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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울가(家) 여존자 므비보셋 (삼하 0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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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이 말에 “요나단을 인하여”란 것은 중요합니다. 그것은 요나단이 그에게 베푼 사랑에 대하여 갚아 줄 책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배은망덕 하는 죄를 큰 죄로 여기시는데 (사 1:2-3),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무엇보다도 남의 은혜를 갚는데 매우 민첩하였습니다. “은총을 베풀리라”고 한 말씀이 3절에는 더 충분히 나왔으니 곧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남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자기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지위와 소유를 모두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이 절뚝발이(3절, 13절)임을 본문은 강조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강조한 목적은 그런 불구자도 천대하지 않고 자기 아들처럼 사랑한 다윗의 고상한 덕을 칭찬하려는데 있습니다. 다윗은 예전에 요나단과의 약속 이행을 이렇게 성실히 지킨 것입니다.

1. 세상은 헛되도다 베들레헴 목동 다윗은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후 일약 이스라엘의 구국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의 시기를 받아 다년간의 망명생활을 보내기도 했지만, 천명이 다윗에게 있었기에 사울 왕가는 망하고 다윗이 열 두 지파의 통일 왕국을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왕업 대성 후 다윗은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하며 조사해 보니 사울의 집 종 비바가 사울의 남은 손자 므비보셋이 요단강 동편지 로드발람미엘의 집에 은거하여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는 이 말은 인사의 무상을 표시하는 조사입니다. 창업자 다윗으로는 전일의 망명생활을 회고하면 감개무량한 발언이지만, 패자 사울 왕 편으로는 더 말할 수 없는 비통한 한구절입니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 세 왕자는 부왕 사울을 따라 길보아 산상에서 이미 전사하였고, 우자(愚者) 이스보셋이 사울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역도 신하들에게 사살 당한 바 되고 오랜 후에 된 일이지만, 국내의 흉재로 인하여 사울의 서자 므비보셋과 암모니 외 여손 5인은 기브온 사람의 손에 제물이 되었으니 작일 이스라엘의 제왕의 아들이 금일 패망자가 될 줄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나 남은 왕손 므비보셋도 병신이 되어 새 왕 앞에 꿇어 엎디어 자청 “죽은 개와 같은 나”라고 여명을 구걸하게 되었으니 인사(人事)의 무상을 느끼게 됩니다. 어찌 사울 왕가뿐이겠습니까 다윗의 왕업도 2대를 지나지 못하여 분열되고 500년 미만에 무너졌으니 흥망성쇠는 정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전 1:2에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듯이, 당시 왕업도 모두 다 바람 잡는 것처럼 헛된 수고였습니다. 전 12:13에 “젊은이는 헛된 세상에 빠지지 말고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습니다.

2. 요나단의 은공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자가 있느냐”는 말은 사울 왕 유족에게 무서운 소리로 들리는 말입니다. 그래서 병신 므비보셋도 저 변두리에서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그 이유는 새 왕조가 탄생하면 새 왕가는 전 왕가에서 재기의 후환이 있을까봐 전 왕가를 멸절하는 예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후가 아합 왕가를 벌할 때 아합의 70명의 왕자를 한 자리에서 목 베었고, 그 유신들까지 살해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전 왕가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자가 있냐”고 물은 이유는 멸절하기 위함이 아니요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는 선의의 조문입니다. 이는 다윗의 선심도 선심이려니와 의인 요나단을 인하여서 입 니다. 사울이 다윗을 살해하려 할 때 왕자 요나단은 불행한 다윗을 극력 보호하여 피난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여 망명 중의 다윗을 십 황야 수풀 속에서 찾아보고 축복하여 눈물로 사랑의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단 전사 후 다윗도 활줄 노래(弓歌) 조사에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도다”고 하며 요나단의 사랑에 울었으니 요나단의 우정은 만고지하에 모범되는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요나단이 어찌 왕위의 존귀를 모르겠습니까만, 국가를 위하여 자기는 백보 천보 양보하고 자기보다 나은 인재를 그 위에 앉아 나라를 지키게 하고자 함이었으니 저는 오직 국가를 사랑하여 일가의 영화를 모르는 사람이요, 금석 같은 우정을 지킬 줄 알고 일모의 사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정에는 춘풍처럼 부드러우나 한 번 전선 진두에 나서면 사자같이 용맹스러운 장군이었습니다. 마침내 길보아산에서 순국 종부의 장열한 전사를 하였으니 다윗은 활줄의 노래에서 그의 충절을 격찬하였습니다. 그는 특히 다윗의 인물을 인정하여 후일의 구국자를 애호한 은공은 단지 다윗의 은인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에 대 은공을 남긴 것입니다. 요나단이 만일 부왕 사울의 모해를 따라 다윗을 죽였다면 이스라엘의 운명은 어찌 되었겠습니까 이로써 보면 요나단의 은공은 실로 막대한 것입니다. 사울 왕가는 일장춘몽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요나단의 은공은 만고에 승하고, 요나단의 순국의 충의는 천추에 빛나는 것입니다. 대왕 다윗도 요나단의 정신, 요나단의 은공 앞에 머리를 숙이고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고대 왕실 지어서 자손에게 주고 금, 은, 진주, 보석 쌓아 후세에 끼치겠습니까 그것은 무너지고 썩어지되 오직 은공만이 영구한 것이니 자손 백세의 대계를 위하여 부를 쌓지 말고 은공을 쌓습시다. 대사업을 후세에 남기지 말고 대인격을 남김시다.

