히 은사를 받았다는 자 중에 형제를 멸시하고 자기만을 높이려 하며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화합을 파괴하고 분열을 획책 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는 바울의 말대로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3.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어떤 죄냐고 묻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죄를 범한 일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가장 큰 죄는 아닐 것이다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하기는 지금까지 입건이나 기소를 당해 본 일이 단 한번도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없을 것이니 죄니 회개니 하는 설교가 부당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의식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라 하였고, 이 첫째 계명을 이행하지 못한 자는 가장 큰 죄인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 곧 가장 큰 죄가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무슨 강력사건만을 죄로 생각하고, 흉악범만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당한 견해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거나 사랑한다 하더라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치 않고 있는 그것이 바로 죄이며, 이웃을 사랑하고 있지 않거나 사랑한다 하더라도 내 몸처럼 사랑치 않고 있다면 그 사실이 곧 가장 큰 죄인인 것입니다. 종교가 근본적인 것을 상실하고 지엽적인 것에만 치중할 때 해골 같은 형식만 남게 됩니다. 진리란 복잡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종교가 의식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계명 중에 과연 어느 계명이 큰 것인가를 우리도 부단히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며 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요구이십니다. 우리는 삶의 올바른 이념을 세워서 계명을 찾아 살펴 삶의 목적을 세우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며, 영혼 구원의 성취를 위해 살며, 인류 봉사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첫째 되는 계명,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늘 기억하여 하나님께 영광 되는 생을 누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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