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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병든 심령을 치료하자 (호 0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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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1) 믿음으로 죄 사함 받습니다(행 10:43). (2)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행 13:39). (3) 믿음으로 양자가 됩니다. (요 1:12). (4) 믿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롬 5:2). (5) 믿음으로 구원 얻습니다(행 16:31). (6) 믿음으로 영생을 누립니다(요 3:16). (7) 믿음으로 안식에 들어갑니다(히 4:3).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어 산을 옮길만한 만능이라고 합니다. 금보다 더더욱 보배로운 이 귀한 믿음이 병들고 고장이 났다는 것입니다.

2. 믿음에는 어떤 믿음이 있습니까 (1) 훌륭하고 좋은 믿음예수님 당시에 좋은 믿음의 사람 몇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 하인의 중풍병을 믿음으로 고친 백부장의 믿음, 백부장은 주에게 부탁하기를 “내 집에 오시지 말고 말씀만 하셔도 하인이 병이 낫겠삽나이다”라고 믿는 절대적인 믿음은 이스라엘 중에 가장 큰 믿음이라고 주님께서 칭찬해 주셨습니다(마 8장). 2) 가나 여인의 믿음(마 15:21-28). 그녀는 예수님께 무시당하고 “아무 대답도 안 해 주시므로” 거절을 당하고 “이스라엘 잃은 양에게 보냈다고 상대 안 하시므로……” 멸시를 당하고 “개 같은 가나안인 이라고 하시므로……” 하였으나 이를 감수하고 부스러기라도 족하겠다고 하므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딸의 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3) 12년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막 5:25-34).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은 의원에게 다 찾아가 재산을 허비하고 더 증세는 나빠지다가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 얻을 줄 믿었던 것입니다. 그 믿음 그대로 혈루증이 나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라”라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2) 그릇되고 부족한 믿음 1) 바리새인의 교만한 믿음(마 9:9-13). 2) 사두개인의 현실적 믿음(막 12:18-27). 3) 사데 교인의 죽은 믿음. 4) 쉬운 것만 믿는 제한된 믿음, “아들의 간질병을 할 수만 있으면 고쳐주옵소서”(막 9:14-29). 5) 근시안적인 마르다의 국한된 믿음(요 11:17-27). 6) 실증만을 주장하는 도마의 회의적 믿음(요 20:24-29).

3. 병든 믿음을 몇 가지 시정하여 완전한 믿음으로 회복합시다 (1) 일차적으로 가열되는 감정적인 신앙 달궈진 화덕은 일시 적으로 뜨거운 열을 발하지만 불만 꺼지면 싸늘한 냉장고와 같아집니다. 화덕은 열이 있어야 화덕입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굉장한 집회 번거로운 행사와 의식 등, 그러나 그 한 때만 지나가면 “우리가 언제 그랬던가” 라는 식으로 싸늘하게 식어지는 이것이 감정적인 믿음입니다. 순간적인 열심이라면 차라리 열심을 내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계속 전진하는 믿음, 성장하고 부흥만 되는 발전, 전진은 있을지언정 내려오고 식어지는 변덕의 신앙은 좋은 신앙이 아닙니다. 의지의 소산은 철학과 과학이요, 감정의 소산은 예술과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감정을 떠나서는 종교가 있을 리 없고, 종교를 떠나서는 감정이 무용한 것입니다. 유교는 도덕과 윤리를 고조하였으니 의지의 소산이요, 불교는 철학에 근사하니 이지의 소산입니다. 그러나 의지와 이지로만 종교를 구성하면 일종의 기계와 같아서 도덕과 철학의 세계가 아무리 훌륭해도 거기에는 생명의 약동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의지는 굳고 이지는 찹니다. 그러나 감정은 뜨겁습니다. 세계 4대 종교를 비교해 보면 1) 회교는 정치적 종교인데 믿을수록 점점 무서워지고 2) 유교는 도덕적 종교인데 믿을수록 점점 굳어지고 3) 불교는 철학적 종교인데 믿을수록 점점 슬퍼지고 4) 기독교는 구속의 종교인데 믿을수록 점점 기뻐집니다. 감정이 있는 곳에 몸이 있고, 생명이 있고, 활동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을 3분하여 보면, 머리로 깨닫고 섬기는 이지적 신앙과 몸으로 헌신 봉사하는 의지적 신앙과 마음으로 느끼고 발동하는 감정적 신앙입니다. 주님과 우리 관계는 고객과 거래되는 이해관계가 아니요, 자부와 시모간의 엄친적 관계가 아니요, 신랑과 신부 간에 연락되는 첫사랑을 속삭이는 감정적인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생활 과정에 있어서 이런 감정적인 열정미가 반드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신앙의 체험을 맛보지 못하는 자는 과거를 깨닫는다고 해도 철저한 회개의 애통도 잘 일어나지 않고 속죄와 축복의 큰 은혜를 받도서도 감격스러운 기쁨을 느끼지 못합니다. 뿌리가 깊이 박히지 않은 나무가 가지만 무성하게 자라면 힘의 균형이 잡히지 않아 결국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체력이 약한 몸에는 가벼운 죽을 먹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과식하면 결국에는 소화를 시키지 못하여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많이 받는 것만이 좋은 일이 아니라, 받은 은혜로 잘 간수하고 유지하는 것이 좋은 일이요, 더 큰 은혜입니다. (2) 비정상적으로 기울어지는 신비주의적 신앙 술에 취하고 술에 중독된 자는 자기의 옳은 정신을 발휘하지 못하고 미친 사람처럼 헛소리를 하며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붙들린 자 절제하지 못합니다. 