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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와 함께 (롬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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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사람이 세상에 왔다가 갔습니다. 그 중에는 위대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인류에게 위대한 교훈을 남겨 준 사람들에 대하여는 그들을 흠모하고 그들을 기념합니다. 그리하여 석가, 공자의 탄일이 축하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일은 세계적 명절로 기념됩니다. 예수님처럼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사람도 없고 예수만큼 신앙과 예배의 대상이 된 인물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예수 같은 사람이 나지 않을 것이며 예수의 탄생처럼 중요한 의미와 영향을 줄 사건도 없을 것입니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자, 눌린 자, 병든 자를 위해 살다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인류의 구주로 고백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의 위대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1. 그의 말씀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에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계셨다고 요한은 증거 하였고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예수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시며 말씀을 위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인간이 짐승과 구분되는 근본의 하나는 언어를 사용하는데 있습니다. 인간에게서 말을 빼면 짐승보다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힘은 호랑이나 사자가 사람보다 강하고 날아가는 데는 사람이 새보다 나을리가 없고 헤엄치는데는 사람이 물고기만 못하고 뛰는데 벼룩만 못합니다. 그러나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는 것은 언어입니다. 인간들은 라디오, 텔레비전등의 메스컴을 통해 말의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대개가 위장된 말이거나 들으나마나한 말이기 쉽습니다. 그런 말은 우리들의 생활에 피로와 정신에 어지러움만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로써 현대는 말이 메마른 시대입니다. 진실한말이나 들을만한 이야기가 없는 시대가 오늘입니다. 말다운 말이 없는 이 땅에 말씀으로 오신 이가 예수이십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실하기 때문에 듣는 자에게 감화가 되었고 신념을 용솟음치게 했던 것입니다. 꾸밈이 없는 말은 사람을 살리는 말이요 속임수의 말은 사람을 죽이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낙망자에게 희망이 되었고 근심하는 자에게 위로가 되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말씀은 하늘의 말씀입니다.

2. 그의 실천 말하기는 쉬우나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랑을 말하기는 쉬우나 사랑을 행동으로 보이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백번의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위대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하신 것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 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말씀을 하였고 몸소 사랑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사랑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려고 하늘 보좌를 내어 놓으시고 말구유에 오신 그리스도를 위해 성대히 성탄은 지켜져야 합니다. 중세기에 청년 명사 라운폴 공이 예수의 최후만찬 때 사용한 금잔을 찾으려는 큰 뜻을 품고 말을 타고 나섰습니다. 바로 그때 남루한 옷차림의 문둥이가 손을 내밀기 때문에 불쾌한 표정으로 돈한 푼을 던져 주면서 이거나 가져가 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갖은 고생을 하면서 수십년동안 최후만찬의 금잔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백발의 노인이 되어 남루한 형색으로 자기 고향에 돌아와 죽으려고 눈보라 속을 헤매어 그의 성문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때 한 문둥이가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닙니까 그는 그 문둥이를 불쌍히 여겨 마지막 남은 빵을 반으로 나누어 같이 먹고 시냇가에 얼음을 깨고 표주박으로 물을 떠 문둥이에게 마시게 하였습니다. 그 순간 문둥이는 빛난 횐 옷을 입은 예수로 변하여 공의 머리에 손을 얹고 보라 네가 찾고자 한 금잔은 바로 시냇가에서 물을 떠서 나에게 준 그 표주박이라고 말했습니다. 라운폴 공이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고 합니다. 공은 가난한 자를 구제하여 나라는 흥하고 백성들은 화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3. 그의 정신 예수의 위대성은 말보다 실천보다 그의 정신에 있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정신은 일찌기 누구에게서도 들어 볼 수 없었던 정신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겸허한 정신이 있었고 일곱번씩 칠십번이라도 용서한다는 관용의 정신이 있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박애정신과 불의한 인간을 보고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하시는 의의 정신과 언제나 약한 자, 병든 자,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와 함께 하는 자비의 정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 이 정신에 있어서 예수의 이름이 천추에 빛나고 그의 나심을 온 세계가 축하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33년이란 짧은 일생을 살면서 3년밖에는 활약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로마 나라의 지배 받는 조그마한 이스라엘에서 일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비극적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영원한 존재가 되어 인류의 스승이 되었고 죄인의 구주가 되었고 예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의 위대한 정신 때문입니다. 그의 겸허한 정신, 사랑의 정신, 회생의 정신, 의의 정신이 세상의 빛이 된 것입니다. 살기 위해 돈을 바칠 수 있고 잘되기 위해 지식과 기술을 바칠 수 있습니다. 혹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칠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온 것이고 또 많은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행동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와 함께 생각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행동을 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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