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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스라엘에 드러난 죄 (호 0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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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왕국 이스라엘의 죄는 이 심판 선언의 주요한 부분입니다. 백성과 지도자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대상이었습니다. 대부분 고소하는 내용이지만 다가올 심판이 전체에 분산되어 나타납니다.

1. 온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1-3절) 호 4:1-3은 호세아서의 서론격입니다. 호세아의 신탁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선물로 준 땅에서 살면서 그 땅을 더럽히고 또 여호와의 주권을 무시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계약파기에 해당하는 저주를 그 대가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목은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는” 것입니다. 진실과 인애는 계약관계의 신실성으로 하나님과 이웃 간의 상호 신뢰성과 의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출애굽사건을 통해서 계시되고 이스라엘 초기 단계에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형성하여 주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하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 상호신뢰가 사라지고 이웃과의 관계가 두절되어 2절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라진 공간을 살인, 강도, 간음, 강간, 저주의 5대 범죄가 메워진 것입니다. 이 모든 범죄는 십계명에 저촉되는 것이며 이웃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들입니다.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에 심각한 기근이 그 땅을 덮었고 사람들은 쇠잔해지다가 죽을 것입니다. 즉 이 흉년은 지상의 모든 생물들을 말라 버리게 할 것입니다. 계약을 파기하면 그 땅은 황무지가 되며 이스라엘은 경작 이전의 원시 상태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4:1-3절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은 계약 공동체이며, 이 공동체는 이웃과의 관계는 물론 자연과의 관계도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 아래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이 공동체의 생명을 파기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제사장들의 죄(4-10절) 책망이 이제 종교 지도자들에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충성은 하나님께가 아니라 인간인 왕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만족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전해줄 의무를 버렸습니다. 백성들의 타락 원인으로 어미들이 멸망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 계열의 뿌리가 제거될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율법을 무시했기 때문에 여호와 또한 그들의 자녀를 무시할 것입니다. 이렇게 제사장 계열의 미래는 끊어질 것입니다. 즉 백성들 지도자 중에 제일 먼저 제사장들이 책망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제사장은 대낮에도 넘어질 것이며 이 모든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불순종하고 불신실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 개인 뿐 아니라 그 자녀들을 포함한 집안 전체가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욕으로 바꾼 것입니다. 탐욕으로 인해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셨던 가중한 제물들을 우상에게 더 많이 드리도록 하여 백성들의 죄를 가중시켰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상에게 바친 제물 일부분을 제사장들이 받았기에 이 탐욕 때문에 더 큰 죄를 백성으로 짓게 했던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과의 맺은 계약을 깨뜨리므로써 여호와를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제사장의 지위에 수여했던 모든 영광을 빼앗아간 것입니다. 호세아는 10절 마지막에서 대답하여 제사장들의 죄과를 한 줄로 요약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행음을 저지르기 위해서 여호와 따르기를 그쳤다는 것입니다. 자전거는 앞으로 진행치 아니하고 제자리에 서면 넘어지고 맙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여호와 따르기를 그치는 것은 곧 음행하는 행위라고 보았습니다. 여기 음행은 가나안 제사의 “거룩한 결혼식”으로 제사장들이 국가의 번영을 위하여 신전의 성창과 직접 관련을 맺은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한 풍년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생명 의 근원은 야훼를 저버렸기 때문에 풍요를 얻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3. 그릇된 제사의식(11-14절) 욕망의 범위는 백성들에게 확립되었습니다. 감각적인 기쁨은 그들의 지각력을 빼앗아가 버렸습니다. 그들은 점을 포함한 세속적 종교행위를 하였고, 나무를 향하여 묻고, 거짓 신들에게 제사하여 제의적 행음을 하였습니다. 가나안 신전은 모세가 파괴시키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북왕국에 산재하여 산이나 나무 그늘 밑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많은 젊은 여자들이 남창 제사들과 성적 의식을 하였습니다(신 23:17-18, 왕상 14:24). 그런 의도는 인간과 농업의 다산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에게 그들의 재물과 기도를 바침으로써 이루려는데 있었습니다. 