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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의 출생 (창 11: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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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셈의 자손들의 계보를 간략하게 소재하고 있습니다. 이 족보가 가르치고자 하는 중심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복의 근원인 그리스도까지 소개하기 위한 것이며 아브라함에게서 끝나는 족보입니다. 즉 셈의 자손들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신앙의 자손들로서 특별히 10절에 셈을 소개한 것은 선민으로서의 아브라함부터 다윗의 계보에서 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기 위한 것이요, 이는 창세기 5장과, 창세기 11장의 족보가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성취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img src='1_

5.jpg'> 아브라함은 기독교의 선조이고 유태교의 선조이며 이스람교의 교조이기도 합니다. 즉 동양의 불교와 유교를 제외한 세계 3대 종교의 조상이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이 결코 어떤 종교의 교주가 되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배경을 먼저 말한다면 아브라함은 기원전 19세기에 지중해 세계, 즉 메소포타미아 세계의 한구석을 살았던 한 부족의 족장이었습니다. 수백년 후에 유대교가 약 1,900년 후에 기독교가, 그리고 2,000년 뒤에 이스람교가 생겨나서 자기를 조상으로 삼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살다가 죽어간 사람입니다. 이렇듯 위대한 아브라함이지만 그를 소개하는 성경 기사는 무척 짧습니다. 창 11:24의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테라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창 25:11의 그의 죽음과 아들 이삭이 그를 이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장면까지로 그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기사가 짧지만 압축된 문장으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와 신앙은 초대 교회에서 중요하게 보고 기독교를 출발시킬 때에 그를 신앙의 모형으로 삼았습니다. 초대 교회의 첫 순교자인 스데반은 순교에 앞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증거하는 설교에서 아브라함을 인용하게 말하였으며(행 7:2-8), 스데반은 아브라함을 소개하면서 특히 메소포타미아에 근거를 두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 자신이 가나안 사람이 아니고 이방인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초대 교회에서 기독교 신학을 정립할 때 아브라함을 중요한 위치에 놓았습니다. 히 11:8절 이하에서 아브라함을 다음과 같은 의미로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도착하기 전이나, 그 후나 평생을 천막을 치고 나그네와 같은 생활을 하였음을 지적해 둡니다. 그 말은 기독교 신앙이란 결코 아랫목에 주저앉아 버리거나, 변화산의 제자들처럼 “여기가 좋사오니” 하는 자기 만족과 안주하는 신앙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천막생활처럼 쉴새없이 계속 전진하고 개혁하고 발전하는 신앙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둘째, 히브리 기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영원한 도성을 언제나 바라보며 살았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챤은 이미 영원을 바라보고 소망 속에 살아가는 신앙자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배경에 대하 창세기 11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살던 고장을 두 번 떠났는데 첫번째 출발은 아버지 데라와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 출발은 아브라함의 위대한 제 2 출발로써 오랫 동안 정착했던 하란을 떠나는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의 뿌리는 메소포타미아 일대입니다. 역사상 유명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나란히 흐르는 지역으로 소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입니다. 고고학자에 의해서 아브라함의 뿌리인 갈대아 지방이 샅샅히 발굴되었는데 그 결과에 의하면 이 지대는 월신(月神) 숭배의 중심지라고 합니다. 지그릿트란 탑이 발굴되었는데 이 탑은 월신에게 제사 드러던 탑입니다. 아브라함의 온 식구도 이런 환경에서, 즉 이방인으로서 살았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데라는 세 아들을 두었습니다. 맏아들이 아브라함이고, 둘째 아들이 나홀이며, 세째 아들은 하란인데 그는 이미 고향에서 사망하였으며, 하란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롯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과 성품을 몇 가지로 말한다면 (1) 많지도 않은 형제인데 나홀과 그의 식구들이 우르를 떠나지 않았음은 가족 사이에 불화가 있었음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2)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상당한 재산을 모았습니다. 물론 목축시대이므로 재산 대부분 가축이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3) 오랫 동안 아기를 못 가졌습니다. 이 사실은 부인 사라와의 문제에도 연결되며 아브라함 자신의 고민과도 연결됩니다. (4) 그는 하란을 떠날 때 조카인 롯을 데리고 갑니다. 이것은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어긴 것입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이 인정이 두터운 사람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을 우리 “모든 믿는 자의 조상”으로 규정함으로서 기독교 신앙을 정립하였고,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였습니다(롬 4:16절). 또한 아브라함은 단순히 유태인의 선조가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달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로 그 위치를 확립시켰습니다. 스데반은 사도행전 7장에 아브라함에 대하여 소개하면서 “고향과 친척을 떠나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새로운 지역으로 옮겨 갔다”고 증거했습니다. 고향과 친척을 떠났다는 사건은 혈통적인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보는것보다 인간적 생육관계를 초월한 인류의 아브라함으로 다룬 것입니다. 스데반은 아브라함이 생전에는 별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약속을 받는 것이 없지만 그의 후손에게 주실 약속을 믿고 살았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었습니다. 즉 축복이나 약속은 아브라함 당대를 위한 것이거나,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영원히 전 세계와 인류를 향하여 주어진 것임을 확실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고향 친지를 떠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였는데, 이에 대해 부르심, 혹은 소명이란 하나님의 편에서의 표현이며, 사람의 편으로는 이 사실을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이 신앙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이며, 이 순종은 예배의 행위였습니다. 이 순종의 행위를 통해 인류 구속의역사가 전개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도 순종의 생활을 통해 축복의 역사가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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