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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경주 (고전 09: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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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 이후 헬라 각처에서는 경주하는 일이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에서도 일년에 두 번씩 이스미인 경기가 있었는데 이것은 주로 아테네에서 열린 올림픽 경기 다음가는 대단한 경기였습니다. 바울 선생은 헬라와 로마를 순회하였으므로 올림픽 경기에 관하여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생활을 하나의 경주하는 것에 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딤후 2:5에서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은 경주입니다. 경주자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경주의 목표(goal)는 분명해야 합니다. 그 목표에 성공적으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잘 되어 있어야 합니다.

1. 경주자의 자격 마라톤은 순헬라계의 남자로서 명문가출신의 청년이라야 선수로서 경기에 참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범죄한 일이 있거나 신을 모독한 일이 있거나 남에게 노예가 되었던 자는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기가 시작할 때 경기 의식관은 좋지못한 품행을 가진 자가 참가했을까봐 경기장에 모인 무리 앞에서 각 선수를 지명하면서 “누가 이 사람을 고발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흠없는 자를 선발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사실 우리는 믿음의 경기장에서 될 자격 없는 자이지만 우리 주님께서 보혈로 우리를 깨끗케 하신 덕분에 죄씻음 받아 경주자의 자격을 얻어 경주하는 자의 반열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 경주자의 목표 많은 경주자 중에 여러 가지 모습을 보게 됩니다. (1) 목표를 잘 모르는 경주자 맹목적으로 뛰는 경주자입니다. 목표없이 경주하는 자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목표없는 인생이 있다면 방황하는 가련한 인생일 것입니다. (2) 목표를 잘못 정한 경주자 세상의 재물이나 지식에 목표를 정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지위, 권세 ,향락을 목표로 삼는 자도 있습니다. 이런 것은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3) 목표를 바로 정하는 자 이런 자는 먼저 히 12:1의 말씀대로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린 자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죄를 짓는 생활은 신앙의 발걸음을 약해지게 합니다. 교회 출석을 잘하던 분이 교회 출석을 등한히 하면 신앙에 병이 생긴 것입니다. 교회 봉사를 잘하던 분이 교회 봉사에 태만히 하면 신앙이 병든 것입니다. 교인이 목사 만나기를 꺼려하고 피하면 그 마음 속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연못에 돌을 던져 보세요. 큰 돌이나 작은 돌이나 예외없이 다 가라앉습니다. 죄는 큰 죄나 작은 죄나 모두 인생을 파멸로 이끌어 갑니다. 그러므로 작은 죄도 크게 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 생활에 암초가 되는 것이라면 귀한 것이라도 자르는 것입니다.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뽑아 버리는 것입니다. 과수 재배자는 꽃이나 잎을 보려고 과수를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얻으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열매를 보시는 하나님이시지 잎이나 꽃을 보시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회개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4) 푯대를 바라보는 자입니다. 신앙의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호와 증인의 창시자인 찰스 테스 러셀이란 사람이 푯대가 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의 창시자 문선명이푯대가 될 수 없습니다. 신앙의 표준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목표를 정했으면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눅 9:62).

3. 경주자의 주의 (1) 몸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경주자는 몸에 걸친 모든 것을 벗어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얽매이기 쉬운 죄짐을 다 벗어 버리고 주를 따라야 합니다. (2)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상을 얻는 자는 한 사람 뿐입니다. 옆을 볼 겨를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집사님이 예수를 믿고보니 믿을수록 더 힘이 들고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그만 두시지요”했더니 “그 동안 밑천 들어간 것을 생각하니 그만 둘 수 없다”고 하시면서 웃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마라톤과 같아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낙심치 말고 열심히 뛰면 됩니다. 주님을 생각하며, 과거 주님의 종들을 생각하며 미래에 상 얻을 것을 생각하며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디옥 교회 감독 익나시우스는 도미시안 박해 때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는 순교 전에 말하기를 “나는 주님의 나라를 위해 밀알이 되길 원하노라. 짐승의 이에 뼈가 가루가 되고 굻주린 사자의 배가 내 무덤이 된다 해도 나는 하나님의 깨끗한 빵이 되길 원하노라.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있다면 형벌받기를 원하고 사자의 이에 내 몸이 찢기우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겠노라. 나에게는 오직 그리스도만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요한 박겔은 화형장으로 끌려가면서 “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나는 순교자의 반열에 듭니다. 여러 형제도 권리를 위해 끝까지 사수하시오.” 할때 동지들의 눈에서 눈물이 났으며 박수와 찬송으로 격려를 보내어 주었다고 합니다.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갑은 끓는 기름 가마에 던짐받을 때 예수만 안 믿겠다면 살려주겠다는 관원 앞에 “주님은 내 팔십 평생 한번도 나를 모른다고 하지 않았는데 내 어찌 주님을 배신하리요”하며 순교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주님을 생각하며 낙심하지 맙시다. (5) 절제해야 합니다. 경주자는 절제하면서 경주할 때 상을 얻습니다. (6)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승리의 목표를 알고 경주할 때 주님이 함께 하셔서 승리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가 승리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은 신앙의 경주자의 비밀을 깨달아 축복받는 자리에 들어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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