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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갈멜산에서의 싸움 (왕상 18: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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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상에 있어서 “예언자” 라는 말은 주로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그때의 예언자들도 이러한 능력을 예언하였지만, 그것은 그들 직무의 본질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신적인 것에 몰두하는 자들로서 그들은 대개 사당에서 살았고 때에 따라 영에게 신비하게 “잡힐” 수도 있고 필요하게 되면 그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영에 잡힌” 상태는 때로는 자발적이고, 때로는 음악과 춤에 의해서 (삼상 10:5, 왕하 3:15) 또는 여기의 바알의 예언자들같이 자기의 몸을 상하게 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자극을 받기도 했습니다. 공동생활을 하고 있던 이들 “황홀한” 예언자들 외에 또 엘리야와 같이 고독한 예언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주로 독립적으로 활동을 하였고, “영에 잡힌 것이나” 이“황홀”의 현상이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 후기에 대예언자들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와 바알은 그들의 예배의식에 속한 예언자들을 갖고 있었고,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싸움은 그 예언자들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싸움의 장소는 갈멜산 꼭대기였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송아지를 잡아서 바알신에게 바치고 불의 응답이 나타나기를 기도하였으나 그들의 신인 바알에게서는 아무런 응답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드린 그들의 기도는 헛되었습니다. “뛰놀더라” 고 한 것은 그 미신 종교에서 취하는 종교의식으로써 춤추는 순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알의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은 왕과 온 이스라엘의 보호를 받으면서 제단에 임하여 그 주위에 앉아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우리들은 국민의 소리를 대표 하나이다”고 외치며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날뛰었으나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엘리야가 옆에 서서 그들을 희롱하고 있는 동안에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였습니다(26-29절), 22-29절은 고대의 예언자들의 무리들이 춤을 추며 소리를 지르고 칼로 자기 몸을 찌르고 미친 사람과 같이 행동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줍니다. 우리들이 때때로 왕국의 초기에서 볼 수 있는(삼상 19:20, 왕하 2:3) 여호와께 속한 예언자 무리들도 그와 같이 행동하였습니다. 엘리야는 그들 옆에 서서 그들이 장시간 동안 우상에게 기도하는 소리를 인내성 있게 듣고 있었습니다. 정오가 되자 태양은 가장 뜨겁게 되었고 그들은 여전히 불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자기의 직책이 중하고 해야 할 일이 심각했지만 그들을 조롱하였는데 “크게 외쳐라 너무나 경건하며 크게 소리치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그가 신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는 이야기하고 있거나 명상하고 있을 것이며, 또는 어떤 깊은 생각에 빠져서 뭔가 다른 일을 생각하느라고 너희들의 위신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권세가 달려 있는 이런 판국에 자기의 일을 잊은 모양이로다 그가 빨리 자기를 돌아보지 않으면 그의 새로운 점령지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바알의 예언자들은 엘리야가 퍼부은 비난으로 인하여 확신을 얻기는커녕 수치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 비난은 그들을 더욱 난폭하게 만들었고 더욱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그들을 중단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지칠 때까지 버려두었습니다. 아주 절망할 때까지 버려두었습니다. 그러나 불은 결코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 그렇지만 엘리야는 제물 위에 물을 붓고 그리고 단순히 품위를 갖고 하나님의 응답의 표를 구하자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웠습니다. 그리고 번개 불이 바울의 제단을 때리고 그것을 완전히 파괴하여 아무도 여호와가 참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증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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