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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므비보셋과 바르실래 (삼하 19: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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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비보셋에 대한 다윗의 호의는 무척 관대하였습니다. 이 일 후에 다윗이 궁지에 몰릴 일이 생졌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배신하고 군사를 일으켜 왕국을 점령한 것입니다. 그 때 다윗은 압살롬에게 쫓겨 궁궐을 떠나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요단 마루턱을 지나려 할 때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찾아왔습니다. 안장을 지은 나귀 두 마리에 떡 200개, 건포도 100송이, 여름 실과 100,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싣고와서 다윗을 위로하였습니다. 시바는 “왕이여 어찌하다 이렇게 되었나이까 왕이여 이 나귀에 왕의 권속을 태우시고 이 떡과 포도주와 실과는 왕의 소년들에게 먹여 소년들로 하여금 힘을 얻어 왕을 지키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왕은 묻기를 “네 주인이 아들 므비보셋은 어디로 가고 너만 홀로 나왔느냐” 하자, 시바는 “왕이여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므비보셋이 왕이 이렇게 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이제 이 나라는 내 아버지의 나라로 내게 돌아온다 온 이스라엘은 나를 왕으로 받들리라고 하였나이다 그런즉 왕이여 나로 하여금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듣고 보니 분하기 짝이 없습니다. 므비보셋이 제 말대로 죽은 개 같은 자를 살려서 호의호식을 시켜주었더니 오히려 배은망덕한 자가 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므비보셋의 모든 재산을 다 시바에게 주었습니다. 그 후 반란을 일으켰던 압살롬의 세력은 무너지고 다윗이 국권을 회복하여 요단 나루를 건너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므비보셋이 나아와 다윗을 영접했습니다. 그 때 므비보셋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발도 씻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옷은 빨지 않아 남루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슬픔과 애도를 나타낼 때의 행동입니다. 왕이 므비보셋을 보자 “므비보셋이여 그대는 어찌하여 나와 함께 요단을 건너지 않고 예루살렘에 머물렀느뇨”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므비보셋의 대답은 “왕이여!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라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왕과 함께 가려했더니 내 종 시바가 나를 내 주 왕에게 반역을 계획한다고 모함하고 자기만 왕을 따랐나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므비보셋과 시바 두 사람의 말이 서로 맞지 않았습니다. 시바의 말을 들으면 므비보셋이 배신한 것 같고, 므비보셋의 말을 들으면 시바가 배신한 것 같습니다. 시바는 과거 사울 왕의 사환으로 아들이 15인이요, 종이 20인이었습니다. 그 후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풀 때 사울 왕의 전토를 다 므비보셋에게 주고 시바로 하여금 그 전토를 관할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시바는 므비보셋의 재산에 탐욕을 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므비보셋의 재산을 차지하려고 므비보셋을 모함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이 어찌 되었든 다윗은 므비보셋과 시바의 시비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1. 므비보셋의 향기 30절에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본문을 읽어보면 므비보셋에게서 풍기는 그윽한 향기에 도취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그것은 무슨 향기일까요 (1) 지은(知恩)의 향기입니다. 일찌기 사울 왕가가 패망했을 때 사울의 유일한 왕손인 므비보셋은 필연적으로 신변에 위험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왕 다윗은 므비보셋을 아들처럼 거두어 주며 왕의 식탁에서 함께 먹을 수 있는 은전까지 내려준 것입니다. 아무리 선친 요나단의 유덕이라고는 하지만 왕의 식탁의 배석이 허용될 수 없는 절름발이인 자신에게 내려진 파격적인 황은에 므비보셋은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며 감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9:8절). 은혜를 입은 자는 당연히 그 은혜의 고마움을 알아야 하지만, 이러한 당면성 마저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세태인지라 우리는 므비보셋에게서 풍겨오는 지은의 향기에 더욱 깊은 감동을 받게 됩니다. (2) 신의의 향기인 것입니다. 