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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3등급 (고전 15: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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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육으로 보면 하나의 동물이요 영으로 보면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자입니다. 사람이 타락하면 짐승에 가까와지고 향상하면 하나님의 모습을 닮게 됩니다. 광석의 가치가 금의 함유량에 있는 것 같이 사람의 가치는 그가 가진 하나님의 성품의 분량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가치 판단의 견지에서 사람의 인격을 세 등분하였습니다. 사람의 값을 지위나 학식이나 재력으로 규정하려는 것은 너무나 피상적이요 천박한 견해입니다. 사람과 가치는 그 사람의 영혼의 품격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이 인격 가치의 바른 인식을 가진 후에야 내 생활을 바로 세우고 인생행로의 바른 코-스를 지향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육에 속한 사람(자연인) 자연인은 식물에 비하면 야생 식물과 같아서 접을 붙이지 않으면 아무 쓸모없는 돌감람나무(롬 11:17)와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속사람인 영혼은 죽고 육만 산 사람입니다. 계 3:1에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 딤전 5:6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하였고, 요 5:24에는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했습니다. 육에 속한 자는 동물처럼 본능의 만족만을 위해서 사는 자이니 그것은 식욕과 성욕입니다. 동물은 식욕과 성욕 외에는 아무런 욕망이 없습니다. 저가 움직이고 싸우는 것은 이 두 가지 욕구에 의한 충동뿐입니다. 아무리 지위가 있어도 학식이 있어도 속에 영혼이 죽고 양심이 죽은 사람은 이 두 가지 욕구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저들의 생활취미와 의욕은 먹는 일과 생식욕에 극한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무신론자요, 반종교인입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영의 눈이 멀고 감각을 잃었기 때문에 육적 감각 외에 초자연적 세계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고전 2:14에서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하였듯이 무신론자들은 종교의 세계에 대해서는 소경이요 이해할 수 없고 그 가진 무지로 볼 때 종교는 미신이요 아편같이 사람을 마비시키는 유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영혼의 눈을 뜨고 하나님과의 막힌 길을 뚫지 않으면 그는 영적 세계에 대해서는 캄캄하고 아득하여 전혀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은 일은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을 받고 그 감동을 입지 않고는 영적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프랑스의 무신론 철학자 볼테르는 100년 안에 기독교가 없어진다고 장담하였지만 반기독교 서류를 출판하던 그 인쇄소는 지금 기독교 서적을 출판하는 데 사용되고 신앙을 반대하던 서재실과 응접실은 지금 성경책을 쌓아두는 창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흄은 200년 전에 말하기를 “기독교는 20년 안으로 없어질 것이다”고 예언하였는데 이상하게도 바라에서 모인 제 1차 성서협회는 바로 흄이 죽은 그 방이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반기독교 문필가였던 육군대장 웰레스는 기독교를 반대하기 위해 성서를 연구하다가 성령에 감동 감화를 받아 후에 그가 쓴 것이 오늘날 종교영화 「벤허」가 된 것입니다.

2. 육신에 속한 자 요 15:5에서와 같이 이는 접붙인 돌감람나무요 그리스도에게 접붙임 받은 사람입니다. 새 생명을 받아들였으나 아직 어린 아이와 같이 자주력이 없고 이기는 힘이 없습니다. 사람이 믿는 그날부터 속에 새 생명이 싹트고 잠자던 양심은 눈을 뜨고 죽었던 영혼이 살아납니다. 전에 세상과 타협하며 세상 물결 흐르는 대로 정욕을 따라 살던 태도를 버리고 진리에 입각하여 선과 악을 구분하고 모든 불의와 부정에 대하여 투쟁하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약하여 황금 앞에, 권세 앞에, 유혹 앞에 무력하고, 핍박과 고난 앞에 신앙의 정조를 버리고 항복합니다. 그리고 후회하고 다시 결심하여도 또 넘어지고 실패하고 여지없이 무력한 자아를 탄식하게 됩니다. 롬 7:19-24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영과 육의 중간에서 마음의 고통을 받게 됩니다. 새 사람이 가진 진리의 이상은 높은데 육체속에 잠긴 옛 사람의 습관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몇 번 후회하고 결심했으나 어떤 사건에 당면하면 어느 새 혈기가 나오고 거짓과 위선이 머리를 들고 일어섭니다. 또 육신에 속한 사람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겼으나 아직 어린 아이요 투쟁하는 자요 승리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이에 속한 자입니다. 육신의 사람은 이제 한 계단 더 나아가야 합니다.

3. 성령에 속한 자 둘째 사람의 “누가 이 사망에서 나를 건져내랴”(롬 7:24)하는 부르짖음에 대한 회답은 롬 8:2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느니라”입니다. 그의 마음 속에서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싸울 때 성령이 그 마음에 들어와 새 사람으로 승리케 합니다. 옛 사람의 성격을 몰아내고 성령이 완전히 그 마음을 주장합니다. 이 사람의 마음에는 완전한 평화가 있습니다. 첫째 사람은 죽은 사람, 둘째 사람은 싸우는 사람, 세째 사람은 승리한 사람입니다. 성령에 속한 사람의 마음 상태를 검토해 보면, (1)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하반절). (2) 성령이 그 마음의 주인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3) 항상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갈 5:22). (4) 새 옷을 입는 자입니다.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4). (5) 천국을 소유한 자 (6) 완전한 승리의 사람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리라” (계 3:21). (7) 마음에 한없는 평화를 가진 자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 14:27). (8) 이런 자는 완전히 그리스도의 모형을 이루어 하나님을 닮은 자요 태초에 하나님이 그 형상대로 만든 사람의 본 상태를 회복한 사람이요 사람으로서의 완전함을 이룬 자입니다. 지혜있는 자는 이 말씀을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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