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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애국자의 기도 (애 0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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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서 유대의 여러 선지자 중에서도 지극히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 청정의 지도자이며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23년간이나 기울어져 가는 조국의 운명을 만회하기 위해서 애끓은 호소로 눈물로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며 눈물로 애도한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기업의 땅인 가나안은 선민의 산업이요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허락해 주신 땅이었습니다. 이 가나안 땅이 이방인에게 넘어가게 될 때에 선지자는 슬피 울며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1절에 “여호와여 우리의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수욕을 감찰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선민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에게 당한 것에 대해서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예레미야 선지가 표현한 말입니다. 예레미야는 “우리의 수욕을 감찰하소서” 했습니다. 그들이 당한 환란은 그들이 지닌 위엄과 부요에 비교하면 그들이 다른 백성들에게 끼쳤던 것보다도 더 큰 수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과거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예레미야의 불평은 수긍이 가는 불평입니다. 즉 “당신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우리가 이렇게 고통당해도 괜찮습니까”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빼앗기고 이제는 하나님 약속과 관계없는 의인이 그 땅을 점유하게 된 것입니다. 3절에 “우리는 아비없는 외로운 자식이오며 우리 어미는 과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보호자가 없는 백설, 위로가 없고 허물과 상처만 드러나는 백성이 되었으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수치가 된 것입니다. 4절에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섶을 얻으오며”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그들 자신과 가족들의 필수품을 위하여 힘들게 일하였습니다. 전에는 그들은 모든 것에 있어 풍부하였습니다. 전에는 물은 자유롭게,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압박자들이 그렇게 많은 물을 썼으므로 이제 그들은 돈이나 노동으로 사지 않고는 맑은 물을 한 모금도 얻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쉽게 연료를 구할 수 있었으나 이제 값을 주고 섶을 얻게 된 것입니다. 6절에 “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 그들 중 어떤 이는 양식 얻기 위하여 자유를 팔아 가장 천한 노동에 애굽인의 종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9절에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오니”라고 했습니다. 혹자는 양식 얻기 위해 그들의 생명을 무릅쓰고 모험을 한 것입니다. 자유로운 백성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노예 신분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당한 어떤 수욕보다 적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들의 노동은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의 그것과 같이 끊임이 없었습니다. 매일 같이 임무가 부과되고 또 지나쳤습니다. 그들의 비통함이 개선될 가망이 없습니다. 10절에 “주림의 열기로 인하여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림 검으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무서운 기근의 폭풍 때문에 마르고 또한 탔습니다. 기근이 백성들에게 점차로 왔지만 그것은 격심하게 왔고 그 앞에서 모든 것이 압도당했습니다. 거기에는 저항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그들의 치욕입니다. 16절에 “우리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으며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왕의 위엄은 그들의 영광에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왕이 굴욕에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왕관도 떨어 졌습니다. 그에게는 후계자가 없습니다. 왕의 홀, 왕관, 보주는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8절에 “종들이 우리를 관할함이여 그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종들에게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애굽이나 앗수르나 바벨론이 아무리 강대한 나라라고 하지만 함의 자손인 고로 종의 신분을 면치 못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게 되면 그 종 나라들에게 관할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참 수치로서 예레미야는 주의 백성이 이런 수치를 당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 14:34에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유대인의 치욕은 무엇입니까 본문 렘애 5:2-16에 말씀대로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수치와 참상을 하나님 앞에 애원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이렇게 수치에 빠지게 된 원인은 무엇입니까 왜 유대 민족이 망하고 성읍 예루살렘이 황폐해졌겠습니까 예레미야 선지자는 본문 18절에서 “시온이 황무하여 여우가 거기 노나이다”라고 했으며, 20절에는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이 애원은 애국애족의 선지자의 조국을 위한 슬픈 탄식인 것입니다. 