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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교의 사명 (롬 01: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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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복음의 중심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는 우리의 화목제물이시며 하나님이 되십니다. 주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랑과 소망과 평안과 인간의 모든 행복이 있다는 것은 전파되어야 할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는 복음의 내용이 혼란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복음의 진리는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입니다. 즉, 인간이 터득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연구해 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세상에 오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보이시고 나타내시며 죄인을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이전에 먼저 구주가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전도자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이 전해주는 자에 의해서 전달되도록 뜻하였습니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사람이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 여자가 남자를 통해서 잉태케 하시고, 또한 벌과 나비를 통해서 꽃가루를 운반케 하는 것처럼 주님은 십자가에서 피 묻은 복된 소식을 전도자의 발과 입을 통해서 전달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복음을 위탁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전도자는 예수의 직분을 대신하는 사자(使者)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스스로의 권위를 행사하거나 스스로의 의견을 전달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위탁받은 것은 복음인 것입니다. 이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전도의 사명은 예수님의 명령이십니다. 전도의 사명은 인간에게 가장 귀한 영혼을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여 새 사람을 만드는데 있습니다. 죄와 허물로 병들어있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복음뿐입니다. 오늘 선교에 대해서 네 가지로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1. 구원 받은 개인으로서의 선교사명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제일 큰 사명은 구원받지 못한 또 다른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해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교란 커다란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지만 선교가 무엇인지 모르고 사회 정의나 부르짖고 사회 개량이나 말하고 데모나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며 예수 믿는 성도들의 사명인 줄 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첫째 사명은 전도하는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고 말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나 혼자 예수 믿고 구원 얻겠다”는 생각은 금해야합니다. 지금까지 이 복음이 선교사들의 순교의 피를 통해서 우리에게 들어왔는데 우리에게 와서 이 복음이 멈추어 버리면 후대의 선교는 어찌할 것입니까 주님은 복음을 가지고 다니는 발처럼 아름다운 발이 없다(롬 10:13)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히 비취리라” (단 12:2).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삶의 목적을 한 마디로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33).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요, 둘째는 영혼구원 사업입니다. 어찌하든지 한 사람이라도 유익을 주어서 구원받도록 불타는 마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들은 시간도 물질도 생명도 바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중생의 확신과 성령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도 모르고 영생도 천국도 부활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무슨 선교를 합니까 요한 웨슬리도 자신이 먼저 중생의 뜨거운 체험이 있은 다음에야 다른 사람을 많이 구원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2. 교회의 선교사명 교회가 존재하는 제일의 목적은 복음을 전해서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구원하는 선교의 사명을 다하는데 있습니다. 도덕이나 수양이나 사회 개량이나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선교 중에서 가장 좋은 선교방법은 교회를 통한 선교입니다. 구제사업이나 자선사업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볼 때 영혼이 멸망해 가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교회 재정도 대부분 이 선교사업에 투자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 교단적인 선교사명 군소교단도 지금 날로 교세가 확장되어가고 있는데 대교파인 장로교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교세를 확장하도록 비젼을 가지고 선교에 총력을 기울여야겠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가 부흥이 안되니까 “쓸데없이 목표만 세우면 뭘 하나 교회 수만 많고 예배당만 크게 지으면 제일이냐, 질이 문제이지 양이 문제이냐”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양이 먼저 있고 질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교회 성장학의 권위자인 매가브란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질만 찾고 양을 무시하는 목회자나 선교사는 자신의 실패를 합리화하고 변명하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선 양이 있어야 합니다. 교인 수도 많고 교회 수도 많고 교회도 크고 봐야 합니다. (1) 교회는 자유주의 신학을 고조하면 교인이 줄어드는 것을 봅니다. 작년에 미국 감리교는 25만명, 장로교는 9만명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운동을 하는 교회는 계속 부흥하고 있습니다. (2) 교회는 사회참여, 사회정의를 부르짖기에 앞서서 영혼구령에역점을 두고 선교해야 하겠습니다. 세례 요한 같은 목사도 귀하지만 교회는 사도 바울과 같은 목사가 많아 구령운동에 역점을 둘 때 교회는 부흥하며 선교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줄 압니다.

4. 민족적 선교사명 (1) 우리 민족의 생존 가능성과 성공의 길은 오직 이 민족이 복음화 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월남, 크메르, 라오스가 다 공산화되고 그 적화의 후유증이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우리나라가 만일 적화된다면 북한 공산당은 이보다 몇 십배 더 잔인할 것입니다. 풍전등화와 같은 이 나라가 버티어 온 것은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의 기도 때문인 줄 압니다. 우리나라가 복음화 되면 공산화는 절대 안될 것이고 우리나라 정치도 기독교 福國정치가 될 것입니다. (2) 한국은 세계에 선교적 사명을 지닌 나라입니다. 오늘은 아시아의 선교시대, 태평양시대입니다. 아시아의 복음화는 한국이 책임을 맡아야 합니다. “한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돋는 데로부터 올라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가진 네 천사를 향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계 7:2-3). 아시아에서 기도 많이 하고 예수 잘 믿는 나라는 한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한국을 이제까지 보호하신고 연단시킨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연단된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산십니다.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사 48:10). 하나님은 고난을 많이 겪은 개인이나 민족을 들어 쓰십니다. 한국 민족의 5천년의 역사는 수난의 역사입니다. 청나라에 고생하고 몽고의 침략을 받았고, 일본에 36년간 압제를 받고, 피비린내 나는 6·25전쟁을 통해서 많을 수난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한문화, 단일문화, 한 언어, 한글을 사용합니다. 물론 한국 교회는 순교자의 피가 거름이 되어 성장해 왔습니다. 6·25때는 목사 535명이 순교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기도하는 민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한국 민족은 셈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셈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 되시도다” (창 9:27)했습니다.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동방에서 일어난 새로운 정신문화가 구라파의 물질문명을 구제해 주지 않으면 구라파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할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인도의 시성 “타골” 은 “오 대한민국이여 그대 옛날에 아시아의 황금시절에 밝은 등불의 하나였도다 이제 그대 등불 다시 밝혀라 그대 온 동방을 비치는 밝은 등불이 되리라” 는 예언적인 시를 읊었습니다. 여러모로 볼 때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가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교단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선교의 총력을 기울일 때가 왔습니다. 복음 선교의 막중한 사명을 다 감당하시는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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