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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마 1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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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시려고 하는 예수님에게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병 고쳐 주시는 것이 옳겠습니까 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 물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하물며 사람이 얼마나 양보다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양보다 훨씬 귀하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상식 이상의 상식이요 너무나도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외식과 규례에 얽매여 사람을 양보다 천히 여겼던 것입니다. 안식일에 자기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서슴치 않고 건져 내면서도 죽어가는 병자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한다는 허울 좋은 이유를 내붙이고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고 고집했던 것입니다. 사람을 짐승보다 천히 여겼던 생각은 2,000년 전 바리새인들만 가졌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골에서는 소를 사람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도시에서는 사람보다 개를 더 귀중히 여깁니다. 사실 가격으로 따지면 사람보다 짐승이 더 비쌀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소 한 마리에 50만원이라고 하지만 시골서 서울에 올라와 취직하겠다는 꽃다운 처녀들은 직업소개소에서 돈 몇 푼에 음식점으로, 가정부로, 다방으로, 혹은 인생 쓰레기 같은 작부로 팔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개 한 마리가 수십만원 하는 것도 있습니다. 똥개 한 마리도 5만원짜리 정도라고 합니다. 화학자는 사람을 인분, 칼슘, 수분, 염분, 황 등으로 분해해서 돈으로 계산하면 3$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이렇게 값으로 치면 사람을 짐승보다 천히 여기는 바리새인들의 생각도 그럴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은 양보다 훨씬 귀중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온 천하보다도 더 귀하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사실 아무리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온 천하의 부 귀와 자기 목숨을 바꾸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 목숨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나에게 있어서는 온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나」는 귀중 한 존재입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자기를 멸시하고 자학을 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 가운데서 사람을 가장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 하나 하나가 양보다도 귀하고 천하보다도 귀하기 때문에 하나 하나에게 뜨거운 사랑을 쏟아서 극진히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못나면 못날수록 더욱 사랑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그의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들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베데스다 못가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누워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38년 동안이나 병석에서 고생하던 가장 불쌍한 병자를 주님께서 특별히 돌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러 가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갔기 때문에 발을 옮겨 놓을 수 없는 대혼 잡을 이루었지만 그 중에서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가련한 여인을 유의하셔서 난치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실 때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지만 그 동리에서 가장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은 삭개오를 불러내어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를 사랑하시되 그 중에서 가장 못나고 더러운 죄인을 사랑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뿐만 아니라 죄인 중에 하나가 회개하면 가장 기뻐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고 기뻐하시는 목자의 비유, 잃었던 한 드라크마를 찾고 동리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한 여인의 비유, 그리고 탕자의 비유 등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도 기뻐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한 비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시니 우리도 마땅히 자신을 귀히 여기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신을 자학하고 있습니다. 즉 음란과 방탕으로 자기를 학대합니다. 적은 이익과 명예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자기를 가장 사랑한다 할지 모르나 실은 자기를 버리는 자입니다. 자기감정, 고집을 내세우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가 아니요, 자기 인격과 신앙을 파괴하는 자입니다. 어떤 자는 애초부터 자기를 멸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즉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나는 아무것도 못해’ 하는 자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멸시하면 필사적으로 대항하지만 작은 난관에 부딪치면 자포자기하여 자살 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를 옳게 사랑하지 않는 것은 남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몸과 같이 남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옳게 사랑함은 자기 육신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올바르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이 귀하게 여기며 사랑할 줄 압니다. 사람이 양보다 더 귀하다는 주님의 말씀은 양에게는 영혼이 없으나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영혼을 사랑하시사 우리 죄를 구속하시려고 보혈을 흘려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니 우리도 마땅히 우리의 영혼을 사랑하여야겠습니다. 자기 영혼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자기 영혼을 배부르게 하고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혀서 거룩한 하나님의 사업에 봉사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자기 몸을 사랑하는 자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철에 따라 옷 입고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의 생명의 떡은 하나님에게서 내려와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 영혼은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어야 생기가 납니다. 3년 동안 주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도 성령을 받기 전에는 죽은 생활을 했으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후에는 활기차고 박력 있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끝으로 내 영혼이 자라고 든든해져서 영생에까지 이르려면 활동하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말씀을 듣고 성령을 받았다고 해도 봉사하지 않고 주의 사업을 위한 활동이 없으면 영혼은 쇠약해집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가지고 용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양보다도 귀하고 천하보다도 귀합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니 더욱 귀합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도 나를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여야 하겠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을 먹고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고 주의 일에 육신을 아끼지 않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풍 성하신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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