3. 다윗의 보은 다윗의 국경지초에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3절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도 갚고 옛 우정의 은공도 갚기 위하여 그 후손을 선대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므비보셋을 불러 위로하고 사울 왕가의 전 소유를 그에게 상속시켰으며, 그를 왕궁에서 살게 하고 자기 태자와 동상 동석하게 하여 극진히 우대하였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 시 피난길에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그 주인을 왕께 참소하니 왕은 그 소유를 취하여 시바에게 주었다가 그 후 므비보셋의 변명을 듣고 시바에게 주었던 소유 절반을 다시 그에게 회복해 주었고, 기브온인이 사울 왕 유족에게 보복할 때에도 므비보셋만은 내어 주지 않았으니(삼하 21장) 이로써 다윗은 성의껏 보은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는 죽이려던 숙원이 있고, 요나단에게는 수호의 은공이 있습니다. 원수를 잊지 못하고 은공을 갚기 어려운 것이 고금의 인심인데 다윗은 원수를 잊어버리고 공은을 갚았으니 여기에 다윗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사람의 우정보다 특히 하나님의 은혜를 갚고자 하여 사람에게 자선하는 것은 더욱 높은 신덕이니 다윗 만대의 성덕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4. 므비보셋의 비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했는데, 남은 자 므비보셋이 있었습니다. 몰락하는 집에 남은 자가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입니다. 사울의 실덕으로 보면 전멸할 것이나, 요나단의 은공과 다윗의 긍휼로 잔존자가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특은입니다. 하나님은 멸망한 자 중에서도 오히려 잔여자를 두십니다. 롬 9:29에 “이사야가 미리 말한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 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을 것이로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멸망할 자인데 은혜로 남겨 두신 것입니다. 엘리야에서는 왕상 19:18에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7,000명을 남기리니” 라고 했습니다. 롬 9:27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므비보셋이 여존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이요, 그 다음 요나단의 은공과 다윗의 긍휼로 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선택하심으로 남은 자요, 예수의 은공으로 살아남은 자입니다. 의인 요나단의 후손 므비보셋이 겨우 살아남았으나 그 몸이 병신된 것을 생각하면 심히 불행같이 여겨지나, 그러나 만일 병신 되지 않았더면 그 종의 참소를 면치 못하는 신세에 당시 수차의 반란에 처세가 심히 위험하였을 것입니다. 오히려 병신되었으므로 다윗 왕가의 의심을 면하고 도리어 왕의 긍휼을 입어 태자와 함께 동식하는 선대를 받은 것입니다. 여존자 므비보셋의 생을 통하여 배울 점과 동정할 점이 있습니다. 작일의 왕자가 금일에 “개와 같은 나”라는 고백은 참으로 눈물겨운 말입니다. 사울의 집 여존자인 므비보셋은 천명에 순하고 대세에 순종하여 비하에 선처하였고 근신의 생애로 참소를 면하고 다투지 아니하는 선심으로 신명을 다하여 자손 백대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도 므비보셋처럼 자신을 낮추어서 결코 어려운 일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 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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