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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웃에 대한 지혜로운 교훈 (잠 03: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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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의무는 하나남에 관한 것과 인간에게 대한 것으로 양분되는데 참다운 지혜는 이 두가지의 의무를 정당히 이행하게 하며 경건함과 아울러 정직한 가운데 수행할 수 있게 합니다.

1. 지불 기간을 엄수해야 합니다. 27-28절에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 경우에 지불해야 할 돈이란 (1) 품군의 임금 (2) 계약을 한 빛 (3) 친척과 친구와 약속한 돈 등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들은 궁지에 빠진 자들인데 여유있게 하심은 남들을 도와주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내일 주겠노라, 곧 시급히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돕지 안하고 연기하는 것은 잔인한 행동이며 이러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아닙니다. 딤 3:1에 “선을 행하되 부득이 행할 것이 아니며”라고 했으며, 약 5:4에 “품군의 삯을 얼른 주지 않고 연기하는 것도 큰 죄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자선 행위를 막아서는 안되겠지만 우리들 스스로도 그 행위를 기피하여 우물쭈물해서도 안됩니다.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으나 주지 못하고 적선하는 이가 걸인에게 하듯 권위를 과시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정당한 부채는 지체없이 갚을 것이며, 임금도 지체없이 지불할 것이며, 국가와 목회자에게 마땅히 바칠 것을 바쳐야 할 것이며, 이웃에 있는 불우한 자에 대해서도 마땅히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2. 까닭 없이 남을 해하지 말 것입니다. 29-30절에 “네 이웃이 안연히 살거든 그를 모해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생활이 이웃과 싸우기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데 시비가 생기고 싸움이 있게 됩니다. 사랑으로, 남을 정죄하기에 앞서서 충분히 먼저 알아보아야 하며 남을 치기 전에 논쟁에 앞서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알아보기 위해 잠시 기다려 보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롬 12:18에 “할 수만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고 했습니다. 신앙이 약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가 부족한 자들은 혹 부주의하여 까닭 없이 남에게 해를 끼치며, 혹 남을 호해하여 대적하는 태도를 취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모두 하나님 앞에 죄악입니다. 다윗은 얼마나 훌륭한 신자였습니까 그러나 삼하 11장에 보면 여자에 빠져 우리야를 죽이고 극악한 방법으로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았습니다. 그러므로 고전 10:12에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까닭 없이 이웃에게 해 입히지 말 것이며 이웃과 다투지 말 것입니다. 아무런 명분 없이 싸우지 말 것이며 우리의 힘이 미치는 한 모든 사람과 화평케 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며 이득도 되기 때문입니다.

3. 악한 자의 번영을 부러워해서는 안됩니다. 31-32절에 “포악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 아무 행위든지 쫒지 말라 대저 패악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포악한 자들이 일시 형통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곤고한 처지에 있는 신자들은 자기들의 궁한 처지를 인하여 시험받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포악한 자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들의 변영을 부러워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속에서 행복하게 살면서 감사와 기쁨의 조건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포악자의 번영을 부러워 하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의 잔이 쓰고 감사와 기쁨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악인들이 이렇게 번영한다면 자기들은 이보다 훨씬 더 번영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것은 어리석은 생각인 것입니다. (1) 그것은 하나님의 제도에 불만이요, (2) 그 포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니 결코 부러워할 대상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포악한자의 부는 하나님과 우정을 나누는 자들의 부를ㄹ 빼앗은 부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이보다 더 큰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과의 교통하는 은혜, 축복이 있으니 무성을 부러워하겠습니까 결코 그들의 부와 즐거운 생활과 향락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죄인과 성도의 처지를 비교하여 부러워할 조건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심판의 대상이며 진노를 당할 것이기에 성도는 죄인의 번영을 부러워해서는 결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32절 말씀대로 죄인들은 하나님에게 미움을 받으나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비밀을 가진 자들이요, 의인은 하나님의 총애를 받은 자들입니다. 의인은 하나님과 교제를 가지는 자들입니다. 이 교제 속에서 그들은 기쁨과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4. 행복의 높이와 불행의 깊이 33-35절에 “악인의 에는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현달함은 욕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1)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는 자들과 그들에게 주시는 것 하나님께서 은혜주시는 자의 특징은 세 가지입니다. “정직한 자”, “겸손한 자”, “지혜로운 자”입니다. 즉 하나님께 사랑받고 축복을 받는 자들에게는 정직함이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이 있습니다. 지혜의 마음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들의 가정에 순결과, 사랑과, 영화로움과, 애전과, 평화와,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자는 마니작에 영광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자들과 그들에게 임할 무서운 저주 그들의 세 가지 특성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악인”, “거만한 자”, “미련한 자”입니다. 이들은 미련함으로 하나님의 권고를 거절하는 자요 거만함으로 모든 거룩한 사실들을 거절하는 자요, 죄에 굴복하여 여러 악을 행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정죄하시며 무섭게 형벌하십니다. 1) 시 2:4에 “하늘에 앉으신 이가 비웃음이여”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거만한 자를 비웃는다고 했습니다. 2) 그들의 집에는 저주가 있습니다. 그들은 가정사에 있어서 현재 그들이 당하는 것과 같은 슬픔과 후회의 쓰라린 경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욕심대로 생활하기에 하나님이 진노하시기 때문입니다. 3) 그들의 손은 소망을 제거할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찬란한 꿈들을 예기하며 그들의 성은 높고 우뚝 솟아 있으며, 그들의 소망은 위대하다고 예상하는지 몰라도 홀연히 멸망의 바람이 불어 모든 꿈들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33절에 “악인의 집은 여호와의 저주가 있으려니와 의인의 집은 복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34절에 “하나님께서 악인의 거만을 비웃으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35절에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으며 미련한 자의 현달함은 욕이 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악인의 길을 떠나 지혜로운 자가 되어 영광을 기업으로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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