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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압살롬의 반항 (삼하 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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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에게는 8명의 아내와 그 밖에 많은 첩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기독교에서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인도나 터키,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는 시대의 폐습으로써 다윗 한 사람을 책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일부다처주의에서 오는 가정의 비극이 얼마나 큰가하는 교훈을 본문은 교시하고 있습니다. 압살롬의 어머니는 마아가로 달매 왕의 딸이었는데 다윗의 많은 처첩 중에 가장 뛰어난 자였습니다. 다른 처첩은 신관, 제주, 호적의 딸이었으나 마아가 하나만은 왕의 딸로 기품이 자연히 높았고 여왕의 품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 아들 압살롬도 품격을 구비했고 그 용모도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그 늘어진 아름다운 머리카락, 용모의 우수함, 고상한 품위도 모자가 모두 뛰어나게 두각을 드러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것이 또한 압살롬으로 하여금 반란의 뜻을 갖게 한 원인도 되었던 것입니다. 암살롬은 자기 누이동생 다말이 이복 형인 암논에게 능욕 당한 것을 분내어 그를 죽였는데, 이 일은 왕으로 하여금 매우 슬프게 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부친의 진노가 무서워 잠시 피하여 그슬에 있었는데 그 후 왕의 마음은 죽은 암논을 단념하였고, 압살롬을 생각하고 걱정하게 되었으므로 왕의 군장인 요압은 그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용맹스러운 일면, 극히 부드러운 애상적 애정이 두터운 다윗은 압살롬을 사랑하는 정이 깊어, 암논을 죽인 때부터 5년만에 비로소 만난 아들인 압살롬에게 입맞추었습니다. 그리고 다윗 왕은 차츰 노쇠하여 그 흠점도 국민에게 알려졌고, 백성의 마음은 점차 압살롬에게 기울어졌습니다. 압살롬은 자기를 낮추어 백성에게 대할 때 은혜를 드리우고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우선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잡기에 힘쓰는 한편 자기를 위해 전비를 갖추어 4년 후 헤브론에서 반기를 들고 아버지의 왕위를 빼앗으려 했습니다. 왕의 원로 모사인 아히도벨이 이에 따르고 도당이 강해져 백성이 점차로 압살롬에게 가담함으로써 가련한 다윗 왕은 자기 아들 압살롬 때문에 일찌기는 자식을 잃음의 슬픔을 맛보고, 이제 또 급기야 수도를 빠져나가 지방으로 낙향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다만 다윗 왕이 행복스러웠던 것은 지혜있는 신하인 아렉사람 후새라는 자가 다윗을 따라 주었던 것입니다. 후새는 교묘하게 아히도벨의 모략을 책정하지 못하게 하여 마침내 다윗 왕의 군대에 승리를 가져오게 한 것입니다. 지략이 부족한 압살롬은 어리석게도 노신 계략자 아히도벨의 책략을 물리치고 후새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압살롬은 패하고 말았습니다. 압살롬의 패전 보고가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6절에 “이에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더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군대는 압살롬의 근거지인 길르앗을 향하여 진격하는데 저들로 이에 향응하여 에브라임 수풀로 나와서 접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에브라임이 진지가 되어진 듯합니다. 피차 작전상 숨기 좋고 피하기 좋은 곳으로 접전지는 수풀이었습니다. 7절에 “거기서 이스라엘 무리가 다윗의 신복들에게 패하매 그 날 그 곳에서 살륙이 커서 이만에 이르고” 라고 했습니다. 전과는 다윗 군의 승리로 되어 있으며, 살륙한 사람이 이만을 헤아릴 수 있다는 기록이니 참으로 놀라운 전과요 비참한일입니다. 동족상쟁이요, 부자 상쟁이니 말입니다. 전승은 결정적인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에 임하기 전에 이미 다윗 군대가 이기도록 되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동족인 압살롬 군대의 희생이 너무 컸던 것은 이스라엘 민족적으로 볼 때 큰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8절에 “그 땅에서 사면으로 파져 싸웠으므로 그 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더라”고 했습니다. 전쟁은 매우 치열했던 것으로 짐작이 갑니다. 이만명이 죽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사면으로 퍼져서 칼에 죽은 자보다 수풀에서 죽은 자가 더 많다는 말을 보면 얼마나 많은 인명 피해가 난 것을 말해 줍니다. 그 수풀이 매우 우거져서 자유로히 행동하기도 어려웠고 이런 지역에서 싸움이 치열하였기 때문에 의외의 많은 사상자를 낸 것으로 되어진 듯합니다. 칼에 죽은 자는 적대자에게 죽은 자라면, 수풀에 죽은 자는 자연의 장애로 죽은 자인 것입니다. 사 37:36에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진중에 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시체 뿐이라” 고 했는데 이런 치심은 여호와께서 친히 하신 일이시므로, 수풀에 죽은 자도 여호와께서 친히 하신 일로 보여집니다. 하나님께서 압살롬을 여기서 크게 징계하십니다. 그를 알고 ,따라왔는지 모르고 따라나왔는지 집에 따라 나온 사람들도 다 징계를 받게 되어진 것입니다. 본문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지사 충성, 즉 죽기까지 충성해야하며, 죽일지언정 불의한 데는 섞이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 1편에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압살롬은 아버지를 반항하다 망한 것입니다. 압살롬이 패역무도한 자가 된 원인은 무엇입니까

