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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금 같이 귀한 믿음 (단 03: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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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라고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좋은 믿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믿음이 있고 칭찬듣는 믿음도 있고 책망듣는 믿음도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좋은 마음, 칭찬받는 믿음을 갖도록 해야겠습니다. 본문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위대한 믿음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큰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성도의 표본이라고 생각하며 존경하게 됩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의 왕의 부하들의 간교로 인하여 그들의 목숨을 곧 잃게 되는 인생 중 가장 위험한 생의 절벽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때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더욱 굳건하게 의지하므로 그들의 믿음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처럼 한층 더 힘있고 웅장하게 승화되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그들에게 닥치는 환란과 어려움을 통해서 새로운 신앙을 발견하게 되었고 새삶을 창조했으며 그들의 생활로써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였습니다. 이제 그것을 살피면서 그들의 금 같은 귀한 신앙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주를 온전히 의지하는 마음 그들의 믿음은 주를 온전히 의로한 믿음이었습니다.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질 것을 알면서도 왕의 요구를 거절한 수 있었던 용기는 주께 대한 온전한 의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주를 의뢰하는 신이어야 합니다. 주를 의뢰할 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의뢰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으로 갈 수 있었고 모세도 주를 의뢰하였으므로 애굽왕 바로 앞에 답대히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고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의 용기는 주를 의뢰할 때 생기는 법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세 친구들은 왕이 만든 금신상이 참신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명이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신상앞에 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몰몬교, 통일교, 안식일교, 여호와의 증인 등 거짓 종교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동들이 무엇이 참종교이고 무엇이 거짓인가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하고 거짓과 능히 싸워 이겨야만 합니다.

2. 타협을 철저히 배제한 마음 타협은 믿음의 능력을 악화시키고 교회를 타락시키는 귀중한 요인이 됩니다. 어떤 종류의 타협이든지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저들이 보여준 타협하지 않은 신앙의 정신을 배우도록 해야겠습니다. “이것도 저것도”는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아니면 세상일 뿐 두 주인은 불가능하며 타협은 결국 주를 배반하는 행위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이 거짓된 것이라고 경배하지 않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들을 감시하는 감시원에 의해 왕의 명령을 복종하지 않았다고 해서 왕 앞에 끌려 나갔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 친구는 큰세력을 가지고 있고 또 자기들에 대해서 노하고 있는 왕 앞에서 포로의 신분으로 끌려 왔으면서도 오히려 당당하게 다시 한 번 기회를 부여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상 앞에 절하기를 요구하는 왕에게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하고 자신들의 결의와 신앙을 보여 주었습니다. 행 4:19에 베드로와 요한이 서기관과 대제사장 문중 앞에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답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다하라”고 하여 세상 권력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히 여기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3. 순교를 각오한 믿음입니다. 온전히 주를 따르려면 순교를 각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타협하지 않게 되고 신앙의 정조를 지키는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순교를 각오했더라면 주를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세속에 물들지 않으려면 순교를 각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왕이 다시 부여한 기회마저 거부하여 풀무속에 던지우게 될 처지에서 왕에게 두 가지 대답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보여 주었습니다. 먼저 “만일 그럴 것이면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은 아무리 어려운 곤경에 처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건져 주실 것을 믿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다리는 신앙을 보여 줍니다. 세상 사람 누구나가 풀무에 들어가면 다 죽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 친구는 꼭 죽을 수밖에 없는 풀무불이지만 자신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죽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믿었고, 도 풀무에서 구해져도 왕의 세력은 계속해서 신앙이 세 친구를 탄압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할텐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왕의 손에서까지 구해주셔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고 왕과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였습니다. 두 번째 대답은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하실 줄을 아옵소서”라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대답에서 심오한 신앙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들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께서 풀무 속에서 구해 주시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이 없어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버리지 않겠노라고 하는 숭고한 신앙 고백으로 왕에게 대답하였고 그 대답으로 왕의 노여움을 더하게 하여 평소의 풀무보다 7배나 뜨거운 풀무속으로 던졌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잘할 때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쳐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최악의 상태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아니 죄악의 상태에서 더욱 빛나야 하는 것이 믿음이며 이것이 기독교 신앙과 샤마니즘을 구별하는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 만족이 없고 불평투성이고 좋으면 따르고 싫으면 버리는 신앙으로 우왕좌왕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지금이라도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금신상 앞에 절하면 높은 지위와 부귀영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고 하나님께서 풀무 속에서 또 왕의 세력 가운데서 건져 내어 살려 주시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버리지 않겠노라고 참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버리지 않은 자를 결코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험악하고 죄악 많은 세상을 사들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금같은 신앙으로 이기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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