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욥의 호소 (욥 10:1-22)

첨부 1


욥의 항거 속에서 우리는 욥의 내면에서 터져나오는 보다 더 중요한 신앙적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철두철미한 침묵과 그 무관심을 깨뜨려 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10장은 빌닷에 대한 답변이라기 보다 하라님께 대한 기도입니다. 10장에서는 욥의 친구들은 무시되고 있습니다. 그 기도는 찬양이나 확신이나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항의와 탄원의 기도입니다.

1. 자신이 당하는 뜻을 알려 달라는 호소입니다(1-5절) 욥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자기를 정죄치 말아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윗의 기도와 같습니다. 시 32:1-2에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에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그 죄에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롬 8:1-2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또 욥은 말하기를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자기에게 알려 달라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응답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쟁변하시는 두 가지 경우입니다. (1) 인간이 하나님을 불신할 때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가 가장 큰 죄입니다. 따라서 인간들이 하나님을 불신하면 하나님은 인간들과 더불어 하나님이 창조주임을 나타내기 위해 쟁변하시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 잘 하다가 하나님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나갈 때 쟁변하십니다. 계 2:4-5에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내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올바른 신앙에서 벗어나면 바르게 하기 위해 쟁변하십니다.

2. 자기 깨끗함을 호소합니다(6-7절)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아니한 것을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죄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슨 뜻이냐, 자기 세 친구가 정죄하는 그런 악한 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틴 루터는 길 가다가 친구가 벼락 맞아 죽는 것을 보고 수도원으로 갔습니다. 수도사가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하고 물었을 때 루터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원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죄를 범한대로 벌을 내린다면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처럼 불의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사람처럼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욥은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공평하신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는 것입니다.

3. 욥의 인생관(8-15절) 욥은 인간을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아울러 죄인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1) 육체는 흙으로 창조했습니다(8-9절). 창 2:7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라고 했습니다. 사 29:16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토기공에 비유했습니다. 롬 9:21에 토기장이가 귀히 쓰는 그릇과 친히 쓰는 그릇을 임의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2) 욥의 인생관은 사람의 육체 뿐 아니라 영혼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영과 육은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영혼의 기원이 언제인가 하면 하나님이 모태에서부터 육체와 같이 창조했습니다.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때가 이르매 부모를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육을 죄악시 하지 않으며, 영과 육을 귀하게 봅니다. 고전 6:19에는 우리 몸은 성령을 모신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3)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간섭하십니다(14-15절). 하나님은 때로는 불신자의 죄도 간섭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냥 버려 두면 죄악이 너무 관영해서 자멸하게 되어 성도의 구원완성에 지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불신자를 위한 간섭이 아니라 성도의 구원완성을 위한 간섭입니다. 욥은 자신이 죄인인 줄 압니다. 그래서 욥은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다고 자인합니다.

4. 죽기 전에 평강을 간구합니다(16-22절) 욥은 재천명합니다. 하나님이 욥을 거절한다면 누가 그를 도울 수 있겠는가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자가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는가 욥은 하나님에게 간절히 기도하기를 죽음이 자기의 빛까지 흑암으로 내려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천국은 너무 좋은 곳입니다. 마 17:1에 변화산의 모세와 엘리야와 주님을 본 베드로는 “여기가 좋사오니 주께서 허락하시면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천국에 가면 우리는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욥은 겸손히 하나님께 간청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인간과 달라서(4절) 우리의 내적인 모든 문제, 미래에 있을 모든 것도 일시에 통찰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눈을 피하려고 하기 보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자비를 간구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참된 평강이 천국과 같이 임하시길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