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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집과 나의 집 (대상 1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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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자기 집, 내 집이 좋다고 생각하며 안식처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궁궐이나 초막이나 내 집이라는 생각에는 결코 금, 은, 보석이나 풀, 나무, 지푸라기로 만든 집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정신적인 집, 영혼의 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내 집이라는 “내”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여 보아야 할 것입니다.

1. 각 개인마다 자기 자신안에도 하나님의 집과 내 집이 있습니다 다같이 나라는 인간이 무엇입니까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유물적인 자아로 보는 사람 즉 나 자신을 하나의 물질로 본다는 것은 특히 무신론자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유심적 자아로 보는 자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가지론이고 유심론이고 모든 것이 회의적이고 또한 알 수 없는 것이고 알바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열등적 자아로 보는 자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을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열등감에 사로잡혀 무의미하게 살고 있는 많은 인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에 나타난 것을 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육체라는 집을 흙으로 만드셨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은 영혼과 그 영혼의 집인 육체로서 구성되어 있음을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인간 개개인은 하나님의 창조함을 받은 자유인입니다. 따라서 선택의 자유로운 존재와 창조의 자유로운 존재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또한 그 영혼의 집이 되는 육신이란 집을 가지고서 이 세상에 창조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각 개인 누구나가 창조함을 받을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집을 가지고 그대로 살아왔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정신을 떠난 육체가 있을 수 없고 육체를 떠난 정신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육체라는 것을 위한 의식주의 문제를 가지고 많은 정력과 재산을 낭비합니다. 매일 먹는 음식의 낭비, 의복의 사치로서의 낭비, 보약을 사용하여 인간의 육체를 위하여 관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영혼의 윤택을 위하여 영의 양식에 관해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영혼의 집, 육신의 집, 그 어느 하나라도 경시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형상이나 하나님의 영혼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오로지 내가 가지고 있는 육체의 집만을 내 것이라 생각하고 귀중하게 여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생활을 하고 있으나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영혼의 집을 육체의 집과 같이 중요하게 여겨야 하며 선천적으로 하나님의 집과 내 집을 하나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간직하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 인간 자신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2. 건축물을 통한 하나님의 집과 내 집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 기를 원하고 있으나 결코 어리석은 건축자가 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지혜로운 건축가가 있고 어리석은 건축가가 있습니다. 지혜로운 건축가는 그 집의 기초를 중요시하게 여깁니다. 어떤 식물이든지 그 나무의 뿌리가 중요하고 또한 그 뿌리가 잘 뻗어 나가야 그 나무가 꽃도 피고 과실을 맺을 수 있는 것처럼 건축에 있어서도 기초가 중요한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인 것입니다. 만약 기초를 중요시하지 않은 건축자가 있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건축가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는 목수의 아들로서 목수로서 팔레스틴에서 건축을 한 경험이 많은 분입니다. 홍수가 날 때 집 기초가 있는 집은 무너지지 않으나 모래 위에 지은 집은 곧 무너지는 것을 많이 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의 집, 영혼의 집을 건축하는데 있어서도 그 기초가 되는 신앙 즉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나의 육체, 나의 재료, 나의 소유, 나의 시간, 나의 공력을 더해야만 신앙의 집을 건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여기에 신앙의 집을 건축함에 있어서 그 기초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한다면 건축을 하는 건축가는 신앙의 역군들의 행위를 가르칩니다. 즉 건축에 있어서 그 기초와 건물이 하나로 구실되어야 함과 같이 신앙의 집을 건축함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되어야 완전한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주택, 궁전들은 세상에 사는 동안의 집이며 이런 것들을 위해 많은 물질을 쏟고 힘을 다하여 살고 있으나, 신앙의 집을 짓는데 있어서는 얼마나 우리가 수고하고 공력을 들이고 있는 가를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대한 교훈과 눈에 보이지 않은 신앙의 집 즉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여 또 다른 집을 건축하라는 말씀을 본문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집과 내 집을 비교하여 보아야 합니다 본문 대상 17장을 보면 다윗이 아름답고 웅장한 새로운 백향목 궁전에 살면서 여호와의 언약궤는 천막안에 모시고 있는 것을 너무나 죄송하게 생각하여 최초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뜻을 나타내었습니다. 당시 독재 군주 정치에서는 전 영토가 왕의 주권하에 있으며 전 국민의 재산까지도 간섭하며 가장 높고 크며 아름답고 위엄있는 궁전을 건축하고 얼마든지 호화찬란하고 호의호식하는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새 궁전에 살면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겠다는 절실한 사명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는 경건하고 겸손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다윗은 과거나 현재를 통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며 공급자가 되시며 다윗 자신은 그분의 미천한 종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미천한 종이 어찌 이렇게 고대 광실 웅장한 궁전에 살면서 하나님의 전은 천막으로 버려둘 수가 있느냐고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 끝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기로 결심하였던 신앙적 태도를 알 수 있습니다.

4. 다윗의 갸륵한 믿음 하나님께서는 사방의 모든 대적들을 다 멸하게 하시고 다윗 왕으로 하여 금 백향목으로 지은 아름다운 궁에 거하면서 평 안한 삶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때 다윗은 휘장하에 있는 하나님의 궤를 생각하여 괴로워하면서 하나님의 전을 모실 성전을 자기 손으로 지어 드리려는 갸륵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다윗은 오늘 누리고 있는 백향목 궁궐의 평안함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삼하 7:1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실 때에 여호와의 궤를 모실 성전짓기를 생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그는 자기가 이스라엘의 왕의 되어 백향목으로 지은 호화롭고 아름다운 왕궁에 평안히 거하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사방의 대적들을 파하게 하시므로 누리는 축복임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누리는 삶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있습니까 (2) 백향목 궁에서 법궤를 모실 성전을 생각했습니다. 눅 12:16 이하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풍성한 소출을 창고에 가득히 쌓아 놓고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나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했습니다. 사람은 백향목 궁에서 잘 먹고 잘 지내면 자기를 생각하기 쉽고 교만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호화로운 백향목 궁에 거하며 호의호식하고 있을 때 자기에게 주어진 축복의 기회를 위해 살 생각보다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나단에게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밑에 거하도다” 한 말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실 성전을 아름다고 귀하게 지어 모시고 싶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이웃과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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