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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꺼져가는 심지 (마 12: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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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상한 갈대로 우리 개인이나 교회나 민족 등 인격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꺼져가는 심지로는 그 인격의 역사(work)면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등불이나, 빛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요일서 1:6에서 빛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무한성, 지혜, 진리, 성결성, 등을 가리킵니다. 요 1:9에서는 그리스도를 참 빛이라 하였고, 요 8:12에서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 마 5:14-16에서는 믿는 성도를 세상의 빛이라 하였습니다. 여기 본문의 꺼져가는 심지라는 말은 이미 기름이 소모 되어 빛을 잃어가는 심지를 말합니다. 불꽃이 없습니다. 그러나 불티는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연기만 납니다. 이런 불도 주님은 끄지 아니하시고 큰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사랑의 숨결로 감싸주시고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셔서 불을 다시 일으키고 큰 빛을 발할 수 있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1. 먼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의 빛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현대인은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신앙의 빛을 잃고 꺼져가는 심지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초대교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의 무서운 박해 아래에서도 생명을 걸고 주님을 믿었습니다. 기독교를 믿고 성도가 된다는 것은 전도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전도자가 된다는 말은 순교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생명을 내걸어 믿었고 전도했습니다. 지하실 교회인 카타콤을 형성했습니다. 종교개혁 당시 로마 교황의 압력 아래에서도 개신교 초대교인들은 오직 믿음으로라는 신앙을 가지고 투쟁하였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역사적으로도 불멸하는 요원의 불길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에 복음이 들어오자 개화의 횃불을 들었고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에 반대하였고 열심히 모였으며 헌금에도 열심이었고 세계의 유례에 없는 뜨거운 불길로 부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이와 같은 불길이 차차 꺼져가는 것 같습니다. 믿음의 심지가 꺼져가는 어두운 세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작은 믿음은 연기가 많이 납니다. 연기는 우리 눈만 쓰리게 합니다. 작은 믿음은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작은 믿음을 멸시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와 같은 믿음도 멸시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작은 불티라도 다시 돋우어서 빛을 발하게 하십니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도마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 도마는 외출 나가고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도마가 돌아왔을 때 이구동성으로 제자들이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노라”고 간증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도마는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도마는 “나는 못 믿겠어. 나는 친히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져보고 그래야 믿지 난 못 믿겠어”하며 의심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의심하던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을 주님께서 어떻게 했습니까 다시 도마가 있을 때 주님이 나타났습니다. 다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도마야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를 만져보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라”고 말씀했습니다. 도마가 친히 만져 본 후에 엎드려서 하는 말이 “나의 주님이시여! 나의 하나님이로소이다”하였습니다. 작은 믿음, 의심하는 믿음, 연기 나는 믿음을 가진 도마를 튼튼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작은 믿음을 가졌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고 그 갈대를 회복하시고 그 희미한 불을 돋우어서 큰 등대로 삼으십니다.

2. 이웃을 대하는 우리의 사랑의 빛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현대인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빛만 잃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사랑도 식어진 듯합니다. 사실 하나님과 이웃사랑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초대교회 신앙은 불길 같았습니다. 아울러 성도들끼리도 생명을 내어놓고 사랑했습니다. 요 15:3에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는 문자 그대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아름다운 사랑이 넘쳤습니다. 교역자와 교인 간에 서로 사랑하고 희생적으로 봉사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점점 차가운 사랑 관계에 놓여진 것 같습니다. 교인의 대화도 단절되었고 서로 간에 불신하여 자기상실과 고독에 싸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저마다 고적하고 저마다 소외감을 느끼는 시대입니다. 바다 위를 항해하면서도 식수를 구하지 못하는 배처럼 대중 가운데서 고독과 소외를 느끼는 시대입니다. 현대인은 사랑을 많이 하고 있으나 사실 현대인은 진정한 사랑의 기갈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 5:16에 보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사랑의 목표는 이웃을 불쌍히 여겨 그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가가와도요히꼬는 이웃을 불쌍히 여겨 빈민굴에 들어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뜨거운 열심으로 봉사하면서 그의 양 눈은 눈병으로 상실했으나 낙심치 않고 그들과 함께 생활할 때, 뜨거운 사랑의 힘이 그 무지한 자들을 감화시켜 그들에게 소망을 주었고 이것이 일본 기독교의 힘이 되어 일본 사회에서 빛의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참된 사랑을 가진 사람을 찾기 어려워지고 꺼져가는 심지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3. 우리들 자신 속에 있는 소망의 빛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앙과 사랑의 빛을 잃은 현대인들은 소망의 심지도 꺼져가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역사 이래 많은 지식, 풍부한 물질, 편리한 문화 혜택 등을 가지고 다양하게 생을 즐기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중류급 생활수준은 고대 왕들보다 더 화려할 정도입니다. 영국의 극작가 G. B. Show는 말하기를 “사람에게 두 가지 실망이 있는데 하나는 실패했을 때의 실망이요, 하나는 성공했을 때의 실망이다. 그러나 무서운 것은 성공했을 때의 실망이다. 왜냐하면 실망했을 때의 실망은 다시 회복할 수 있지만 성공했을 때의 실망은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익스피어는 젊은 시절에는 희극을 작품으로 내놓았으나 노년에 이르러서는 비극을 작품 주제로 하여 대 걸작품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베니스 상인, 햄릿 모두 후대의 작품들입니다. 인생은 체험할수록 허무한 것이고 불안하여 소망의 빛을 잃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불길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현대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있어서나 이웃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나 모두 불빛을 잃고 꺼져가는 심지가 된 것입니다. 신앙, 사랑, 소망 이 세 가지는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진정한 신앙이 없이 사랑의 실천은 불가능하고 신앙과 사랑 없이는 소망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꺼져가는 심지를 주님은 끄지 아니하시고 신앙, 사랑, 소망이 미약하나 주님께서는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그리스도에게 의지하고 주님의 성령, 주님의 기름을 받아 꺼져가는 심지를 돋우고 다시 빛을 발하여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불이 밝은 등불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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