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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종국 (히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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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모든 것은 한도가 있습니다. 인생도 그 하나에 속합니다. 때문에 옛부터 인생을 들어서 초로인생이니, 창해일엽이니, 일엽편주니, 조생모사니 하는 표현으로 유한된 인생을 탄하였습니다. 고대 시조 가운데 유한한 인생을 소재로 한 것이 많습니다. “내 청춘 누구 주고 뉘 백발 가져온고 백발이 오고 가는 길 알았다면 막을 길 알고도 못 막는 길 그를 서러워하노라”, “한 손에 가시 쥐고 한 손에 막대 잡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렀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이렇게 노래를 지어 사람의 하루, 이틀 홍안이 늙어 가는 것을 슬퍼했습니다.

1. 죽음은 만인의 공도(公道)입니다 (1) 시간적으로 공도 태고적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야만인이나 과학만능을 자랑하는 현대인이나 앞으로도 천만년 후의 미래 인이나 사람은 누구나 죽을 것만은 부정 못할 것입니다. 죽음의 사실은 국법보다도 확실하고 반석보다도 견고한 것입니다. (2) 공간적인 공도 공간적인 존재는 빠짐없이 종국이 있으며 특별히 생명체를 가진 피조물은 죽음이라는 쓰라린 고통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죽음 없는 곳이 없고 대륙의 습지나 작은 점에 이르기까지 한대나 열대도 문제되지 않고 죽음은 만인에게 공도입니다. (3) 종족, 귀천, 존비, 가릴 것 없는 공도 문명의 선택 여하에 수명의 차는 다소 있을지 모르나 사망의 결론을 볼 때 종족의 차별이란 없습니다. 황인종도 죽고, 백인종도 죽고, 흑인종도 죽고, 셈족도 죽고, 아리아족도 죽고, 남자도 여자도 죽고,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유식하나, 무식하나, 가난하나, 부유하나, 만승천자로부터 초부우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차별이 없이 죽으니 인생의 죽음은 만인의 공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2. 인생의 죽음은 실제적 사실입니다 절대라는 말에는 “항거할 수 없는 요소”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죽음이 절대적이라는 말은 인생이 죽음의 사실에 대해 항거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죄 한 인간에게 내리신 죽음은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1) 무력이나 권력으로도 항거치 못합니다. 칼을 잘 쓰는 무사도 총을 잘 쏘는 명수도 사망을 잘라 버리거나 총을 쏘아 없앨 수 없습니다. 한때 천하를 제패했던 페르샤 다리오왕의 힘이나, 알렉산더나, 나폴레옹이며 로마의 시저도 이 사망 앞에 한 줌의 흙으로 화하고 말았던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2) 도피나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죽음이 엄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해양 저편이나 지상, 지하 어느 곳에서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황금만능을 부르짖는 현대에 억만장자라 하더라도 죽음을 대신할 자는 없습니다. 죽음은 만인의 공도입니다. (3) 연기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 사회의 대소사에는 형편이나 사정으로 일시연기도 무기연기도 가능한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죽음이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에 의한 것이므로 일초의 연기도 불허합니다. 영국의 엘리사벳 여왕이 임종시에 부르짖기를 “오 하나님이여! 내 소유의 전부를 당신께 드리겠사오니 내 생명을 단 30분만 연장시켜 주십시오”하였으나 초의 연장도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지시가 내린 후에는 세상에 유명한 약이나 고명한 의사의 지혜도 권세자의 무력으로도 과학의 기술로도 연장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인 것입니다.

