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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자가 먼저 할 세 가지 진리 (마 05: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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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는데 그 전제는 신자가 먼저 행할 세 가지의 진리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에 이르기까지를 산상보훈이라 합니다.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은 비단 신자들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까지라도 산상보훈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의 숭고하고 심오한 교훈 앞에 찬탄과 경복하는 마음을 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5장은 기독자의 생활 원리, 6장은 기독자의 생활 내용, 7장은 기독자의 생활 경계입니다. 일에는 선후가 있고, 질서가 있습니다. 선후가 뒤바뀌고 질서가 파괴되는 것은 우리 기독자의 생활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교훈하신 산상보훈에 나타난 신자가 먼저 해야 할 세 가지 덕행이 과연 무엇인가 생각하므로 기독자의 본분과 사명을 다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먼저 할 것이 있습니다 마 5:24에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먼저 할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신자의 생활이란 하나님 제일주의, 예수님 중심생활, 신앙 지상주의, 은혜 충만한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우선해서 하나님과 나와의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제단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거룩한 장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물은 성물이요, 제단은 성구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하나님의 제단에 드릴 예물이 거룩치 못하며 장본인이 거룩치 못하며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열납하지 아니하여서 응답의 은혜와 축복을 받지 못하는 헛된 예배가 되고 맙니다. 예배는 거룩하게 하나님께 열납되도록 드려야 합니다. 거짓 신자가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결코 받으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마 5:23에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 드리기를 중지하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을 하고 다시 와서 예물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배드리는 성도 중 헛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성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 것입니다. 마 6:12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악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고, 마 18:18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였으며 마태 18장에는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탕감을 받았는데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자를 잡아 감옥에 가두면 그 사람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마 18:35에서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보이는 형제와 화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대기 단계(바라보는 것)에서 먼저 할 것이 있습니다 마 6:33에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란 태어날 때부터 죽는 날까지 하루라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며 생각하고 염려하지 않는 날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인간생활에 필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구성 요소는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육신의 삼보를 의식주라 한다면 영혼의 삼보는 믿음, 소망, 사랑이라 하겠습니다. 사람은 육신보다 영혼이 더욱 귀중한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것을 육신의 요구로써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 문제라 한다면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한 것은 사람들이 사는 목적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육신보다 영혼, 물질보다 생명, 세상보다 천국이 더 귀중하며 사람이 사는 방법보다 사는 목적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목적이 없는, 생활 목적이 없는 방법이란 무의미하고 또 있을 수가 없습니다. 더우기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는 신자에게 있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는 것은 이방 사람이나 불신자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이십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다 준비하시고 모든 것을 때에 따라 내려주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님이 다 먹여 줍니다. 공부만 하면 됩니다. 이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만 믿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함이 없이 다 준비해 주십니다. 오늘의 미국은 그 선조들인 청교도들이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그 후손이 축복받아 잘 살게 된 것입니다.

3. 대인 관계에서 먼저 할 것이 있습니다 마 7:5에서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란 눈을 뜨면 가장 가까운 자기는 보이지 아니하고 멀리 있는 다른 사람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옛 말에 사람은 허물을 담는 주머니가 둘 있으니 큰 주머니는 남의 허물을 담는데 앞에다 차고 적을 주머니는 자기 허물을 담는데 뒤에다 차고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자신의 허물을 정확히 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12장에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죄악을 책망했을 때 다윗이 거꾸러져 회개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윗이 죄를 범하지 않아서 성군이 된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합 왕은 엘리야 선지자가 와서 회개하지 않으면 3년 6개월간 이 땅에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 해도 회개치 않았습니다. 악한 왕이요, 어리석은 왕이었습니다. 완전한 신앙이란 이 삼각형적 관계를 잘하는 데 있습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믿음으로 성립되고, 나와 나와의 관계는 소망으로 성립되고, 나와 너와의 관계는 사랑으로 성림됩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를 잘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사람에게는 유익을 주고, 자신은 은혜 받고 후손에게 축복을 물려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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