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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명예의 일반적인 조건들 (잠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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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물보다 나은 명예와 은총 1절에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재물보다 하나님의 은총이 더 귀한 이유는 하나님의 은총은 영생을 주지만, 은, 금은 잠시 후에 다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재물보다 하나님의 은총을 택한 모세의 생활에서 그 실례를 볼 수 있습니다. 히 11:24-26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로 봄이라”고 했습니다. (1) 명예의 아름다움 명예는 재물보다 더 차원 높은 복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명예는 그 사람의 속옷과 같은 것이어서 우리의 살결을 부드럽고 안락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예를 얻는 자는 존귀하게 여김을 받게 됩니다. (2) 은총의 아름다움 재물은 무한정한 것이어서 하등의 가책도 없이 날개를 만들어 훌쩍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은총은 직접적인 축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영원하고도 귀한 것입니다. 재물은 행복의 간접적인 근원이 되지만 사랑은 그 자체가 하나의 복이며 그것이 미치는 모든 자에게 축복을 줍니다. 따라서 명성은 좋은 것이나 은총은 더 좋은 것입니다. (3) 재물이냐 명예냐 재물과 명예를 겸한 자는 다시 없이 행복하겠으나 모든 사람이 다 이 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이 둘 중에 어느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부보다는 명예가 더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주 안에 있는 명예를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2. 빈부를 지으신 여호와 2절에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이나 부자들이나 꼭 같이 하나님의 피조물인 만큼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대할 때 부자 대하듯 꼭 같이 대하여야 합니다. 빈부 구별 없이 사람은 다 적신으로 왔다가 적신으로 하나님 앞에 갑니다. 빈부 꼭 같이 세상의 죄, 질병, 환란, 시험, 죽음 등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빈부는 사회적으로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분배의 모순에 의하여 빈부의 차이가 생성되는 사회는 큰 악을 내게 됩니다. 이것은 형제 의식을 파괴하고 부자의 교만은 가난한 자에게 증오의 불길을 자아냅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평등하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에 똑같이 살므로 부자는 우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되고, 가난한 자는 열등감에 빠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본문에도 빈부가 같이 산다고 했습니다. 빈부는 서로 밀접한 관계로서 부자는 부자로서 할 일이 따로 있고,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대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회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게 되는 사회입니다.

3. 재앙을 피하는 슬기 3절에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본문은 신자들에게 대하여서는 다음 세 가지로 말해 줍니다. (1) 악인들을 벌하시기 위하여 재앙을 내릴 때 신자는 지혜롭게 재앙에서 피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재앙이 내릴 때에는 롯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기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 적당한 시기가 오기 전에는 지혜롭게 위험한 일을 피해야 합니다. 마 10:23에 예수님께서도 제자들더러 핍박을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행 9:13에서 사도 바울도 핍박하는 무리를 지혜롭게 피하신 것입니다. 왕상 17:1-19에서도 엘리야도 이세벨의 낯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창조해 주셨으므로 우리가 그것을 헛되이 희생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위험한 때 피신하기는 하나 복음의 사명을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핍박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갔으나 그 곳에서도 끝까지 복음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딤후 4:2에 “신자들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중국의 돈괘란 사람은 주역에 말하기를 “소인들 곧 악인들이 세력을 잡은 때에 군자 곧 선한 지도자는 물러가 숨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에게 나아가다가 해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들처럼 무익하게 죽는 죽음은 헛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지혜롭게 죽는 자리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4. 겸손과 경외함 4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했습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서 첫째로 요구되는 여건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참 신자들은 “나는 화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욥 42:5-6에 욥은 스스로 자기를 가증하게 여겨 티끌과 죄 가운데서 회개하였으며, 이사야는 말하기를 사 6:5에 “화로다 나도 망하게 되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재물과 영광과 생명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 축복으로 주시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이런 축복이 함께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5. 패역한 자의 길 5절에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패역한 자의 길은 구부러진 길이요,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상반하는 길이며, 그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습니다. 이미 저지른 죄에 대한 슬픔이 있으며 장차 죄에 빠뜨리려는 올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혼을 지키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잠 16:17에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니 그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존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영혼을 지키는 방법은 (1) 영혼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모시는 일입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4) 남을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5) 입을 지키는 자입니다. 잠 21:23에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영혼을 환란에서 보존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지키며 복된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하나님만을 섬기며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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