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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욥의 기원 (욥 07: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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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욥의 호소(7-11절) 7절로 접어들면서 분위기는 갑자기 변합니다. 절망하던 욥은 다시 하나님을 향합니다. 욥기서의 독특한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절망의 심연에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방향을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말하듯이 원망하면서 호소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욥의 친구였습니다. 다만 지금은 피차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러나 그의 원망과 항거 배후에는 하나님을 향한 애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영원히 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7-8절에 “내 생명이 한 호흡 같음을 생각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욥은 여기서 하나님에게 자비를 호소합니다. 욥의 기도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앙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를 찾아 나선다고 해도 그 때는 이미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인생은 짧고 절망적이고 생명의 한 호흡과 같다고 하는 말을 그는 하나님 더러 들으라고 외친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욥을 보는 순간 욥은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욥의 경우는 사후 자기의 입장을 변명할 여유가 없습니다.

2. 욥의 반항(12-l6절) 11-12절에 “내가 원망하리이다 내가 바라니이까 라고 했습니다. 이 항의는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구약 성서에 바다는 으례히 우주적인 악마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지금 자기를 바다처럼 취급하신다고 한 것입니다. 바다에 비유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다는 풍랑이 쉴 때가 없습니다. 인생의 마음에도 풍랑이 쉬지 않습니다. 바다는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먹어도 차지 않습니다. 한도 끝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마음도 만족이 없습니다. 진정한 만족은 예수님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바다와 같이 사납습니다. 배를 타고 먼 바다를 여행해 본적이 있습니까 산같은 파도가 주야로 넘실거립니다. 바다는 사납습니다. 바다는 잔인하도록 흉용합니다. 13-16절은 욥의 육체적 질병과 아울러 가위 눌리는 것과 같은 악몽을 포함한 정신질환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죽음에 대한 동경과 일시적인 고통의 제거에 대한 멸망 사이를 방황하고 있는 욥을 볼 수 있습니다.

3. 낭패(17-21절) 17-18절에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시 8:3-4에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편의 내용이 욥기서와 비슷한 것 같으나 전혀 반대입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께서 지나치리 만큼 자세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론 분초마다 인간사에 관여하는 것을 불평하면서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관심두고 사랑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았기 때문이요. 둘째로 하나님께서 보배 피를 흘려서 구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욥이 하나님에게 질문을 하는 것은 엘리바스와 유사점을 발견합니다. 19절에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라고 했듯이 욥은 하나님에게 묻기를 언제까지 그렇게 자기를 괴롭힐 것이냐고 묻습니다. 20절에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에게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까”라고 했습니다. 침 삼킬 동안이란 말은 순간을 의미하는 속담입니다. 즉 욥은 짧은 순간이라도 은혜를 달라는 호소입니다. 가령 자기가 죄를 지었다한들 그것이 도대체 하나님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마치 죄의 심각성도,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도 파악하지 못한 것처럼 물어댑니다. “죄를 범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그 무엇인가를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도 십자가까지 동원하여 처리해야 할 만큼 커다란 그 무엇인가를 하나님을 향해서 행하여진 것입니다. 21절 마지막 부분에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네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뉘우리니 주께서 나를 부지런히 찾으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역시 그가 죽음에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복합니다. 욥은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내는 욥을 찾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자기와 멀어질 수 없다는 확신을 욥은 지녔는데 이것이 영적인 믿음의 증거입니다. 이런 신앙의 확신이 있어야 어떤 환란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뢰할 수 있고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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