1. 압살롬은 자기가 가장 훌륭한 아들이라는 교만이 있었습니다 압살롬은 형님들을 무시했고 동생들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말의 사건도 친동생 다말을 사량하는 마음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암논을 제거하는 기회를 얻은 것으로 생각하고 암논을 처리했다고 보입니다. 압살롬이 이스라엘 왕이 된 것은 오해 자기 자신 밖에 없다는 교만을 관철시키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이 긴만은 아버지이며 나라의 군주인 왕까지 무시 하는 자리에 올라갔습니다. 교만은 사람의 마음을 악하게 만듭니다. 교만한 마음은 자식으로서 어버이도 몰라보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까지 항의하고 반항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어버이는 자식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조정하시듯 관리하시는 분이십니다. 부모를 거역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잘되는 법은 결코 없습니다. 압살롬은 부모를 거역했을 뿐만 아니라 민족을 우롱했습니다. 이것이 자신을 방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사람의 교만은 자신에게 어떤 자신이 있을 때 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약자의 윤리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에서는 강자의 윤리가 바로 사랑입니다.

2. 압살롬은 모든 일을 거짓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어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정직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표시는 정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부모 앞에서는 작은 작정이라도 정직하게 함이 가정윤리의 기본적 원리입니다. 압살롬은 사람들 앞에서 아버지에 대한 비난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인심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기전술은 오래가지 못할 뿐 아니라 가장 악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자기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윤리적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사랑을 받고, 부모를 사랑하는 윤리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도록 가정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부모와 자녀간에만 아니라 누구와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란 무엇입니까 거짓과 진실을 가리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불신임 당하기 시작하면 그는 이 땅에 설 장소가 없어지고 맙니다. 압살롬의 반항은 근본적으로 거짓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뿌리 친 행동이 반항으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어머니의 피를 받고 난 그 근성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방인의 시기와 이스라엘을 자기 손에 넣으려는 일념이 이런 큰 잘못을 저지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사람은 위대한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신앙적으로 정직한 사람입니다.

3. 압살롬에게는 신앙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이방인이라는 점으로 볼 때 그에게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가 행하는 것을 정의라 믿었고 기준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면 신앙을 가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두려움에서 출발합니다. 압살롬은 모든 윤리의 기준이 자기 중심이었기에 자기에게 유익한 것으로 여겨지면 아버지의 왕권도 찬탈하려 했습니다. 그는 또 하나님의 율법도 이용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은 종교의 나라였으므로 성전과 법례가 있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야만 자신의 왕권이 유지된다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입니다. 특별히 신앙의 부모를 거역하는 행위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신앙의 부모를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하셨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신앙을 가진 아버지를 거역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사람이라면 결코 이러한 반역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압살롬은 결국 죽었고 다윗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복구합니다. 이것으로 다윗의 시련은 끝났으나 그 가정은 비극으로 애통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그의 적인 압살롬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고 기뻐해야 할 터인데 눈물을 흘리며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하며 통곡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장면을 보고 왕을 위하여 충성되게 싸운 장군들은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주시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반항의 원인은 불만입니다. 하나님께 반항하는 사람은 신앙이 없는 사람입니다. 불만이 함이면 그것은 악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악을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압살롬은 불순종의 사람,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압살롬은 심리가 비뚤어진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일을 원만한 방향으로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너그러운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압살롬은 원만하지 못한 마음의 소유자였기에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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