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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범사에 때가 있다 (전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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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은 사라지고 밤인 것 같은데 곧 새벽이 밝아오고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자연이 형형색색으로 변화합니다. 이렇게 철과 때를 따라 변해 가는 것을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변화무상한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 세상의 것을 의지하여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것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낮이 가면 밤이 되고, 봄이 되면 여름이 멀지 않음을 알 수 있듯이 천하 만물에는 때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편에서 볼 때는 예기치 못한 일들이라도 사실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사람이 한 시간도 앞당기거나 연기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롬 11:33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위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28가지 변화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은 문자 그대로 변화무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변화지 않고 영원합니다. (1) 2절에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너무 평범한 진리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깊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대로 태어나고 마음대로 죽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분명한 진리를 사람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사는 것입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사회의 비극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있다는 이 사실 하나만이라도 분명히 알고 있으면 이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권면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이 잔칫집에 있고 지혜로운 자는 그 마음이 초상집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전 7:2에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히9:27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꼭 기억하고 지나갈 것이 있습니다.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이기 때문에 한번은 누구나, 언제인가 반드시 죽어야 하며 후에는 반드시 시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고 언제나 지혜를 따라 준비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2) 3절에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불의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불의한 자라도 회개하면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가 불의한 가운데 얻고자 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채워주십니다. 눅 15장에 아버지를 떠나던 탕자는 외국에서 노자가 떨어지게 되자 굶주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탕자는 아버지께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그를 용서하고 좋은 옷을 입히며 잔치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따라서 죄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두려워 떨면서 멸망당하기보다 그의 죄를 주 앞에 내려놓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께서 그를 위로하시고 그의 아픈 상처를 싸매 주실 것입니다. (3) 4절에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고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라고 했습니다. 시 12편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도 마 5:4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의 눈물을 요구하십니다. 눈물을 흘려야 기쁨의 날이 임합니다. (4) 5절에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전쟁할 때 돌을 던져 적을 무찌를 때가 있고 평화시에 전쟁 준비를 위해 성곽을 쌓으며 돌을 모으는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안을 때가 있고 멀리 할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친구와의 사이에 진실이 있을 때 가까워지는 것이요, 이것이 없을 때 멀어지는 비극이 있다고 했습니다. (5) 6절에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으며 버릴 때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성공할 때, 형통할 때도 있으나 기억할 것은 잃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들어올 때는 조용히 들어오지만 나갈 때는 조용하지 못하게 나갑니다. 그러므로 취할 때도 있으나 버릴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얻기 위해서 인간적인 모든 것을 분토같이 버렸습니다. (6) 7절에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말할 때 잠잠하고 잠잠할 때 말하는 자는 우매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서는 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7) 8절에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으며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원수를 미워하되 다시 사랑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고 친구를 돕되 평생 의지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음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계획 아래 되는 것이니 순리를 따르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범사에 다 기한이 있고 또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생활하시는 자가 되어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면서 충성하여 후회 없는 삶을 누리는 것이 현자의 길일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범사에 정하신 때를 잘 파악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축복받는 성도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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