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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파수를 맞추어라 (고전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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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주파수로 통하는 시대입니다. 인간생활의 각 분야에서 다 그렇지만 특히 인공위성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통신수단의 일대변혁을 이루어놓았는데 T·V, 전화, 텔레타이프 등 할 것 없이 주파수만 맞추면 미국에 가지 않고서도 미국의 소식을 환히 들을 수 있고 일본에 가지 않고서도 일본의 소식을 들을 수 있고 기독교 방송국, 문화 방송국, 중앙 방송국을 일일히 가보지 않고서도 다 들을 수 있는 아주 편리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통신수단의 일종에 불과한 주파수의 원리를 신앙의 원리에다 적용시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1. 보내는 주파수와 받는 주파수가 일치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에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야 분별하느니라”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사물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이치는 마음의 눈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소리는 귀를 통하여 들을 수 있고 냄새는 코를 통하여 맡을 수 있는 것같이 하나님을 보려면 영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형이하학은 형이하학적인 인간의 오관으로 감지할 수가 있고 형이상학은 형이상학적인 인간의 이성으로야 감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형이하학적인 인간의 오관으로 판단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은 인간 이성의 추구와 판단의 도마 위에서 마음대로 요리될 수가 있고 과학도 인간의 지성과 의지의 꾸준한 노력과 함께 개발로써 혁신을 가져올 수가 있고 문학도 인간의 감정과 정서의 도야로써 그의 면모와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지만 천국의 오묘하고 신령한 비밀은 영혼의 주파수와 믿음의 귀로서만이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불신자들이 복음을 미워하고 찬송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아름다운 베토벤의 교향곡도 헨델의 메시야 곡도 잠을 자고 싶은 무식한 대중에게는 한낮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할 것이며 세상을 주름잡는 올림픽 선수들의 열띤 경기도 운동에 소질없는 굶주린 걸인에게는 한 조각의 빵보다도 더 무가치한 것처럼, 아무리 하늘에서 나팔이 울리고 천사장의 호령소리가 들려도 믿음이 없고 성령의 주파수가 맞지 않는 자에게는 한낮 뇌성소리만큼도 두렵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리는 것이지,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므로 성령과 내 영혼의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취미가 붙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주파수와 내 영혼의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성경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책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세상에서 영권을 가지고 왕노릇하시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었는데 야고보와 요한은 세속적인 권세를 가지고 유대의 왕으로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주님의 주파수와 그들의 주파수가 맞지 않은 것입니다.

2. 주파수는 시간의 일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방송을 들을 때 내가 듣고 싶어하는 순서(프로그램)의 시간을 알아서 주파수를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천기는 측정할 줄 알면서도 시대의 징조를 보고 말세가 온 줄 모르느냐”고 하셨습니다. 만사는 다 때가 있습니다.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으며, 시작할 때가 있고 끝맺을 때가 있으며,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전도서 기자는 말했습니다(전 12:1-8, 3:1).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롬 13:11에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되었으니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옛날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던 사람들은 시대에 민감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고후 6:2에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주파수만 맞추면 원하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들을 수 있듯이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면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고 때를 분별치 못해 멸망당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노아시대의 사람들도 모두 멸망당했고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사람들도 깨닫지 못하다가 하늘에서 유황불이 떨어져 모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파수를 하나님께 맞춰 시대를 올바로 분별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3. 주려고 하는 자의 열심과 받고자 하는 자의 열심이 같아야 합 니다 전기 스위치를 켜 놓지 않는다고 하여 발전소가 쉬고 있는 것이 아니요 주파수를 맞추어 놓지 않았다 하여 방송국이 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지 않았을 뿐이지 방송국에서는 잠시도 쉬지 않고 방송을 내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으려고 심령의 문을 완강히 닫아 버릴찌라도 하늘에서는 무진장한 은혜가 날마다 시간마다 쏟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러분과 나에게 은혜를 주시고자 애타는 심정으로 부어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들을 때 목사가 설교를 준비하는 것의 삼분의 일만큼의 마음가짐으로 나오시면 은혜를 못 받을 리가 없습니다. 더구나 내가 심혈을 기울여 외치는 것처럼 여러분이 심혈을 기울여 열심히 듣는다면 은혜를 못 받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 선생은 예배를 드리다가 옆 사람을 본다거나 얘기하거나 웃는 자가 있으면 치리를 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배를 정성껏 드려야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목사와의 주파수가 맞는다면 은혜스러운 교회가 될 것이요 목사와 성도의 주파수가 맞는다면 교회는 부흥할 것입니다. 방송실에서 나오는 주파수가 각 라디오의 주파수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라디오가 방송국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주파수에 맞추고 성도가 목사의 주파수에 맞춰야 합니다. 주파수가 안 맞으면 그 라디오는 잡음만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주파수를 맞추지 못한 성도는 잡음 투성이입니다. 은혜받지 못한 교인들 때문에 교회는 잡음이 들리고 말썽이 납니다. 주파수만 맞추어 놓으면 방송실에서 나오는 방송은 정확하게 들리기 마련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살면 만세 전부터 약속해 주신 축복들이 전부 다 우리에게 정확하게 내려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피가 쏟아지듯 무한대한 주님의 사랑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성도에게 허락해 주신 그 무진장한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방송실이 고장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파수가 고장이 났든지 틀렸든지 하기 때문입니다. 주파수가 맞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 것이요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주파수의 차이는 1㎜의 차이가 나더라도 잘 안들립니다. 죄와 의,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의 차이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옛 말에 일호지차는 천리지차라는 말이 있습니다. 머리털 하나의 차이가 천리 차이를 낸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그 명령에 합당하게 생활하면 하나님의 무한대한 축복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면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의 차이로 인생의 결과는 전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과 주파수를 일치해야 하며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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