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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드린 자가 받는 축복 (삼상 02: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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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찬미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간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각 자가 돌봐야 할 식구들이 있는 가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엘가나와 한나는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좋은 곳에 남겨 두고 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사무엘을 두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무엘은 부모를 따라 집으로 가려고 울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무엘은 그들을 떠나 그 곳에 머물기를 원하는 듯하였습니다. 그들은 매년제를 드리기 위해 해마다 꾸준히 하나님의 집에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해마다 한 번씩 매년제를 드리기 위해 올라가는 것은 눈에 띄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매년제를 위한 제를물을 가지고 갔기 때입니다. 그 때 한나는 아들을 위해 새로운“ 작은 옷 ” 과 거기 따르는 것들을 마련 해주었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우는 기간 동안에는 그의 옷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기의일을 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그들과 함께 있든지 또는 따로 있든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이든 부족함이 없도록 잘 돌봐주어야 합니다. 더우기 책임적이며 희망이 있는 자녀와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는 갑절의 친절을 가지고 가지고 돌보아야 합니다. 18절에 사무무엘이 에봇을 입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분명히 에봇은 제사장의 옷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성전에서 에봇을 입고 제사장의 수종 드는 일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고 사무엘이 성전 일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부족없이 해 주었으며 하나님을 위한 봉사를 아낌없이 드린 것입니다. 이렇게 드리기를 힘쓰는 사람은 또한 거기에 부응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른 바 드린 자가 받는 축복입니다.

1. 하나님께 드린 자는 길이 길이 흡족함을 얻습니다. 한나는 신앙심이 깊은 경건한 여인으로서 남편도 잘 만났고 살림도 부유하고 집안도 평안해서 남부러울 것이 별로 없었으나 잉태치 못하는 석녀(石女)라는 사실 한 가지가 그의 크나큰 통한거리였습니다. 여인에게 불임이라는 것은 여호와의 은총권 외에 버려진 증거라는 생각이 당시 사회의 통념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단순 아들을 못 낳는다는 슬픔보다는 하나님 권고를 입지 못한다는 슬플 때문에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서원 기도한 바, 기도 응답받고 얻은 아들이 사무엘이었으며 한나는 그의 서원 기도대로 사무엘의 젖 뗄 때를 기다렸다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한나의 이런 결단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리 쉽게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인간은 서원 기도하고 그것이 이루어진 다음에 그 서원했던대로 이행하리만큼 신실한 존재가 못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서원 기도를 신실하게 이행했습니다. 그 결과그녀는 마음에 흡족함을 얻었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집에 있을 때나 종종실로에 가서 사무엘을 만나 볼 때나 그냥 흡족하기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드린 자가 받는 복입니다.

2. 하나님께 드린 자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굄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세상에서 그의 눈밖에 나서 될 일이 없고, 사람과 섞여 사는 세상에서 저들에게 저주를 받아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는 물론이요, 할 수만 있다면 사람으로부터도 사랑을 받고 굄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쓰는 자는 바로 이러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한나가 사무엘을 데리고 실로에 찾아가 서원한대로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를 선도해 주기를 제사장에게 부탁했을 때, 제사장 엘리는 한나를 위해 부탁받지도 아니한 축복까지 해 주었던 것입니다( 20절).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정을 받기 원하는 자는 먼저 하나님께드리는 생활에 힘쓸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하면 한나가 받은 축복을 받게될 것입니다.

3. 드린 것이 잘 됩니다. 만일 한나가 서원은 했지만 사무엘을 바치기가 아까와 서원을 이행치 아니했더라면 사무엘도 엘리의 아들들처럼 불량자가 되어 가정과 사회를 어둡게 했거나 고작 자기 한 집안의 호구지책이나 도모하다가 일생을 마친 무명인사에 불과했을런지도 모릅니다. 설령 그 이상 더 잘되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 봉헌된 사무엘만큼 영광스럽고 귀하게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고귀하고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1) 사사로 발탁되었습니다. 출애굽 후 가나안 땅에 진입한 후 왕정을 실시하기까지 약 400년간에 걸쳐 과도기에 통치자로 활약한 인물들을 사사라고 일컫는데 사무엘은 사사 중에도 유명한 사사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지대한 공로를 세운 지도자입니다. 사사는 전국에서 단 한사람 뿐인 정치수반으로써 타천이나 자찬에 의해 취임되기도 했지만,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직접 불러 세우신 사사이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축복입니까 (2) 선지자로 봉사했습니다. 사사직 한 가지만도 감당하기가 어려운데 사무엘은 선지자직까지 받아 두 가지 다 성공적으로 수행한 특출한 지도자였습니다. (3) 이스라엘의 국부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전환하는 중요한 시기에 초대 왕인 사울과 제 2대 왕인 ,다윗을 손수 기름 부어 세우면서 나라를 신앙의 초석위에 세운 이스라엘의 국부로서 역사를 이어오며 존경받는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실로 한나가 데리고 있는 것보다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사무엘은 훨씬 더 잘 되었으며, 이것이 곧 드린 자가 받는 축복입니다.

4. 드린 것보다 더 많이 받습니다. 사무엘을 드리는 한나의 신앙에 감동이 되어 엘리는 축복했고, 하나님은 응답하셔서 한나는 그 배후에 3남 2녀를 더 낳게 되었으니 이는 원래 잉태치 못한 자녀에게 기적적인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한나가 이를 생각하고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린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서원 기도한대로 시행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감사와 기쁨과 영광으로 가슴이 벅차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한나가 드린 한 아들 대신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서원은 했지만 결단을 못하고 하나님께 드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용단을 내리고 하나님께 드린 자는 자신이 드린 것보다 더 많이 받는 신비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눅 6:38에 “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요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야 넘치도록 더 주실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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