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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에바브로디도 집사 (빌 02: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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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에서 모범이 되는 집사였습니다. 그는 사도바울이 로마 옥중에 갇혀 있음을 염려하여 빌립보 교회에서 보내는 약간의 위문품을 가지고 멀리 로마까지 가서 옥중에 있는 바울을 면회하고 위로하였습니다. 바울은 셋집에서 옥중살이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수질하는 군사 밑에서 쇠사슬에 매인 몸이니 얼마나 괴롭고 쓸쓸하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의 방문으로 큰 위로를 받고 큰 힘을 얻어 옥중 전도를 더욱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와 함께 있을 수도 있었으나 몇 가지의 유익한 점을 고려한 후 그를 빌립보 교회로 보낸 것입니다. (1)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 교회를 그리워하고 교인들을 사모한다는 점입니다. (2) 빌립의 교회 교인들 또한 모범적인 집사였던 에바브로디도를 그리워하고 사모한다는 점입니다. (3) 사도 바울 역시 자기 자신이 빌립보 교회를 사랑하고 에바브로디도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를 본교회로 돌려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노 사도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생을 무릅쓰고 로마까지 왔으나 다시 본교회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와 목사와 직원 사이에 얽혀진 사랑의 연속선인 것입니다. 참으로 귀하고 복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교역자를 잘 돕는 진실한 에바브로디도 집사 빌립보서 2:25절을 보면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것을 돕는 자라”고 하였으니 모범이 되는 집사였던 것입니다. “나의 형제요”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한 형제자매가 된 자라는 뜻이니 이는 우정이 더욱 두텁고 깊다는 것을 말해줍니 다. “함께 수고하고”라고 한 것은 힘을 합하여 노고를 함께 하고 일을 서로 담당한다는 뜻입니다. “함께 군사 된 자요”라고 한 것은 생사를 같이하여 신령한 싸움에 동참한다는 뜻이며 그야말로 끊을 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이는 곧 신앙적으로 한 피 받은 형제요, 사명으로 동고동락하는 자요, 영적 전선에서는 같이 군사 된 자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흥되는 교회의 배후를 살펴보면 꼭 목사를 잘 돕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집사의 직불은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일하고 목사에게 잘 협조해야 할 것입니다. 일국의 대통령도 그를 잘 보살피는 사람을 각료 장관으로 임명하고, 또 잘 보살펴야 만이 선정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 생활 중에 즐거움이 많으나 그 중에서 마음이 맞는 직원들과 교회의 대소사를 의논하며 일하는 것처럼 기쁜 일이 없습니다. 목사를 잘 돕는 일은 그를 위해 기도하는 일입니다. 공중 기도나 사적인 기도를 할 때 목사를 위한 기도를 빼서는 안 됩니다. 또한 목사의 뜻을 잘 파악하여 그의 뜻을 잘 받들어 순종하고 그의 선한 이면을 전적으로 찬동하여 협력하며, 그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보필해 드리는 것이 목사를 돕는 일입니다. 목사가 교회를 옮기는 가장 큰 이유 몇 가지가 있습니다. 교회 직원과 뜻이 맞지 않고, 교역자인 목사의 할 일을 직원들이 하게 되고, 교회의 운전대를 교회 직원들이 잡아 면허 없는 운전사가 운전하듯 교회의 방향이 흐트러질 때 교역자는 거의 그 교회를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좋은 교역자 만난다는 것이 제일 귀하고 제일 큰 복입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목사 밑에서 교훈의 진리를 오랫동안 들으려면 직원들이 목사를 잘 돕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2. 교회 일을 염려하여 수고하는 에바브로디도 집사 빌립보서 2:26-28을 보면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로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고 하였으니 에바브로디도는 떠나온 빌립보 교회를 간절히 사모하였습니다. 몸은 비록 멀리 로마에 와 있으나 빌립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염려보다 교회에 대한 염려를 더 하였고 자기 살림보다는 교회의 살림에 더 마음을 썼습니다. 그는 항상 교회를 생각하고 교회 일을 염려하였습니다. 교회의 일은 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있고, 또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인 신앙의 일은 한정이 없는 것입니다.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은 한 가지 일도 뒤로 미루고 하지 않으나 열심히 봉사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일감이 생깁니다. 우리는 자기 몫의 십자가를 자신이 지고 가는 식으로 수고해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서 남의 짐까지도 져주는 심정으로 봉사해야 할 것입니다. 전도에 힘쓴 빌립 집사는 자신이 사마리아에 내려가 직접 전도하였고(행 8:5), 전도자 바울을 접대하는 일에도 힘썼습니다(행 21:8). 또한 빌립의 딸 네 명 모두가 처녀로 예언을 하는 복된 가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일에 전력을 기울인 가정이었습니다.

3. 그리스도를 위하여 충성하는 집사 빌립보서 2:29-30을 보면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고“하여 에바브로디도 집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에 이르기까지 충성을 다한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충성의 한도는 죽기까지입니다. 요한계시록 제 2장 10절을 보면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였습니다. 참된 충성은 여유를 남기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가진 노력을 다하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두어 적극적으로 최대의 헌신과 봉사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제 14장 7절-8절을 보면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충성은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누가복음 제 16장 10절에서는 “지극히·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집사직은 큰 직분입니다. 대통령보다 더 귀한 직분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여 첫 순교자의 영광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쓰고 즐거워 할 것입니다. 모범적인 집사 에바브로디도는 교역자를 돕고, 교회의 일을 염려하여 봉사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 제 3장 13절에서는 “집사의 직분을 잘 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범적인 집사 에바브로디도를 본받아 우리들도 주의 종인 교역자를 잘 돕고, 교회의 대소사를 한결같이 헌신 봉사하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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