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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나심과 그 반응 (마 02: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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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기적 중의 기적이요 축복 중의 축복이요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장을 읽어 보면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반응이 세 가지입니다.

1. 하나는 헤롯 왕의 반응입니다 헤롯 왕은 새 임금이 나셨다는 소문을 듣고 미움과 적의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새 아기가 왕이 되면 자기의 위치와, 자기의 세력과, 자기의 영향력에 대한 어떤 침해를 당할까 하여 염려가 되어 두려웠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기록된대로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빛을 깨닫지 못하고 어두움이 빛을 싫어하였습니다. 악은 선을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의를 행하는 자가 핍박을 받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는 의로운 자를 미워합니다. 부정을 거행하는 공무원들 틈에 양심대로 살려는 사람이 있으면 자연히 미움을 받습니다. 포은 정몽주 선생님의 어머니는 어릴 때 그 아들에게 교육시키며 다음과 같은 한 시를 읊어 선물로 주었습니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노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 흰 빛을 새오나니 청강에 고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불의로 더럽혀진 심령들은 공의로 바르게 사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미워합니다. 죽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욕망으로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의로운 사람들이 그리스도처럼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태어나신 곳은 마굿간이었습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어두움이 세상은 알지도 못하였으므로 푸대접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신 그 이튿날 멀리 애굽으로 피난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형편에 처하게 되었습니니다. 정말 그의 생은 출발부터 험난하고 기구하였던 것입니다. 헤롯이 예수를 죽이려고 한 것처럼 오늘날도 불의를 행하는 통치자들은 기독교를 미워하고 없애 버리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북한을 위시한 공산 국가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헤롯 이상의 독재로 다스립니다. 김일성 독재 체제를 보십시오. 거기에는 학생 데모도 없습니다. 반체제 운운하는 말도 없습니다. 있다면 김 일성 만세밖에 없습니다. 인간에게 완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인간 세계의 독재는 곧 무너지고 맙니다. 성경을 통해 볼 때 하나님 나라는 완전한 나라요, 완전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절대적으로 행사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민주주의가 좋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정죄하거나 판단할 수 없고 서로 협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의 많은 의견을 모아서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일사분란하게 통치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공산주의가 제일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를 늘 미워하고 박해를 합니다. 헤롯의 말로가 비참했던 것처럼 김일성의 말로도 비참할 것이 명약관화합니다.

2.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반응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이들은 무관심이었습니다. 그들은 헤롯 왕의 야단 때문에 성경을 펴고 미가서 5장을 찾아 “베들레헴에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는 예언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이론만 알았지 예수의 탄생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습니다. 이들은 자기의 일에만 몰두하다보니 예수의 탄생이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습니다. 성탄이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 자가 있다면 바로 서기관의 비극이 그의 비극이 될 것입니다.

3. 동방박사의 반응입니다 동방박사들은 그들이 가진 값진 선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에 드렸습니다. 전에부터 사람들은 박사들이 가져온 그 선물이 아주 적합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이 들고 온 황금은 임금을 위한 예물이요, 유향은 제사장을 위한 예물이요, 몰약은 장차 우리를 위해 죽으실 예수를 위한 예물이 었습니다. 홀몬 헌트의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나사렛 목수집 문에 서 있는 그림입니다. 예수님이 아직 어린 소년 시절 때였습니다. 기울어지는 저녁 햇빛이 문에 비칠 때 소년 예수는 일하느라 피곤했던 몸을 펴기 위해 문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문간에 서서 팔을 펴고 기지개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뒷면 벽에는 기울어 가는 석양에 그가 비취어 그림자가 생기는데 그것이 십자가의 그림자였습니다. 배경에는 마리아가 서 있는데 마리아는 그림자를 보면서 다가올 비극의 공포를 그 눈에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가져온 황금, 유향, 몰약의 선물은 참 왕이시요 완전하신 최고의 제사장이시요 마침내 인간을 위한 가장 높으신 구주가 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떠나자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 하니 일어나 어서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해서 내가 이를 때까지 거기 있으라” (마 2:13)고 하셔서 그 즉시 애굽을 향하여 피난의 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피난을 떠난 후 헤롯 왕은 베들레헴의 2세 이하의 모든 아이를 학살했습니다. 아기 예수도 함께 줄이자는 일이었습니다. 본문에 울음소리가 베들레헴에서 하늘에 사무쳤다고 했습니다. 헤롯의 학정은 그 후 얼마가지 않아 300명의 법령위원을 살해하고 그의 처 마리아를 죽였고, 장모도 죽였고, 처남인 안티파티와 두 아들 알렉산더와 아리스도 불러스를 죽였습니다. 이렇게 악한 헤롯이 새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예수를 환영할리는 없었고 베들레헴의 아이들만 희생시킨 것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어머니의 품에 안겨 벙글벙글 웃는 아이를 빼앗아 땅에 들어 메치고 창끝으로 찔러 죽이는 것을 제 눈으로 직접 보아야하는 그 어머니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들은 위로받기를 거절했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였겠습니까 비통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고통과 가난과 슬픔 속에 죽으려 태어났습니까 위로받기를 거절하는 슬픈 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신 까닭입니다. 저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슬픈 이들이 당하는 고난 속에 자기 자신이 뛰어들어 와서 함께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슬픔을 당하는 자가 인제 주님과 함께 위의 받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힘이 우리에게 임하여 새 역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X-mas의 의미입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말구유에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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