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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독교의 세 가지 보배 (마 0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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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부터 세상에는 보배라고 일컫는 것이 많습니댜. 세상 사람들은 금전과 지식과, 권력이 보배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불, 범, 승을 보배라고 합니다. 유교에서는 토지와. 인민과, 정사를 보배라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의 보배는 황금과 같은 믿음이요 유향과 같은 마음과 실행이요 몰약과 같은 희생입니다. 즉 돈, 마음, 몸으로 완전히 드리는 이가 참 기독자입니다. 그렇게 볼 때 동방박사는 장차 어떻게 되실 것을 예시한 동시에 우리 신자가 무엇을 예수님에게 바쳐야 하는가를 모범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에게 무엇을 바쳐야 겠습니까

1. 황금과 같은 신앙입니다 신앙이란 어떤 물체와 같이 그 모양이 네모나고 둥글다든지, 그 빛이 희고 검다든지 하면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겠지만 신앙은 정신적인 문제이므로 영적 생활에 입각하지 아니하면 설명하기가 곤란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신앙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하였습니다. 슐라이에르마허는 “하나님에게 의존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영에 잡히는 느낌과 감정이 곧 종교적 신앙이라”고 하였습니다. 죄악의 세력은 강하고 인간의 힘은 약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면 안심하고 살 수 없습니다. 어떤 청년이 무디 선생에게 ‘신앙이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더니 무디 선생은 그 청년을 뒷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벼랑에 있는 큰 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무 위에 올라가 가지를 붙잡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청년은 무디 선생님께서 하라는 대로 나뭇가지를 붙잡으니 무디 선생님은 그 손을 놓으라고 명했습니다. 그 청년이 아래를 쳐다보니 수백 척이나 되는 벼랑아래에는 푸른 물이 흐르는데 나뭇가지를 놓으면 당장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화를 내며 말하기를 “선생님은 나를 아무도 모르게 죽이시렵니까” 하였습니다. 이때 무디 선생은 그 청년을 안아 내려놓고 하는 말이 “당신이 내게 물은 신앙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당신이 나뭇가지를 붙잡으면 살고, 놓으면 죽을 줄 아는 것 같이 당신이 예수를 붙잡고 의지하면 살 수 있고, 놓으면 죽을 줄 아는 것이 곧 신앙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청년은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서 예수를 열심으로 믿었다고 합니다.

2. 유향과 같은 마음과 실행입니다 믿음도 귀하지말 실행이 더 귀합니다. 야고보 선생은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14, 17)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말 잘하고 설교도 잘 하고, 기도도 청산유수처럼 잘 한다 하더라도 실행이 없으면 다 위선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간음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자기는 간음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도덕질하며 계명을 범한다면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동방박사가 예수님에게 드린 유향은 그 냄새가 오리 밖까지 풍기고, 그 냄새가 100일까지 지속된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행실도 세계에까지 날리고 이 생명 다 하도록 날려야겠습니다. 무디 선생은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예배당에 빈 자리가 많으니 전도하러 나가자”고 하면서 제자들을 데리고 거리로 전도하러 나갔습니다. 일주일 동안을 다녔으나 그 누구에게든지 “예수 믿으십시오”라고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주일에 예배당에 사람이 가득 찼습니다. 제자들이 이상히 여겨서 묻기를 “선생님! 우리가 예수를 믿으라고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예배당이 가득 찼습니까” 무디 선생은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무언의 전도를 잘했다. 그 동안에 길 가에 넘어진 애를 일으켜 주었고 무거운 짐을 싣고 가는 차를 밀어주지 않았느냐 말로 전도하는 것보다 착한 행실로 실행함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3. 몰약와 같은 희생입니다 희생이란 남을 위하여 내 소유를 바치는 것이니 결코 이기주의가 아니요 이타주의입니다. 이타주의는 다른 사람도 잘 살게 하고, 나도 잘살게 합니다. 벳새다 광야에서 어린아이가 가졌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리매 5,000명이나 배불리 먹게 하셨다는 사실은 희생의 유익을 보여 줍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려니와 썩지 않으면 한알 그대로 있느니라” (요 12:24).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도 이 원칙에 의거한 것입니다. 남강 이승훈 산생님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 생활을 마치고 임종시에 제자들에게 “나 죽은 후에 내 몸을 땅에 묻지 말고 내 뼈는 오산학교 박물관의 표본으로 써달라”고 부탁한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얼마나 고귀한 희생적 정신입니까 자기의 유골까지라도 오산학교에 바치신 그 희생적 정신은 천추만대에 길이 빛날 것입니다. 그런고로 인생의 가치는 죽은 후에야 높아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앞으로 황금과 같은 믿음으로 귀하고 빛나게 살며 유향과 같은 희생의 정신으로 가치있게 살아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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