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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시 1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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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나라의 경건한 순례자들은 황폐되었던 성읍이 재건되고, 여호와의 집인 거룩한 성전이 재건되었음을 알고 기쁨을 가슴에 안고 거룩한 성으로 올라갔습니다. 경건한 성도는 성전에 올라가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일, 또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를 무거운 짐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참 기독교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 우리 발이 이 성문 안에 섰도다.” 시인은 경건한 순례자들의 발이 성문 앞, 성전 눈 안에 들어섰을 때 그 기쁜 감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천국이 모형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는 마음은 바로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이요, 여호와의 집을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3절에 “아 너는 조밀한 성읍같이 건설되었도다.” 성전을 재건하고 보니 성전이 보면 볼수록 감격스럽고 아름다워 보인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저들의 정성과 사랑이 그 성전에 가득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성전에 올라가 그들은 무엇을 합니까

1. 감사와 예배를 위하여 올라가는 것입니다. 4절에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래대로 그리로 올라가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는 목적은 감사와 예배를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서 감사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며 예배드리는 일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요,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무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곳곳에 사람의 심령 속에 하나님을 찾도록 종교심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살 수 없도록 창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찾는 우리의 예배는 즐거움과 감사의 예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헌신은 즐거움과 감사의 헌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불만으로 예배를 임한다면 그 예배는 차 예배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시간, 예배드리는 시간은 모두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입니다. 이 나라의 번영을 위하여, 하나님과 함께 하는 나라와 백성이 되기 위하여, 모든 위정자와 모든 지도자들의 의로운 정치를 위하여, 공의가 실현되고 행복된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곳, 그 곳이 하나님의 집, 성전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야 합니다. 5절에 “거기 판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에 보좌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집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을 사랑합니까 그곳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흘러 나오기 때문입니다.

2. 평안을 얻기 위하여 올라가는 것입니다 6절에 “평안을 구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늘나라의 특색은 무엇입니까 사랑을 통한 평화와 기쁨입니다. 인간이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사랑이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가정이 사랑하는 식구들로 구성되었으면 평안하고 화목하고 모든 일이 다 잘되어 갑니다. 그러나 서로가 미워하면 다툼이 생기고 되는 일이 없습니다. 어떤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합니까 평안한 교회, 서로 사랑하는 교회, 조화를 이룬 교회입니다. 목사가 교인을 자랑하고 교인이 목사를 자랑합니다. 그런 교회는 듣는 이에게 호감을 주어 자연히 그 교회에 등록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 성도들이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평안입니다. 우리들이 원하는 평안은 영적 평안입니다.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얻는 길은 무엇입니까 평화와 복음을 진실히 믿고,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를 회개하고 청산할 때 우리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우리들이 주일을 진실히 지키고, 복음을 진실히 믿으며, 힘써 기도하고, 진실한 헌신과 봉사를 기울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평강의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왜 여러분의 생활에는 평안이 없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성전 생활에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아켐피스는 “진정한 평안은 사랑의 말에 의해 좋아지거나 나빠지거나 하지 않는다. 참된 평안은 그리스도를 소유할 때만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러스킨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만 생각하고 또 그의 가르침을 생각하면 참된 평안이 떠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일만 마디 말로 평안을 얻을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한 말씀에서 우리는 참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평안을 예수만이 주는 평안인데 곧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해주시고, 우리의 양심에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예수의 평안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3. 형통한 복을 구하려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7절에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9절에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성전에 나오면 즐거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심령의 평안이 있고 모든 하는 일에 형통함과 복이 임하게 됩니다. 시 128:1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의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고 하여 형통의 복받는 비결을 말했습니다. 스펄존은 말하기를 “교회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가정 예배”라고 말했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가정 예배를 진실하게 드리면 만사에 형통과 하나님의 축복이 풍성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자녀들이 충성되어 교회에 봉사하면 그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축복이 온 가정에 미치고 또한 범사에 형통케 됩니다. 왜 여호와의 집에 올라갑니까 만사에 형통하는 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진실한 예배를 성전에서, 가정에서 드리십시오. 분명히 만사 형통하는 복이 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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