그 미친 모습은 자기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막대한 피해를 줍니다. 성경에 신비한 사건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두 신령한 일은 신령하게 해석합니다. 그러나 신비주의란 말과 다릅니다.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못합니다. 신비주의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못할 뿐 아니라 정상적인 교회봉사와 신자로서의 태도와 사상에서 탈선되는 미친 교인들이 많이 생깁니다. 술 마신 사람은 처음에는 여우처럼 아양을 떨며 사랑과 인정으로 넘쳐 보입니다. 다음에 호랑이처럼 함부로 싸우고 떠들고 치고받고 야단들입니다. 나중에는 돼지처럼 미친 추태를 부리며 더러운 하수구에 빠져서 콧노래를 부르며 좋다고 하니 술 취한 자들의 생활입니다. 잘못된 신비주의는 이런 생활과 비슷합니다. 그러면 건전한 신비를 체험한 생활은 성령 충만한 생활입니다. 사도 바울은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하심은 소극적으로 명령을 범하는 것도 나쁘지만 하라하는 적극적인 명령을 실행하지 않는 것은 더 나쁘고 더 큰 죄가 됩니다. 바울은 자기를 심문하는 법관 베스도 앞에서 오히려 열심으로 전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베스도가 행 26:24에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라고 반박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베스도가 지적한 정신적인 광인이 아니요, 사실인즉 예수님께 미친 신령적인 광인인 것입니다. 미친 사람의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한 가지 일에만 골똘히 생각합니다. 2) 자기의 수치스러움을 모릅니다. 3) 큰 힘을 발휘하며 당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예수님에게 옳게 미치고 성령에 취해야 하겠습니다. 자나 깨나 “예수, 예수” 예수님 한분으로 만족하고 예수님만 생각하는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불건전하고 사이비한 신비주의에 미친 사람들을 보면 자기들의 생각에는 성령을 받은 것 같으나 실지로는 악신을 받고 미신에 빠진 것입니다. 감정에 치우치고 기분에 날뛰며 혈기에 사로잡혀서 외모로 볼 때에는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열심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육신에 나타나는 현상 그것을 다 성령의 역사인 줄 알고 진단해보지도 않고 성경에 비춰보지도 않고 맹신하는 교인들이 있는데 이것이 잘못되면 광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신령한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거룩하고 고귀한 심령에 임하는 것이지, 결단코 썩어질 육체에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취한 사람, 즉 예수님께 미친 사람은 오히려 더욱 태도가 단정하고 모습이 자연스러우며 규모가 확실하고 질서정연한 법입니다. 어린 아이 때와 장성한 때는 달라져 야 합니다. (3) 편파적으로 기울어지는 편중된 신앙 8절에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전병을 구을 때에 뒤집지 않으면 한 쪽은 타고, 한 쪽은 덜 구워져 결국 먹을 수 없는 떡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뜻합니다. 반신불수는 곧 중풍병이니 몸의 한쪽은 성하나 다른 한 쪽은 못 쓰는 불구자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고혈압이나 기타 중병을 앓고 난 휴유증으로 생겨지는 병이요, 일단 걸리면 고치기 어렵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귀는 당나귀처럼 커서 천하 명사의 설교는 다 듣는데, 손은 문둥이의 조막살이 손처럼 오그라들어서 헌금과 봉사에 인색합니다. 신앙이란 인격적으로 원만하고 단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아무리 특수한 재능과 인격을 소유하였다 해도 또한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 해도 전체 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교회는 은혜스럽게 화합하여 부흥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병든 신앙을 가지고 혼자서 앓으며 고생할 것이 아니라, 만병의 영적 의사가 되시는 예수님께(마 9:12-13) 나와서 빨리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출 15:26에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 하였으니 하나님 앞에 나오면 무슨 병이든지 치료해 주십니다. 약 5:14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한 것이요” 하였으니, 우선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병을 고칠 때마다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벽에서 놓여 강건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병든 몸과 믿음을 고치는 방법은 악을 떠나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말씀의 양약을 먹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인 영적 수술 칼로 해부수술을 받은 것이요, 간절히 병 낫기를 위하여 회개하고 애통하며 기도할 것이요, 확실히 믿고 의심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특별 은사와, 예수님의 특별 사랑과 성령님의 특별축복으로 우리의 병든 몸과 마음을 강건케 해 주시고 병든 신앙도 완전한 신앙으로 회복시켜 주시고, 신령한 성령의 충만한 은총을 오늘 넘치도록 부어 주실 것이니 그 크신 축복을 유감없이 받아 누리시는 여러 성도들이 되시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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