남자들이 신전을 자주 찾아갔기 때문에 이 여자들은 하나님의 징벌에서 제외되었습니다(호 4:14). 계약관계의 가장 기초가 되는 원리를 실천하지 못한 행동 때문에 여호와는 깨닫지 못하는 백성들을 패망하리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같이 범죄 하게 된 것은 “음란한 마음” 때문이라고 호세아는 말합니다. 음란한 마음을 개역 성경에는 “음탕한 바람”이라 했습니다. 원문에 ‘루아하’는 바람이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계약의 율법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행동을 하면서 이방 우상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창기는 공동번역에서는 성소의 창녀로 되어 있고, 원어에는 거룩한 여인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주석가들은 이를 성창이라 부릅니다. 예배자는 제사를 드리며 아울러 성창과의 교접을 통하여 땅의 풍요를 기원한 것입니다. 이 같은 행위는 일종의 교감적인 마술 행위인 것입니다. 인간의 성적행위를 통해 신들의 성적행위를 유발시킴으로써 신이 비를 내리게 하고 땅의 신이 비를 받아 곡식을 생산하도록 하려는 점입니다. 호세아는 마지막으로 성적 타락으로 얼빠진 백성을 망할 수밖에 없다고 한탄을 합니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지식’이 없는 백성으로서(호 4:6) 알지도 못하고 광신에 빠지고 패가망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비통의 노래(15-19절) 15절에서 “하지 말라”하는 세 가지 부정적인 명령형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제의의 잘못을 경고합니다. ‘길갈’,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라는 말은 암 5:5에서 길갈과 벧엘로 가지 말라고 한 경고를 되풀이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길갈은 여리고 동편 오랑 계곡에 위치한 북왕국 이스라엘 왕의 중요한성 입니다. ‘벧아웬’은 “죄악의 집”이 라는 말이므로 “하나님 의 집”인 ‘벧엘’이 바알을 섬기므로 죄악의 집으로 바꾸어졌다는 풍자적인 표현입니다. ‘벧엘’은 왕의 성소(암 7:13)로 불리어질 만큼 북왕국의 중요한 성소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바알제의가 행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소로 “올라간다”는 것은 순례 여정을 떠나는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북왕국의 가장 큰 부족입니다. 부족 동맹사회에서 여러 부족이 계약을 체결하던 중앙 성소에서 이제는 우상과 계약을 맺게 된 것입니다. 여기의 우상은 더 말할 나위없는 여로보암 1세가 단과 벧엘에 세운 금송아지 이데오르기를 내세운 것입니다. 그것은 곧 남왕국 예루살렘의 성소 참배를 금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감에 이 우상은 가나안 신전의 금송아지나 벧엘 성소에 있는 금송아지나 백성들에게 다름없이 바알화제사가 확대돼 가고 결국 북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려두라”고 했습니다. 암세포가 뼈 속 깊이 번진 환자를 의사가 손을 대지 못하고 내버려 두는 것 같이 이제 우상에게 매혹 된 이스라엘은 아무도 고칠 수 없으니 그대로 방치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앞서 12절에 음탕한 바람이 제사장을 사로잡았지만 이제는 그 ‘바람’이 백성들까지 사로잡아 그들을 태풍으로 날려 보내는 것입니다. 이제 호세아는 말합니다. 제사장과 백성 모두 하나님 앞에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합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백성이 곁길로 빠져드는 것에 대해 비통의 노래를 금치 못했습니다. 4장은 하나님의 사자인 선지자가 바알 종교의 그릇된 악습과 부단히 싸우고 있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5. 육욕으로 양심을 빼앗김 본문의 교훈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양심이 하나님을 떠나며, 양심이 이것들에게 유혹되어 빼앗기면 암흑으로 끝날 것입니다. (1) 이스라엘 죄악은 우상 섬긴 죄입니다. 이것은 죄의 근본입니다. 이스라엘은 선민입니다. 그런데 선민이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우상 섬김은 영적 간음죄가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의 아들이나 양심을 제물에 빼앗기게 될 때에 제사를 드리기 전에 제물을 먼저 먹었습니다. 이런 범죄를 하므로 하나님은 그를 벌하여 죽이시고 제사장직을 거두었습니다. 모든 악은 나의 양심을 빼앗으려고 공격합니다. 게으름의 마귀는 나의 근면을, 불의는 나의 정의를, 병마는 나의 건강을, 교만은 나의 겸손을, 포학은 나의 온유와 유순을, 증오는 나의 사랑을, 세상 욕심은 나의 성결을, 주초와 음란은 나의 시간과 인격과 영웅심을 다 빼앗아가 버립니다. 나의 양심이 하나님을 떠나 죄악에 사로잡히면 나는 파멸이요, 멸망입니다. (2) 예수님에게 마음을 둡시다. 예수님에게만 마음을 두는 자는 누구든지 그 마음속의 참 평안을 빼앗을 자 없습니다. 신자는 언제나 예수님에게 마음을 쏟지 아니하면 그 양심을 빼앗기기 쉽습니다. 일에 전심하면 일을 배우기 쉽고, 예수님에게 전심하는 자는 예수님의 교훈을 배울 것이며, 예수님의 교훈에 전심하면 예배와 봉사에 충실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3) 마음을 빼앗긴 자의 결과 악에게 마음을 빼앗긴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진실함과 선을 행치 못하고, 저주와 거짓과 살인과 도적질과 음란과 강포 등 모든 악의 일을 행하여 그 결과로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음행하여도 번성하지 못하고 비난과 쇠잔과 멸망이 그 뒤를 따를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에 혹시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악한 일에 마음을 빼앗기기는 쉽고, 선한 일에 마음을 붙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곤란한 길, 좁은 길, 가시밭길이 생명의 길임을 알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좁은 길을 택하여 걷는 우리 모두 되시기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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