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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의 바다 (겔 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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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은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희망의 예언자였습니다. 그가 하루는 하나님의 인도로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에 대한 환상을 얻었습니다.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번성하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감으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물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사실 고대 문명은 큰 강을 끼고 발전해 왔습니다. 중국의 문화는 양자강 을 중심하여 일어났고 바벨론 문화는 유프라테스강을 중심하여 일어났고 애굽의 문화는 나일강을 중심하여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보 여 주신 것은 일반 강수가 아닙니다. 만일 그것이 일반 강수라면 어떻게 성전 문지방 밑에서 그런 큰 물이 흘러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예루살렘 성에는 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본 강은 영적 생명을 전 인류에게 제공하는 하나님의 무진장의 은혜를 비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강수는 그 출처가 성전이었다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이 보았던 계 21:1에 “어린 양의 보좌에서 나왔다”라고 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신 곳을 뜻함이요, 어린 양의 보좌도 같은 뜻이고 보면 은혜의 생명 강수는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내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물은 에덴동산에서 흘러나왔고 은혜의 강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한 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로마의 병정들이 참으로 찌른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솟아나온 물과 피는 만인의 생명수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흘러주신 생명수 샘물은 육대주 오대양에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계 22:17에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마시라”고 하였습니다.

1. 강수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기서 천사가 보여준 것은 일반 강수가 아닙니다. 만일 그것이 일반 강수라면 어떻게 성전에서 그런 큰 강이 흘러나을 것입니까 신약의 복음을 비유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 7:37-38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가 흘러나리라”고 했습니다. 이 강수는 예수의 보혈을 의미 합니다.

2. 측량하여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일천 척을 척량하니 발목에 물이 이르고 또 일천 척을 척량하니 물이 무릎에 이르고 또 일천 척을 척량하니 물이 허리에 이르고 또 일천 척을 척량하니 물에 잠기게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여기 일천이란 많은 것을 의미함이요 척이란 것은 성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원래 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인데 그 경전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캐논이라고 하는데 캐논은 척도, 표준자라는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길고 짧은 것을 자로 재서 결정짓는 것처럼 죄악이 혼란한 세상에서 성경은 신앙과 양심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이 타락하였을 때 루터가 성경으로 당시의 신앙을 재보았습니다. 주후 4세기에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했을 때 아다나시우스가 성경으로 재보았습니다. 성경으로 재보고 맞지 않으면 개혁했습니다. 오늘 현대 교인들도 성경으로 재보고 은혜바다로 들어가야 합니다. 은혜라는 것은 성경으로 재보지 않고 무턱대로 받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탈한 은혜 체험은 허무한 것이요,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깊이를 더하고 강도를 더하고 열을 더하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뿐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을 깊은 은혜의 바다로 들어가게 하는 능력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고 하나님의 성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신앙의 바른 길을 측량할 수 없습니다. 망망한 대해의 항해에 반드시 나침판이 있어야 하듯이 혼란한 세상에서 영생포구 항해가는 우리 인생들에게 성령 없이는 구원받을 자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회의 교리를 신앙의 표준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같은 기독교 안에서도 신앙의 혼선을 자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바른 척도요 나침판이요, 유일의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뿐입니다.

3. 깊은 데로 들어갑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처음에는 발목에 오르는 물을 건너보았고, 그 다음에 무릎에 오르는 물 또 그 다음에 허리에 오르는 물, 나중엔 건너지 못할 깊은 물에 잠겨 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전진했습니다. 전진 없는 신앙생활 은 퇴보합니다. 이 깊은 물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그렇게 크다 고 하는 이유는, 우리를 대신해서 홀리신 그의 보혈이 무궁하신 하나님 아 들의 보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천지만물보다 크시니 그의 보혈의 가치도 무궁합니다. 그러므로 (1) 우리가 그의 피를 믿어 죄를 사함 받는다 함은 우리의 몇 가지 죄 만 사함 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많은 죄를 다 사함 받는다는 것입니다. (2) 우리가 그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이 되는 것은 그의 무궁하신 의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3) 그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 은혜 되게 하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죽음도 우리에게 은혜됩니다. (4) 우리가 깊은 바다에서 나를 의지하지 않고 물만 의지하여 헤엄치는 것같이 우리가 깊은 은혜 가운데 살아야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에게 사 로 잡힙니다.

4. 헤엄치며 들어갑시다 마침내 발목, 무릎, 허리의 깊이를 지나 이제 온 몸이 잠겨 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생명의 강에서 헤엄치게 되었습니다. 그의 언행, 그의 사 생활, 그의 사업, 그의 가정 전부가 은혜로 화하게 되었습니다. 은혜의 물결에 온전히 잠겨서 이제는 자유로 헤엄치게 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생활하여 성결하게 되었습니다. 은혜 강수에 온 몸과 마음이 잠기는 우리가 되시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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