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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마리아에 임 할 파멸 (암 06: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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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들 중에는 전반적인 대 살육이 있을 것입니다(9-10절) 9-10절에는 장차 사마리아에 닥쳐올 황폐와 파멸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구원에 대해서 거의 희망이 없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아마도 전쟁의 참화에 뒤따른 역병으로 말미암아 죽을 것을 가리킨 것이라고 봅니다. 온 가족이 죽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가까운 친척들만이 여기저기에 조금남아서 청소작업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오염이 확대되지 않도록 죽은 자의 시체를 불사를 것입니다. 시체를 불사르는 일은 히브리 사람들 가운데서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 집의 내실에” 숨어 있던 자가 우연히 발견되어서 남아 자들이 또 있느냐고 질문을 받게 되면 그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없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즉 이는 나 밖에는 “아주 없다”는 말입니다. 무서운 파멸을 초래한 노하심이 다시 자기에게 닥쳐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야웨의 이름” 일컫는 것도 제지(制止) 될 것입니다.

2. 그들의 집이 훼파될 것입니다(11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큰 집을 쳐서 갈라지게 하며 작은 집을 쳐서 터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의 집은 갈라져서 아름다움과 견고함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속히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제왕의 궁궐이라 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책망을 면하지 못하며 가난한 사람의 오두막집이라 해서 예외로 취급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어떤 집도 이를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죄가 그들을 파멸의 대상으로 주목할 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방법을 찾아 그들의 파멸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균열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진다는데 주목합시다.

3. 그들이 당하는 심판은 당연합니다(12절) 다음에 계속되는 수사적 질문은 하나님과 그의 계명에 대한 그들의 지식에 비추어서 전혀 이치에도 맞지 않은 이 나라의 행위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사물의 성질상 말은 가파른 바위투성이의 산모퉁이를 달릴 수가 없으며 오직 대로나 평지 위에서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12절에 “아무도 소로 바다를 밭 갈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그보다 훨씬 더 불합리하고 부자연스러운 일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공의를 수호했어야 할 그들을 불의한 것으로 변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계약의 그 근거를 의심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불의한 판결은 재판을 조소의 대상이 되게 하였으며, 그러하여 재판제도 전체에 해독을 끼쳐 주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정의의 열매를 인진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범죄로 변질시킬 때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에게 쓸개 같이 되어 마땅할 것입니다.

4.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했습니다(13절) 그들은 체험만 믿고 자기들이 전능자의 적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신뢰할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 데도 재앙이 자기들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은 신뢰할 것이 전혀 없는 데도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뿔은 우리의 힘으로 취하지 않았느냐 우리는 큰 존귀와 주권에 이르렀고 우리 원수들을 분쇄하여 승리를 쟁취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힘, 즉 우리의 기술과 용기, 우리의 재무와 군사력으로 취한게 아니냐 그렇다면 우리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우리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필요가 없다.” 번영과 성공은 흔히 사람들을 안심하게 만들고 교만하게 만든다는 점에 유의합시다. 많은 일을 이룩한 자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하나님 없이도 그 일을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조차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간파하신 것입니다.

5. 이스라엘에게 선포된 심판(14절) 14절은 암 5장-6장의 예언에 대한 효과적인 결론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선포된 심판을 초점으로 집중시켜 주고 있으며 실제로 “야웨의 진노의 막대기”가 된 한 나라와 그 방법을 부각시켜 주고 있습니다. “너희를 치기” 위하여 일으켜질 그 나라는 이스라엘을 치기 위하여 진군하도록 지시를 받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의 구문은 그러한 움직임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이스라엘을 학대할 것입니다. 이것은 여로보암 2세의 정복에 의하여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판도의 한계였던 것입니다. 즉 강한 앗수르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칠 것입니다. 하맛은 유대의 북방이며, 아라바 시내는 사해 남방이니 유대 전국을 가리킵니다(왕상 8:65). 죄가 있으면서도 평안을 바라는 것은 그릇된 신앙입니다. 교만한 자신은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이므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계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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