시 79:1-3에 “하나님이여 열방이 주의 기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으로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저희가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며 주의 도들의 육체를 땅짐승에게 주며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면에 물 같이 흘렸으며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나라가 망하면 백성은 수치를 당하고 패한 백성이 업신여김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예루살렘이 비참하게 되고 황무하게 된 것은 먼저 우상에게 절한 죄요, 다음은 사치와 음란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렘 14:8에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손의 소위로 나의 노를 격동하며 너희의 가서 우거하는 애굽 땅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므로 끊어 버림을 당하여 세계 열방 중에서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고자 하느냐”고 했습니다. 우상에게 절하고 다른 신에게 분향한 것이 거룩한 성읍 예루살렘을 황폐하게 만든 죄인 것입니다. 또 왕족과 귀족들의 사치와 음란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이 망하게 된 것입니다. 렘 14:9-10에 “너희가 유대 땅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한 너희 열조의 악과 유대 왕들의 악과 왕비들의 악과 너희의 악과 너희 아내들의 악을 잊었느냐 그들이 오늘까지 겸비치 아니하며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내가 너희와 너희 열조 앞에 세운 나의 법과 나의 율례를 준행치 아니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상숭배와 음란, 사치의 죄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그 댓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기업으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는 원수에게 내어주고 양식을 얻어 주림을 면하고자 하는 신세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말을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에 있었던 얘기로만 알고 우리 시대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다같이 한국전쟁, 6.25를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나도 여러분도 현재의 우리 집을 원수들에게 우리 소유의 땅을 저들에게 내어주어야 했으며 나의 부모 나의 어린 동생들이 원수들의 관할을 받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렘 31:29-30에 “그 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 하겠고 신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이라고”라고 했습니다. 나라가 망한 것도 다 이와같은 원인과 결과인 것입니다. 겔 18:4에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잘 한다고 할지라도 죄를 범하면 하나님이 그 백성을 멸하신다는 말입니다. 겔 18:19-20에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악도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멸망한 것은 종교지도자들과 제사장들이 마땅히 져야할 죄악의 책임을 규명한 것입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타락했다고 하면, 제사장 한 사람이 타락했다고 하면, 일반 민중 천명이 타락한 것보다 더 비중이 큰 것입니다. 선지자가 되어서, 나라의 정치적 지도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을 바로 전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더욱 큰 것입니다. 집이 가난할 때에 어진 처를 생각하고 나라가 어지러울 때 충신이 생각난다고 하는 말은 너무나도 그 시대와 이치에 맞는 말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지도자들이 잘못해서 순진한 백성들이 기아 선상에서 헤매이게 된다면 백성들이 나라를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의 실정의 죄에 대해서 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렘애 4:17에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치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라고 했습니다. 시드기야 왕의 어리석은 정책으로 인하여 백성을 무서운 낭떨어지로 떨어뜨렸고 자식은 종으로 포로되어 이방으로 사로잡혀 가게 되었으니 선지자의 눈에서 눈물지을 날이 없어 눈이 어두워졌다는 말입니다. 지도자가 죄를 범하면 지도자도 망하고 백성도 다같이 망하게 됩니다. 렘애 4:20에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가 저희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저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저의 그늘 아래서 열국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지도자를 믿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의 기도는 민족의 당하는 참상과 재앙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자기 민족이 당하는 참상을 본 예레미야는 근심으로 눈이 어두워졌다고 말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참상을 겪으면서 선지자의 눈에서는 그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뜨거운 눈물을 보신 것입니다. 눈물이 있는 번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눈물을 보셨고 그 백성을 아주 버리지 않으신 것입니다. 눈물이 있는 민족을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는 렘애 5:20에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라고 한 것입니다. 렘애 5:20에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고 하며 울면서 회개 기도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책망하시면서도 벌을 주면서도 깊이 생각을 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잘못된 행등에서 잘못된 사상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순한 죄악을 회개하고 돌아오면 다 용서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 1:18-20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사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여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학생들이 잘못된 함정에 빠지게 되면 자기 스스로 헤어나와서 돌아오지를 못합니다. 선생의 지도를 받아야 돌아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지도자 모든 위정자 모든 기독교인들이 잘못된 생각과 부정과 부패에서 회개하고 돌아와서 옛날의 축복을 하나님의 측복을 받아 선민의 영광을 다시 찾게 해달라고 하는 예레미야의 눈물의 기도를 본받아서 그러한 심정으로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반드시 인도하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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