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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총 (고후 09: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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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생활 속에는 감사와 고마움이 너무 메말라 있는 것 같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는 우리의 표정은 너무 딱딱하고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 우리의 언어가 너무 인색하지는 않나 생각하여 보십시다. 외국인을 보게 되면 그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또 역사의 인물 배후에는 좋은 환경보다는 불우하고 비참하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 그러나 일생을 감격스럽게 보낸 사람들을 많이 찾아보게 됩니다. (1) 미국의 헬렌 켈러 여사 그는 귀머거리, 벙어리, 소경으로 비참한 불구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온전한 몸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욱 더 성공적인 인생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오히려 그는 불구자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평생을 자기처럼 불구자가 된 자들에게 삶의 의미와 삶의 용기를 주면서 살았습니다. (2) 크로스비 여사가 있습니다. 그녀는 세상에 태어난 지 6주일만에 의사의 오진으로 말미암아 그만 소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불행 중에도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울 수 있었고 주의 구속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어 다행스러웠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격하여 찬송시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가 쓴 시는 너무 은혜스럽고 감동을 주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시를 좋아했고, 그 찬송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세상에 94세까지 살면서 600편의 찬송시를 썼습니다. 그 중에도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는 뜨거운 찬송시를 썼던 것입니다. 그녀는 어떤 사람들이 외로움에 처해 있고,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언제나 그들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3) 바울의 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바울은 비참한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그에게는 감사의 조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돈도 없었고, 부귀도 누리지 못했고, 그리스도를 안 후부터는 세상적인 직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마음은 항상 기뻤고, 그 입에는 찬송과 감사로 가득 찼습니다. 바울은 옥중에 죄수의 몸으로 갇혀 있었으나 그는 감사와 감격의 눈물 없이는 교훈이나 편지를 쓰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감격에 찬 생활이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헌신적이고 정열적인 삶을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가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도 그렇게 힘차게 살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고후 9:15에서처럼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에 대한 감격이었던 것입니다. 여기 은사라고 하는 말은 거저 준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선물은 거저 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주시는지 아십니까 지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왜 비가 오나하고 불평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는 매우 필요합니다. 비 없는 광야에 가 보거나, 사막에 가 보면 하나님께서 때때로 비를 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될 것입니다. 비가 내림으로 풀이 자랍니다. 꽃이 핍니다. 곡식이 자랍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습니다. 물이 있음으로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물이 있음으로 깨끗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 귀한 물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물은 비를 통해서 땅에 내립니다. 이 비는 하나님께서 거저주시는 선물입니다. 햇빛이 얼마나 귀합니까 해는 우리에게 광선과 열을 줍니다. 모든 에너지가 해에서부터 옵니다. 해가 있기에 곡식과 풀이 자라고 모든 생물이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기가 얼마나 필요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밥은 며칠 안 먹어도 살지만 공기는 몇 분만 안 마시면 죽습니다. 물고기가 물 속에서 사는 것처럼 인간은 공기 속에 파묻혀 삽니다. 다른 유성에는 공기가 없기 때문에 생물이 없습니다. 이 지구는 하나님께서 공기로 둘러싸게 하여 언제나 시원히 숨을 쉬게 하셨습니다. 천체에는 운석이라는 잔 바위 같은 것이 무수히 있습니다. 그 운석이 지구에 떨어질 때 그들은 다 공중에서 공기와 마찰이 되어서 산산이 부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익한 공기를 하나님은 거저 주셨습니다. 자연계를 통해서 우리 인간이 살 수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주신 선물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아침마다 일어나서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를 감사해 본 일이 있습니까 숨을 쉬면서 감사해 본 일이 있습니까 이것이 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 동양에는 이구난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표현은 매우 제한되어 있습니다. 전에 중국의 어떤 사람이 금강산을 보고 싶어하다가 정말 금강산에 한번 가게 되었습니다. 가서 그 굉장한 일만이천봉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아! 아! 아! 하고 소리만 지르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화려하고, 너무 웅장하고, 너무 아름다와 말을 못했던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도 자연의 경치를 보고 감탄한 적이 한번 있습니다. 그곳은 미국의 그랜드 캐논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콜로라도 강이 흘러가면서 대협곡을 만들었습니다. 여관에 여장을 풀고 나가 보니 좌우에 절벽과 모든 것의 그 규모가 얼마나 웅장한지 아! 소리밖에 다른 말할 것이 정말 없었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서울까지 오는데 비행기로 19시간 걸립니다. 알라스카의 앵커리지에 가는데 북극에서 오로라라고 하는 극광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도 비행기에서 아! 하고 감탄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는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무한한 은혜이며 영광입니다. 시세로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최고의 덕일 뿐 아니라 모든 덕의 어머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의 저서를 보면 그때 성도들의 인사는 이별할 때「비오그레티아」라고 했다 합니다. 이는 감사라는 말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그 감사가 모든 봉사로 나타납니다. 전에 인도의 한 왕이 궁전에서 나가다가 거지를 한 명 만났습니다. 손을 내밀고 무엇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왕이 거지에게 나에게 무엇을 주면 나도 너에게 무엇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거지가 뭐 있습니까 옆집에서 강냉이 한 흠을 얻었는데 그 강냉이 주머니를 열더니 저는 이것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며 강냉이 다섯 알을 주었더라는 것입니다. 임금이 이 강냉이를 받더니 하인을 부릅니다. “얘들아. 금주머니에서 이 강냉이알만한 금 다섯 개만 꺼내서 주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것을 대신 너에게 주니 받아라.” 물론 그 거지는 반가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거지는 속으로 내가 그 강냉이 주머니를 다 그대로 드렸으면 금주머니를 받아 부자가 되었을 텐데 하면서 탄식했다 합니다. 이는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는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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