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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솔로몬의 건설 사업 (대하 0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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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하나님의 성전과 왕궁 건축이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의 건축사역이 끝이 없이 계속됨을 보여 줍니다.

1. 계속되는 하나님 사역 (1) 하나님의 사역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맡은 자는 계속해서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단거리가 아니며 또 한정된 시간만 하고 졸업하는 것도 아닙니다. (2) 하나님 나라는 계속 확장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이방 백성을 이스라엘의 역군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구원받지 못한 이방 백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계속적으로 복음을 전하여 구원시킬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쓰임받는 일꾼으로 삼아야 합니다.

2. 솔로몬의 건축 사업(1-6절) (1) 은혜를 잊지 않은 솔로몬 솔로몬의 성전 건축과 왕궁 건축에 있어서 후람의 존재는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윗 때부터 이스라엘과 관계를 형성하여 왔고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다는 기별을 밟자 그에게 백향목과 건축자재와 기술자를 보내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도왔습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그의 이런 우호적 태도와 헌신적 도움을 잊지 아니하여 성전 건축과 왕궁 건축이 끝나자 20개 성읍을 그에게 주어 사의를 표했습니다. (2) 솔로몬의 호의를 거절한 후람 후람은 이 호의를 하찮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후람은 그 성읍을 무가치한 것으로 표현하여 다시금 솔로몬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이렇듯 불신자들의 눈에는 천국이니 은혜니 등등은 무가치한 것으로 보여지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육신의 즐거움이요 물질이요 손에 쥐어지는 가시적인 것입니다. 후람은 온전하게 중수된 성읍을 원했습니다. (3) 솔로몬은 무가치 한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후람의 눈에 무가치한 것으로 보인 20개의 성읍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결코 무가치한 것으로 보지 않고 장차 그곳에서 밝은 모습으로 생활할 백성들의 모습을 그리며 그곳을 중축하여 가치있는 곳, 귀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무가치한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귀한 것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자세와 사고를 지녀야 합니다. (4) 그밖에 건축 사업 1) 국고성을 건축했습니다. 국고성은 저장의 성 또는 저장고라는 뜻입니다. 이런 성을 지음으로 솔로몬은 어려운 시절을 대비하는 지혜를 보여주었습니다. 주로 북쪽에 위치한 성읍이며 하맛(4절)과 납달리 (16:4)가 그러한 국고성이었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백성들의 생필품 비축 계획을 세우는 신중성을 보였습니다. 2) 주민이 주를 위한 성읍 건설 2절에 "후람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다시 건축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거기 거하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성읍들은 아직 사람이 살지는 않았으나 솔로몬은 교역을 일으키고 산업을 촉진시켜 모두가 살기에 불편이 없는 성읍들로 이곳을 재건했습니다. 3) 환난을 위한 도시 6절에 "모든 병거성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라고 했습니다. 이들 성읍들은 요새와 국고성들과는 구별되는 환락의 거주지들이었습니다. 전 2:1에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환락은 비싼 댓가로 큰 희생을 요구합니다. 4) 방어를 위한 성읍들 벨호론과 바알랏의 성읍들은 요새화 되었습니다. 그의 나라는 방어를 필요로 했습니다. 주변의 적들 북쪽의 적들은 위험하였습니다. 그래서 강한 수비대를 요구했습니다. 또한 거대한 방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부역과 세금이 필요하였습니다.