다윗 왕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하여 부득이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을 때 므비보셋은 왕의 다른 측근들과 함께 괌을 모시고 따르려고 했으나 그의 종 시바의 배신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그는 왕이 난을 피해 있는 동안 자기만 편안히 지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반란이 진압되어 왕이 환궁할 때까지 므비보셋은 발도 씻지 않고 수염도 깍지 않으며 옷도 빨아 입지 않은 채 금욕생활로 일관했을 정도로 왕의 수난을 같이 겪고자 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은 왕의 특은을 입은 므비보셋으로서는 왕에게 대한 최소한의 신의로써 특별한 공로가 될 수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배신을 떡먹듯 쉽게 하는 세상에서 이만한 의리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은 증으로부터 배신을 당했으면서도 자기는 자기 주인을 끝까지 배신하지 않은 므비보셋의 신의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3) 진한 충절의 향기입니다. 피난길에 오른 왕을 따르려는 절름발이 주인 므비보셋을 따돌리고 시바는 다윗에게 달려가 주인을 모함했습니다. 그 내용은 므비보셋이 자기집에 편히 거하면서 “다윗의 수난은 당면한 응보로서 내게 왕권을 되돌려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기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을 배신한 교활한 종의 모함을 아무런 의심없이 너무 쉽게 믿은 다윗 왕은 배신자는 충복으로, 충복은 배신자로 오판하고 므비보셋의 재산을 시바에게 넘겨주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시바의 배신이 드러나긴 했지만, 왕은 므비보셋의 재산 중 절반만 므비보셋에게 되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은 왕에게 말하기를 왕의 환궁으로 만족하니 재산은 시바가 차지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숭고한 충절입니다.

2. 오염되지 않은 사람,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 36절에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 뿐이어늘” 이라고 했습니다. (1) 과학문명의 발달에 정비례하여 공해 오염도 날로 상승하므로 현대인은 희비가 엇갈리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명의 혜택으로 모든 면에서 생활양식이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반면에 문명의 공해로 인하여 옛날에는 상상도 못했던 위협을 모든 면에서 받고 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질오염을 비롯한 온갖 오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대는 산업의 발전도 기해야 하지만, 공해의 방지도 기하지 않으면 안될 형편에 처해 있습니다. (2)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간 자신의 양심이 오염되어 간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이란 상호관계적 실존입니다. 서로가 상대방을 제거하고서는 존재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동반성을 상실하고 각자가 자기 위주 쪽으로만 치닫는 이기적인 존재로 전락해 가고 있습니다. (3) 여기서 세욕에 오염되지 않은 한 인간을 보게 됩니다. 그 분은 바로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입니다. 다윗 참이 압살롬의 난을 피해 마하나임에 있을 때 바르실래는 왕과 그 일행에게 식량과 일용품을 계속 공급한 일이 있었습니다(17:27). 게라의 아들 시므이는 편파심에 오염되었고(삼하 16:5), 갈말 사람 나발은 물욕에 오염되어 있었으나(삼상 25:10), 바르실래의 양심은 오염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후일 압살롬 일당이 패망하여 다윗 왕이 환궁하게 되던 날 왕은 바르실래의 공을 치하하며 그를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여생을 편안히 지내도록 후대하는 뜻을 밝혔으나 바르실래는 사양하였습니다. 과연 그는 순결한 양심의 소유자였습니다. 1) 포상욕에 오염되지 않았습니다. 궁지에 처한 다윗 왕을 돕게 된 그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달리 포상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2) 출세욕에 오염되지 않았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왕을 도운 것을 기회로 부귀를 누리고 세도를 떨쳐 보려는 욕심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3) 허욕에 오염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의식이 족한 처지였으므로 왕의 풍성한 공궤가 필요치 않았으며, 남은 날이 많지 않은 팔십 노령이었으니 벼슬도 육신의 낙도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여생을 고향을 지키며 살다가 선영에 묻히겠다는 그야말로 허욕과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말로는 성도라고 하면서 물욕과 권세욕과 명예욕과 허욕과 출세욕 등 온갖 욕망으로 오염된 자신을 발견하고 회개하여야겠습니다. 그래서 바르실래처럼 양심이 오염되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오염되지 않은 양심의 소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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