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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울-신하와 다윗 신하간의 대결 (삼하 0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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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왕가는 이제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하여 왕이 된 다윗과 대립하였습니다. 따라서 두 지파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14절에 “소년들로 일어나서 우리 앞에서 장난하게 하자” 라고 했습니 다. 여기서 “장난하게” 함은 “전쟁놀이”를 가리킵니다. 이런 놀이를 하면서 실제로 서로 칼로 찔렀다는 것을 보면 이것을 전쟁놀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신학자 아이스 펠트는 이것이 대표적 전쟁의 대결을 가리킨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블레셋 장군 골리앗이 이스라엘에 도전했던 종류의 전쟁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삼상 17:8). 그 때에 골리앗이 말하기를 “너희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 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삼상 17장). 이 해석은 정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이와 같은 대표적 대결에서 양측이 다 죽어서 승부가 없었으니(16절) 실력이 비슷하였기 때문에 대립은 계속되었습니다. 사울의 장군 아브넬은 요단 건너 마하나임에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임금으로 삼았습니다. 대상 8:33절과 9:39절에 의하면 이스보셋의 이름은 본래 에스바알, 즉 문자적으로 “바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히브리 이름에는 가나안 다산 종교로부터 빌어온 말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주민들이 사용한 풍습이나 신에 대한 명칭이 그대로 히브리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었다는 것을 나타내 보입니다. 히브리 말로 “바알”이라는 말은 “주님”을 의미할 수 있고 따라서 하나님께 대한 명칭으로 사용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바알이란 이름이 반드시 이교와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 이름이 “이스보셋”으로 변경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뜻은 부끄러운 자란 뜻입니다. 이스보셋은 유다를 제외한 모든 지파의 임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도는 특별히 죽은 사울 왕의 많은 호의를 베풀어 호감을 샀던 지역인 길르앗에 있었습니다(삼상 11장). 이스보셋은 미성년자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아브넬이 섭정의 권한을 장악했던 것 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기브온 못가에서 아브넬과 그의 부하는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에 보낸 일파이었는지도 모르는 요압과 다윗의 추종자들과 만나게 됩니다. 처음에 양편에서 열두 사람씩 내어 경쟁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이 투기는 전반적인 전쟁으로 나타났고, 여기서 아브넬의 편은 패주하였습니다. 요압의 동생인 아사헬의 추격을 받고 아브넬은 전쟁터에서 도망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만일 자기가 빠른 걸음으로 추격해 오는 아사헬을 죽인다면 요압이 피로 보복할 것을 두려워하여 아사헬을 피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설복시키는 것이 실패하여 그는 아사헬을 죽였습니다. 요압은 계속 추격하다가 아브넬의 활에 의하여 그로 하여금 자기 휘하의 남은 자들과 함께 요단을 건너 마하나임으로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아라바”는 갈릴리 바다로부터 요단 계곡과 사해를 통하여 아라바 만으로 뻗는 침하된 땅입니다. 필경 요압의 결정은 상식적으로 내려진 것 같습니다. 즉 그는 자기 본거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의 일행도 지쳐있었기 때문에 아브넬은 추격하는 것을 그만 둔 것으로 보입니다.

1. 두 왕 간의 경쟁 하나님이 세운 다윗과 아브넬이 세운 이스보셋 간의 경쟁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다윗에 대항하여 왕으로 세운 사람입니다. 사울의 직계 자손이 왕권을 계승하여야 한다고 열망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넬은 자기의 가족과 친족에 대한 사랑과 관심도 컸습니다. 이스보셋은 아브넬의 도움이 없이는 왕위에 오를 수가 없었고 아브넬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위하여 이스보셋을 도구로 쓰려 했습니다. 이스보셋이 왕위에 오른 마하나임은 요단강 동편에 있고 다윗의 관심을끌지 못하는 곳으로, 다윗의 세력이 미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들의 세력을 강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보셋이 이곳에서 왕의 기치를 들자 지각없는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은 그에게 복종했고(9절),오직 유다 족속만 다윗을 따랐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다윗의 믿음과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실현하기까지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유다 종속만 다스린 것이 7년이었습니다(11절).그런데 이스보셋은 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이스보셋이 다스린 2년(10절) 이전이나 그 이 후, 또는 이 양 기간을 합한 것을 사울의 집안의 통치기간으로 간주하는데, 이 기간에 특이한 인물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2. 두 왕 간의 충돌 양군 사이에 충돌은 있었으나 전사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유다 족속은 표면에 많이 나타나지 않지만 모든 백성들은 다윗에게 복종하기 위해서 더 용감하고 활기 있게 행동했습니다. 다윗은 모든 일이 원만히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 흘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도와주시기를 기다리면서 공격적으로 행하지 말라고 한 듯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다른 족속들이 이와 같은 시기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를 주시하면서 묵묵히 이스보셋의 지배 하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7년 동안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내란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내란을 일으킨 사람은 아브넬로 장소는 기브온을 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곳은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고 사울의 친구가 많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양측에서 각기 열두 명씩 출전시키자는 제안을 아브넬이 했고 요압은 이를 수락했습니다. 이 기교 있는 대결은 운동경기처럼 시작됐습니다. 아브넬이 “소년들로 일어나서 우리 앞에서 장난하게 하자”고 했습니다. 우리 앞에서 장난하게 하자는 말은 우리 앞에서 싸우게 하자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압은 “일어나게 하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것은 요압이 이 같은 장난을 좋아하거나 그 결투에서 승리하리라는 확신에서가 아니라 자기의 적수로부터 지분거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리하여 양측에서 열두 명의 석수들이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결투가 어떻게 시작되었든지 간에 그것은 피로 끝났습니다(16전). 출전한 사람들은 각기 칼로 적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리하여 양측 24명 모두 칼에 쓰러져 결국 양측이 팽팽히 비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양군이 교전하게 되었고, 17절에 보면 아브넬의 군대가 패전하였다고 했습니다. 앞서 말한 기브온 못가에서의 격투는 양측 군사가 다 죽음으로 무승부의 전투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넬은 다른 전쟁을 일으켰지만 그들의 실패로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므로 다윗측이 승키 했습니다. 아브넬과 같이 싸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싸움으로 인하여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피 흘리기를 즐겨 아니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승리를 가져다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 측에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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