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앙의 진보 (히 06:1-8)

첨부 1


히브리서 저자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진보의 필요성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선생이 가르칠 때마다 초보부터 되풀이해서 가르친다면 조금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학생들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본문의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하란 말씀은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여 신앙의 궁극적 목적인 완전한데까지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다시 다른 터를 닦지 말고 완전한 데까지 나아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1. 도의 초보의 신앙에서부터 튼튼히 서야겠습니다 연중행사로 열리는 부흥회에 참예하여 보면 이 부흥회만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을 봅니다. 대개 그들은 이전에 부흥회에서 은혜 받았던 자로서 죄악의 생활을 떠나 생활하다가 다시 신앙이 식어져서 또 다시 회개하고 은혜 받고 하는 반복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니 하나님께서도 죄를 용서하시나, 성령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권고, 계책하시며 역사하시되 영원까지는 아니하신다(창 6 3) 하셨으니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닙니까 지금으로부터는 초보에서 터 닦는 일을 완수하여 용진하여야 할 것입니다. 신앙은 초보의 신앙에서부터 튼튼히 서야 합니다. 도의 초보를 버리라는 말씀은 초보적 신앙을 일축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그 신앙 위에 굳게서라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올 은혜를 받을 비결은 도의 초보에 굳게 서는 데 있는 것입니다. 모래 위와 반석 위의 집을 비교할 수 있듯이 만사에 기초가 든든하고 확고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문학을 배우는 데도 초보적 지식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외국어를 배우는데도 A, B, C, D……의 알파베트를 잘 배워야 합니다. 이것을 먼저 배워 익힌 다음에 독서를 하면서 글을 배우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한번 설교에 3,000명이나 회개하며 가슴을 치면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며 울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외치기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하였습니다. 그런즉 회개는 신앙의 입문이요 초보적 신앙입니다. 회개 없이 세례를 받을 수 없고 회개 없이 성령을 받을 수 없고 회개 없이 참 신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신앙의 초보요 입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은 신앙을 회개하여 신앙의 기초를 확립해야겠습니다. 이 기초에 굳건히 서지 않으면 계속 죄의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2. 불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는 못하시는 것이 없으므로 곧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의 신앙이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롬 4:17에 “하나님은 전능하시사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옛날 갈릴리 해상의 베드로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나도 물 위로 오라 하소서”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오라하시니 베드로는 주님의 권능을 믿음으로써 능히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중도에서 풍파의 험한 파도를 보고 두려워하였기에 그만 바다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불신앙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신앙으로 능히 성취할 수 있다는 두 가지의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신앙은 회개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향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바르게 신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선 벌악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신앙하여 그만을 신뢰함으로 하나님께 상 받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 11:6에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신앙과 같이 진실하고 거룩한 신앙은 다시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속죄 사업을 완수하시고 마침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고 하나님의 후사로써 영생의 기업을 주셨으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형언할 수 없으리만큼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신앙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각양 충만한 상급과 모든 은혜와 하늘의 기업을 얻는 것입니다.

3. 불 성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신생하였을찌라도 이 사특한 세상에 사는 것이 인간이기에 전연 죄와 유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결에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결키 위해서는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았다가도 얼마 못가 죄의 법에 다시 복종하여 범죄 하므로 완전한 데에 전진하여 가지 못하고 미끄러지게 되는 것을 우리는 많이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결의 은혜를 받아야만 할 것입니다. 히 9:14에 “주의 보혈은 산양과 황소의 피보다 능력이 많아 능히 죽은 행실을 버리고 양심을 깨끗케 하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성결케 하시고 완전케 하시는 주께 주저 없이 나가 그의 완전하심과 같은 완전에 나가게 하여 주시기를 부르짖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 완전이란 무엇을 뜻합니까 (1) 사랑의 완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은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그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사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고 하셨는데 친구도 아닌 원수이고 죄인인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쳤으니 그 사랑이 얼마나 큽니까 그런즉 우리도 나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치 말고 일보를 더 나아가서 불신자들을 사랑하여야 할 것입니다. (2) 봉사의 완전입니다. 주께서 성부의 뜻을 이루시려 세상에 오실 때 저는 근본 성자이지만 성부와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 몸을 비어 종의 형상을 취하여 탄생하셨으니 스스로 봉사의 큰 의미를 표시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인간으로서도 요셉 부친에게 순종하여 지극히 봉사하셨으며(눅 2:51) 물질로는 성전세를 봉납하셨고(마 17:24-27) 심령으로는 하님의 뜻을 받들어 뭇사람을 위해 당신의 몸을 희생하여 일평생을 봉사하셨으며(마 20:28) 마침내는 사경에까지 이르러서도 하나님의 뜻을 봉사하는 것으로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완전하신 사랑, 의, 봉사를 쳐다보고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보았기에 빌 3:12-14에서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하며 상을 얻고자 하노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바울 사도의 자세를 따라 날마다 진보하는 신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