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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유의 선용 (고전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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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당대에 탁월한 기독교 변증가로서의 자격을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히브리 종교 교육을 통하여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로마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었던 정치가였습니다. 그는 헬라의 철학을 전공한 철학가로 높은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당대의 모든 사상을 일단 받아들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로는 예수께 자신을 맡기고 생의 목표를 예수께 두고 살았습니다. 바울은 히브리 제사장의 교만과 형식적인 의식과 타락에 비난적이었는데 신자에게는 “너희는 제사장”이라고 했고 그는 로마제국의 독재정치와 인민 노예화 정치에 반대하면서 신자를 그리스도의 종이라 했고 그는 헬라 철학의 매력에 끌리면서도 헬라인은 어리석다고 하면서 십자가의 도를 자랑하고 전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믿고서도 변화받지 못하고 여전히 구습을 버리지 못한 헬라의 문화도시에 있는 고린도교회 신자를 위하여 고린도 전후서를 썼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헬라사상의 영향을 받아 사회의 악습에 자연히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언쟁을 잘했습니다. 그래서 불화하고 분쟁하고 당파가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하고 싶은 것을 다하는 것이 자유라고 알고 행했으나 사실은 방종을 한 것입니다. 헬라인의 사상을 받은 고린도 교회 신자들은 모든 것이 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그 사상을 일단 받아들이고 “모든 것이 가하다. 그러나”라는 말로 부정해 버립니다. 즉 자유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자유를 선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첫째,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라고 했으니 이 말씀은 인격향상의 표준을 언급한 말씀입니다. 둘째, 이 말씀은 인간에게는 권위의 표준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째, 사회의 생활에 표준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1. 인격향상의 표준(12절 상반)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라고 한 것입니다. 인생은 여행하는 나그네와 같습니다.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여행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여행에 알맞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가기를 원한다면 자유자라야 합니다. 만일 자유자가 아니고 남의 종(노예)이라면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신자의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신자의 목적지는 위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천국입니다. 신자는 날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을 향하여 여행하는 나그네입니다. 신자의 인격향상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그 곳까지 가는 동안 다른 일 때문에 그 신령한 여행인 순례의 길을 쉴 수는 없습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에 볼 것 같으면 장망성을 떠난 기독도가 고난의 산을 넘으며 중간에서 쉬는 중 깊이 잠들었다가 크게 실패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와 같이 인격을 소유할 목적으로 가는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회는 항상 한번 뿐인 것입니다. 그 단 한번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순례의 전진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표준삼아 내 인격을 거기까지 향상시키고자 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인격을 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가 살아오신 생활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격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눈을 그리스도 예수라는 인격에다 두고 인격향상을 방해하는 것을 바라보거나 곁눈질을 하거나 그것과 상종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하거나 세상과 지나치게 밀착을 하게 되면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방해하는 일이 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그러나 모든 것이 반드시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의 목표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2. 권위의 표준(고전 6:12하반)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하였듯이 제재를 받지 아니한다는 말은 남의 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 신자에게는 오직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계십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하에 둡니다. 그리스도 외에 성도들을 다스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여인에게 주인이 둘이면 그는 음란한 여인입니다. 우리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인이십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신자와 돈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돈은 귀한 것이니 좋은 것입니다. 돈으로 육신생활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돈에 제재를 받는다면 여러분의 권위는 돈에 종이 되는 것입니다. 돈에 대해서 권위를 잃는다면 돈을 옳게 사용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돈의 종을 수전노라고 합니다. 지식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사람이 지식의 종이 되었다면 그 지식은 그 사람에게 올무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사람이 그 사랑의 종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신자는 혈기의 종이 되어서도 안되고 음란의 종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이므로 세상 그 무엇에도 종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 위해 있는 것이므로 그리스도 예수만 위해 먹고 마시고 살고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신자의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 더러운 것에서 떠나라고 말했습니다. 신자의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고귀한 죄값을 주시고 산 주님의 것입니다.

3. 사회생활의 표준 (고전 10:23)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지으실 때부터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아무도 혼자만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이웃 없이는 잠시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나 혼자서는 생존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남에게 덕을 끼치며 살아가는 것이 사회생활의 원리입니다. 신자는 죄를 범하지 않는 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위해서라면 그 자유와 권리도 제재를 받아야 합니다. 어떤 것은 해도 좋지만 반드시 남에게 유익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죄가 아니나 신자의 인격에 유익하지 않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지 않는 것을 신자는 삼가야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우리는 사회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에게 덕을 세우면서 살고 누구든지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생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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