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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 4차 환상 제사장을 정결케 함 (슥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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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는 본 8대 환상 중 제 4환상은 해방된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 앞에 서고 그 곁에는 사단이 서서 여호수아를 참소하나 하나님은 사단을 책망하고 데제사장의 누추한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새옷을 입히시는 광경입니다.성전 역사가 끝났으니 이제는 성전내에서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는 제사장의 성결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언제나 적의를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와 그 성도들을 방해하고자 합니다. 성전을 건축할 때에도 사마리아의 비슬람과 다부엘을 통하여 괴롭게 방해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잘 이뤄지니 이제는 사탄이 친히 제사장을 고소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부흥을 방해코자 했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참소하는 자입니다(계 12:10).그러나 여호와께서 동정있는 판결을 내리셨으니 제사장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또 환관을 씌우셨으니 마치 탕자를 용서하신 아버지의 사랑과 같습니다.

1. 누추한 옷을 벗기라누추한 헌옷은 포로들이 입는 옷, 죄인이 입는 옷입니다. 누추한 옷은 죄, 특히 바벨론 포로 중에 범한 죄를 가리킴이요 대제사장은 전 인민의 죄를 대표한 것입니다. 새 나라 건설과 새 교회 부흥에 헌신하려면 먼저 누추한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은 새 사람이어야 하겠는고로 누추한 옷을 벗기는 것입니다.그런데 사단은 주장하기를 특히 바렐론 시대에 범한 죄 곧 이방적 죄악만은 용서할 수 없으니 그 누추한 옷을 벗기지 못한다고 참소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용서함을 받고 대제사장이 새 옷을 입고 이스라엘 교회를 부흥케 함을 방해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단의 꾀를 아시고 책망할 뿐아니라 “자기 앞에 선 자” 곧 천사로 하여금 여호수아의 누추한 옷을 벗기시었습니다.1절에 “여호와의 사자”는 곧 성자 예수시니 그리스도의 사죄로 말미암아 누추한 옷을 벗기시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들에게 더러운 옷을 벗겨주시고 죄를 변화시켜 주시며 연약하심을 동정해 주시며 죄를 정결케 벗겨주시고 용서하여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또한 성결한 구원의 옷과 의의 두루마기를 입혀 주십니다. 위로부터 오는 영광과 능력의 신으로 관을 씌우시고 제사장의 직권으로 회복시켜 하나님의 전에 봉사하게 하며 하나님과 친밀히 교통하게 하는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2. 불에서 끄집어 낸 나무조각하나님이 사탄을 책망하는 말씀 중 2절에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고 하시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죄값으로 70년간 바벨론이란 불더미 속에서 죽다가 남은 자가 겨우 해방되었습니다. 예루살렘 함락시에 대다수가 멸망하고 혹은 도탄 중에 죽어버리고 얼마 남은 자가 불타는 나무조각이니 보잘 것도 없고 쓸데도 없는 민족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으로 새 나라 건설에 새 목을 삼으시고 새 교회 부흥에 사용하기 위하여 남겨두신 것입니다. 아, 불타는 나무조각 이것을 무엇에 씁니까 징계하시다가 불쌍히 여기시고 때리시다가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은 경영이 있어 이 백성을 남기시었고 소용이 있어 불에서 끄집어 내셨습니다. 대자대비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아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지만 무소불능하신 하나님 손에서는 불타는 나무조각도 성전이 되고 나라의 자원이 됩니다.

3. 하나님의 무한대한 은사하나님의 무한대한 은사를 볼 때 인간은 너무도 생각이 좁은 것을 니끼게 됩니다. 자기 눈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고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를 발견하려고 애쓰는 것은 자기의 의를 주장하는 것이니 자기의 의가 잇다고 한들 주님 앞에 자랑할 것이 되겠습니까사람은 형제를 판단할 권리가 없습니다. 형제를 판단하는 것은 한 가지 죄를 더 범하는 것입니다. 의인 욥이 환란당하는 문제에 대한 일대 의혹은 친구의 충고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길이 없었으나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대한 은사를 깨닫는 시간에 인간의 마음은 넓어지고 그 지은 죄가 명백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판단하지 않는 넓은 마음을 가지기를 힘쓰며 하나님의 무한대한 은사를 힘입읍시다. 우리가 받은바 은혜가 있다면 그 무엇이 주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있겠습니까 오직 그 은혜 가운데 깊이 잠기는 것뿐입니다.

4. 아름다운 옷“아름다운 옷”은 사죄받는 자에게 입히는 의의 옷입니다. 탕자가 돌아올 때 아버지가 탕자의 누추한 옷을 벗기고 새 옷을 갈아 입힌 것은 전죄를 용서하고 아들의 명분을 회복하여 주는 것입니다.구원의 옷과 의의 겉옷은 사람이 지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입히시는 것이니 이는 곧 예수를 옷입는 것입니다(갈 3:26). 죄악의 누추한 옷을 벗고 예수로 아름다운 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롬 13:12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더러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했습니다. 엡 4:22-24에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으니 새 건설자는 누추한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새 사람이 입을 새 옷이 있으니 골 3:12-14에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했습니다.

5. 제사장은 메시야를 대표함하나님께서는 더루운 옷입은 제세장, 사탄에게 피소된 제사장에게 화려한 옷을 입힐 뿐만 아니라 원수 앞에서 상을 베풀고 민중 앞에서 메시야의 그림자로 보여 주셨습니다. 제사장들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기이한 사람들입니다. 이사야는 자기와 자기의 아들들이 자기 이름에 대하여 그림자인 사람이라 하였으며(사 8:18) 에스겔은 이스라엘 사람에게 그림자된 사람이라 하였습니다(겔 12:6-11, 겔 24:24-27).이같이 제사장은 오실 메시야를 대표하는 자리로 옮기우신 것입니다. 내 종된 자리를 끌어내라 하였으니 사탄의 고소를 받던 제사장의 지위를 얼마나 높이 세웠습니까성경에 가지란 명칭이 네 번 나타나 있습니다. (1) 다윗의 가지입니다(사 11:1). 이는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이 되며 다윗의 왕위를 받을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마태복음의 대제목과 부합합니다. (2) 내 종의 가지입니다(슥 3:8). 이는 메시야가 자기를 낮추고 타인을 섬기며 고난당할 것을 가리킨 말입니다. 이것은 마가복음의 대제목과 부합합니다(사 52:13, 53:12, 빌 2:5-8). (3) 여호와의 가지입니다(사 4:2). 메시야가 임마누엘도 되고 하나님의 아들도 세상에 강림하실 것을 가리킵니다. 특히 요한복음의 대제목과 부합합니다. 그렇다면 제사장은 메시야를 대표하는 영광의 직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이제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서 말할 수 없는 죄인에게 의로운 옷을 입혀 준 것만도 감사하고 황송하기 끝이 없는데 세상에 여하한 괴로움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친히 맡겨주신 이 영광의 직분에 분골쇄신(충성을 다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의 교직자들의 새로운 각성과 새로운 헌신이 있기를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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