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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아인슈타인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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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에 태어나서 1955년 76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서거한 세계적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즉 '나는 독일 전란 때에 자유를 애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잃어 가는 자유를 굳게 지키고 보수하기 위하여 독일의 대학교들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대학교들은 나치 독일의 탄압 아래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만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단계로 독일의 자유를 위하여 날카로운 펜대를 휘두르는 저술가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대학교 교수들처럼 벙어리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평소에 하찮게 보았던 독일의 교회만은 히틀러의 탄압 아래서도 영원한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서서 항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나는 전에 교회에 대해서는 별로 흥미가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교회에 대하여 깊은 애정과 탄복을 가지고 대하는 자가 되었습니다.'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세상의 지성이요, 상아탑이라고 하는 대학교가 해내지 못하고 검보다 더 날카로운 펜대라고 호언하는 언론가와 저술가들이 해내지 못하는 자유수호와 독재 항거를 연약한 교회가 해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현상인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1919 3월 1일 기미독립만세 사건도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이룩해낸 민족의 저항운동이 아닙니까? 기독교인들은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맨주먹을 가지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세상 만민이 결코 해내지 못하는 위대한 업적들을 수없이 세상 도처에서 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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