3. 죽음은 만인에게 비밀입니다 (1) 사망의 일자를 비밀히 하십니다. 인생은 많은 것을 압니다. 인체의 내부, 외부 사회의 사건이며, 국제간의 양상과 멀리 천문세계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 가운데 넓고 깊게 아는 자를 박사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박사도 죽음의 날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많은 것을 연구하고 발견하라고 이성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망의 날짜만은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기도 합니다. 만일 사람이 자기 죽는 날을 안다면 이 사회는 어찌 되겠습니까 기왕에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난폭해지는 사람, 또 염려, 근심 걱정으로 비통하게 우는 자로 이 사회는 무법 화되며 이 생은 마치 지옥을 방불하게 만들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사망의 일시를 모르는 것을 은혜로 알고 살아생전에 주께 영광 돌리는 일들을 많이 하다가 주께서 부르시는 날 할렐루야를 부르면서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옛날에 어느 왕은 자기의 침실에 매일 아침 인사드리러 오는 신하에게 “대왕 폐하시여! 오늘 폐하께서 세상을 떠나실런지 모르겠나이다. 삼가 조심하옵소서”하라고 하령하였다 합니다. 또 어떤 지혜자는 자기 방에 해골을 두고서 매일 그것을 보는 가운데 죽음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파스칼도 “나면서부터 인간은 사형 선고를 받고 태어난 존재”라고 했으며, 톨스토이는 “인생은 가느다란 칡넝쿨 줄에 매달려서 바위에 흐르는 꿀을 찍어 먹고 있는데 흰 쥐와 검은 쥐가 교대로 나와서 그 칡넝쿨 줄을 갉아 먹고 있는 실존”이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인간에게는 죽음의 일시가 불분명하게 놓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2) 사망의 장소를 비밀히 하십니다. 기자(箕子)의 오복(五福) 가운데 “臨終命”이라는 것이 있는데 소위 인생의 최후를 마침에 있어서 자기 침실에서 많은 가족, 친척들이 둘러싼 가운데 죽는 것을 “복된 죽음”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에게 사망하는 장소는 하나님의 장중에 있는 것이니 인생이 자의로 선택 할 것이 아닌 줄 압니다. 죽음의 장소는 형형색색입니다. 육지에서, 해상에서, 공중에서, 지하에서, 실내에서 어떻게 죽을런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이 비밀의 죽음의 장소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 그 죽음의 장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가 예배 중에, 기도 중에, 전도 중에, 봉사 중에, 하나님의 소명을 받들다가 승천했다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럽습니다. (3) 두 가지 죽음이 있습니다. 1) 영광의 죽음:좁은 길을 걸어간 성도의 죽음입니다. 죽음을 준비한 자들이 맞이하는 죽음입니다. 봄이면 여름 준비, 여름이면 가을 준비, 가을이면 겨울 준비, 겨울이면 봄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준비가 없으면 헐벗고 배고픕니다. 그러나 사람은 살 준비만 하면 안 됩니다. 사는 동안 끊임없이 죽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신앙인의 다른 점은 살 준비를 착실히 하는 동시에 죽을 준비를 더 착실히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준비할 것입니까 그것은 기름입니다. 신랑 예수를 맞을 준비를 하던 열 처녀 중 다섯은 미련하여 등에 기름 준비를 못했으나 다섯 지혜로운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 되신 주님을 깊은 밤중에 등불 빛을 밝히어 영접했습니다. 기름은 믿음입니다. 빵으로 살되 빵으로만 아니라 말씀으로 살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슬기 있는 처녀니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언제든지 내 등불이 믿음으로 밝히 되게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또 아름다운 예복을 준비해야 합니다. 혼인잔치 자리에 참예한 손님 중에 예복을 입지 아니한 사람이 쫓겨남을 입었습니다. 계 19:7에 이 예복은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 했습니다. 옳은 행실로 깨끗한 예복을 하시기 바랍니다. 죽음은 언젠가는 비밀히 찾아옵니다. 오늘일지 내일일지 알지 못합니다. 살 준비를 착실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살 준비보다 더 긴급한 것은 죽을 준비입니다. 육정을 가진 인간에게 사별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마는 불신자와 같이 통곡할 정도의 비통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기독교인은 잠시 동안이나마 서로 육안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육정에서 우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재회의 천국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가에도 소망의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바라고 죽는 죽음은 영광의 죽음입니다. 2) 영벌과 멸망의 죽음:이 죽음은 불신자가 겪는 황천객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만물의 혜택을 우연이나 당연한 것으로 돌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욕되게 하는 지상 제일주의로 사는 자가 겪을 최후의 멸망이요 형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상황을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에게 임할 수 있는 사건으로 각성하고 항상 심판을 염두에 두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의 품에 안길 준비에 부족함이 없도록 죽을 준비를 지혜자로서 준비하는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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