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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강퍅하게 됨을 면하라 (히 0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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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문화와 문명이 발달해 갈수록 거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 알지 못할 질병들도 많이 발생하여 인간을 괴롭히곤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병 가운데는 굳어져서 죽어가는 병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경화증이니 동맥경화증이니 하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에 귀여운 아이가 별다른 이유 없이 팔 다리가 굳어지고 나중에는 온 몸이 나무토막처럼 굳어져서 죽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건강을 해치는 질병은 갑자기 오는 것보다 오랜 시간동안 서서히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고생하는 당뇨병과 고혈압이 있습니다. 이런 병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손발이 저린다든지 하는 초기 증세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런 건강의 적신호를 무시하고 먹지 말아야 될 음식을 먹거나 자꾸 무리하여 어느 한계점에 도달하게 되면 결국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때는 약도 의사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그가 쓰러지면 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까 스스로 책임져야 할 문제가 아닙니까 저는 이런 질병의 환자를 대할 때마다 우리의 신앙과도 연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굳어지는 병도 무섭지만 그보다 우리의 마음이 굳어지는 것이 더 크고 무서운 질병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본문 8절에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강퍅이라는 말은 굳다 뻣뻣하다. 목이 곧다는 뜻입니다.

1. 강퍅케 됨을 면하라는 말은 마음이 굳어지지 않게 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굳어지는 것도 무섭지만은 우리의 마음이 굳어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무섭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설교 말씀 중에 씨 뿌리는 비유가 있습니다. 씨가 더러는 길바닥에, 더러는 돌 짝 발에, 더러는 가시밭에, 더러는 옥터에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길바닥, 돌 짝밭, 가시밭에 떨어진 씨는 결실이 없었으나 옥터에 떨어진 씨는 30배, 6O배, 100배의 결실을 거두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무엇인가에 의해 굳어지면 그의 생명력은 그만큼 잃어가고 있는 증거임을 말하는 것 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언제나 굳게 혹은 고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저주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우리의 심령이 강퍅할 때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 81:12에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는 강퍅한 대로 버려두시지 아니하시고 쓰라린 고통을 주어 어려운 시련을 겪게 하여 사랑의 방망이로 때리시면서 까지 우리 심령을 깨뜨려 굳어지지 않게 하시고 생명력이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입니다. 전방에서 밤에 보초를 서는데 추운 겨울에 방화수 물이 얼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 물에 소금을 용해시키고 나뭇가지로 흔들어 보초 교대마다 얼지 않은 물을 인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이 얼어붙어 굳어질까 봐서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를 고통과 시험과 시련의 방망이로 우리를 바싹 깨뜨린 다음에 하늘의 신령한 복을 내리시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모르고 편안하게 살면 우리의 마음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질병, 역경, 실패, 죽음을 맛보는 듯한 고초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게 됩니다. 혹시나 여러분의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말 못할 시험과 환난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이것은 분명히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 나님께서 무엇인가 좀더 깨어지고 부서지게 하기 위한 축복의 방망이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추운 겨울에 험한 산길을 어린아이를 업은 어머니가 걷고 있었습니다. 너무 너무 추워서 그만 그 어머니는 온 몸이 얼고 얼마 안가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에 마침 어떤 자동차 한대가 지나가다가 그 애처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이 운전수는 그 여인을 살리기 위해 한 가지 꾀를 생각했습니다. 그 옆에 도착하여 그 여인에게 어린아이만 차에 태우게 하고 그 여인은 그 차 뒤로 따라오라고 하고 차는 여인의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가는 듯하다가 부웅하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 여인은 자기 아이가 유괴 당한 줄로 알고 유괴범 잡으라고 소리치며 열심히 뛰어옵니다. 그 차가 500m 정도 달리고 나서 머물러 섰습니다. 그 여인이 열심을 다해 뛰어 거의 닿을 쯤 되니 또 부웅하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1000m쯤 가서 다시 섰습니다. 그 여인은 열심히 뛰어 갔습니다. 결국 그 여인은 그 차를 잡았습니다. 그제 서야 차가 정차하여 그 여인을 차에 태웠습니다. 이 여인은 뛰다보니 추위에 얼어붙은 몸이 다 녹아지고 몸에는 땀이 났습니다. 운전수는 말하기를 당신과 아이를 그대로 차에 태웠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당신은 얼어 죽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몸을 좀 녹이기 위해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그 여인은 그제서야 운전사의 뜻을 알고 고마워하고 감사 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나갈 때 죄악의 추위에 우리 몸이 얼어붙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숱한 고통과 시련과 실패를 맛보게 해서 우리의 몸을 녹이고 굳어진 마음을 깨뜨려서 은혜의 생활을 하게하고 천국에 이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시련과 실패가 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우리 심령을 돌아보아 더 깨어지고 부서지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2. 강퍅케 됨을 면하라 하는 말은 성령의 역사를 소멸치 말라는 말입니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양심에는 가끔 희미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우리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신경을 쓰면 그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리지만 만일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무시해 버린다면 그 소리는 점점 작아지다가 마침내는 전혀 들려오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양심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생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삶이란 매우 조용한 삶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죽은 시체의 평온입니다, 교회도 한두 주일 빠질 때 괴로운 것이지 여러 주일을 계속해서 빠지다보면 무감각해집니다. 우리의 의식이 마비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한계점을 벗어나면 그때부터 무의식 상태, 마치 시체의 고요함 같은 상태가 오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성령의 감화에 대해서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화를 계속 거역하거나 반항하고 소멸하는 자에게는 마침내 성령도 탄식을 한다는 것입니다. 롬 1:24에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계속 외면하면 그 말씀에 거역하는 자들을 마침내는 “포기했다”, “내어 비렸다”는 것입니다. 그 무섭고 비참한 상태에 빠졌던 사람을 성경 중에서 찾으라면 첫째는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일 것입니다. 두 번째는 바리새인들일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증거 하실 때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이심을 알면서도 예수님을 부정하기 위해 마 12:22-32에 보면 예수는 귀신의 두목인 바알세불의 도움을 받아 이적을 행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얼마나 망령된 소리입니까 그들은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버렸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마침내 버림을 받은 자가 되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거나 거부할 때 심판을 받으며 그러한 심판의 결과로 강퍅하게 됨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강퍅한 마음 즉 굳어진 마음을 녹여야 할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변화를 입어야 할 것이며 강퍅한 마음, 즉 성령을 거스리는 마음에서 회개하여 성령의 감화에 내 심령이 사는 역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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