3. 솔로몬의 정치(7-10절) (1) 솔로몬은 가나안 주민들에게 강제 노동시켰습니다. 솔로몬은 건축공사를 실시하면서 가나안 원주민인 헷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 등을 강제로 징용하였습니다(7-8절). 1) 이는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창 9:25에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결국 가나안의 종살이는 예언된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2) 하나님의 율법을 지킴이었습니다. 솔로몬이 그들을 노예로 삼은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우상 숭배를 끊고 솔로몬의 통치에 복종하였으므로 솔로몬이 도의상 그들을 멸할 수는 없고 그리고 그들이 너무 가난하였으므로 도저히 세금은 부담할 수 없음을 알고 그들에게 노동력을 국가 의무로 받았던 것입니다. 레11 25:44에 "너희 종은 이방인 중에서 취할지니"이 점에서 솔로몬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이방인들로 부역시킨 것입니다. 3) 이방인을 종으로 삼는 것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고용정책이었습니다. (2)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감독자로 직을 맡겼습니다. 왕상 9:22에 "노예를 삼지 아니하였으니 저희는 군사와 그 신복과 방백과 대장이며 병거와 마병의 장관이 됨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영예롭고 영향력이 있는 지위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요 이스라엘은 선민이요 자유인이기 때문 영예로운 지위를 준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종으로 부리지 말라(레 25:39)는 말씀을 솔로몬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3) 솔로몬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알맞는 일을 맡겼습니다. 1) 백성들을 치리 할 관리를 임명했습니다. 상급 관리들은 다윗 치하에서 왕국을 다스렸던 12지파의 12방백에 해당하는 12두목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들은 지휘할 지혜와 경험을 겸비한 자들이었습니다. 하급 관리는 250명이었고 일을 감독케 하고 가나안 사람들에게 노예로 일하지 않은 자에게서 세금을 거두어들이게 했습니다. 2) 백성들은 각각 자기 적성에 가장 부합한 일을 모두 하였습니다. 노동이든 지휘자든 큰일 작은일 모두 일을 맡아 하였고 감당하지 못한 일은 없었습니다.

4. 솔로몬의 결혼(11절) 통치초에 그는 애굽 공주와 결혼하였습니다. (1) 솔로몬이 애굽 공주와 결혼한 의의는 1) 세속적 정책의 일환으로 서였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행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출애굽 후 두 나라 사이에는 교류가 서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치는 왕족의 대우를 받으며 애굽 왕과 동맹을 형성한 하닷(왕상 11:14-20)의 영향력을 저지하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조치는 그의 새로운 왕조에 대한 지원을 획득하고 보다 오랜 명성과 권력을 지닌 국가로부터 승인을 얻으려는 소원과 외국과의 동맹에 의해서 자신을 굳게 하려는 배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게다가 새 왕비는 변경의 성을 그녀의 지참금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2) 애굽 공주와 결혼은 도덕적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그녀는 외국인이었으므로 언약궤 가까이에서 떨어진 별궁에 거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은 사적인 그리고 공적인 오염으로부터 떨어져 자유로와야 합니다. 이것은 솔로몬에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임재가 모든 지역들을 성결케 한다는 것, 유대주의와 이교주의, 우상 숭배와 여호와 예배사이는 확실히 구별해야 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애굽 공주를 왕국에 들여옴으로 이런 구별이 무시되고 세속적 정책이 채택되므로 엄한 도덕 및 사소한 일들에 하나님 앞에 성결케 살고자 하는 열심이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3) 솔로몬이 애굽 공주와 결혼한 것은 환란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그 정책은 처음에는 유익했으나 긍극적으로는 허울만 그럴듯하고 내용이 없는 비정치적인 것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애굽에서 혁명이 정치를 변화시켰고 왕권을 탐하던 여로보암을 맞이했고 솔로몬은 이방 여인을 탐닉으로 이방신들을 예배하는데 앞장섰으며 이스라엘은 참담한 어두움과 우상으로 찬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2) 솔로몬은 애굽 공주를 왕후로 맞이하여 그를 위해 궁궐을 따로 건축했습니다. 솔로몬은 그녀가 다윗의 궁에 거하는 것은(11절) 결코 합당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왕후는 유대교로 개종한듯 하나 그녀의 종들은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왕후는 그녀 종들과 함께 있음으로 하나님 법궤가 있고 다윗의 거처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따로 궁궐을 세운 것입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성한 것과 속된 것 사이에 경계표를 두어 구별했습니다. "여인의 궁"이 있었던 곳은 성전 바깥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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